나의 눈물겨운 올리브나무 키우기
언제였더라, 내가 처음 올리브를 죽인 게.
3년 전이었나, 4년 전이었나.
처음엔 마음이 아팠어. 9만원 주고 산, 화분도 멋들어진 다 큰 애였거든.
두번짼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2만원 주고 어린 애를 샀는데, 걔도 결국 내가 보내버렸어.
슬펐지.
그 다음에 또 하나가 더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 하도 여러 번 죽이다보니.
근데 죽이는 것도 자꾸 하다보니 익숙해지더라.
이젠 별로 슬프지도 않아요.
-어느 올리브연쇄살인마의 회고록
그러하다.
두 번째를 죽였을 때, 탁월한 식집사인 엄마는 나에게 이제 올리브를 다시는 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올리브를 향한 집착을 끊을 수 없어 그 뒤로도 내 호시탐탐은 계속되었다. 우리집에 온 다른 애들은 다들 잘만 자라서 숲이 되는데 왜 쟤만.
가질 수 없어서 더 키우고 싶던, 올리브유도 좋아하고 마티니에 들어간 올리브 열매도 좋아하고 이파리가 무성할 때의 아름다운 자태도 좋아하는, 나의 올리브.
올리브는 이번에도 나를 저버리려나.
엄마가 말리는 걸 귓등으로 듣고 이번에 또 하나를 들였다. 이사한 집에 베란다가 있으니 전에 살던 집과는 다르게 통풍을 해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는 여지없이 무너지며 올리브는 또 오자마자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리며 말라가며 내 마음도 타들어가며. 일부러 분갈이도 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통풍도 잘 시켜줬는데. 흙이 전부 말랐을 때만 물을 주래서 잘 지켰는데.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마른 이파리를 죄다 뜯어버렸다. 올리브는 마지막 잎새처럼 이 이파리가 떨어지면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올리브별로 떠나갑니다, 하며 아련하게 멀어져갔다.
제기랄.
다시는 올리브 안 키워.
나는 다시 올리브연쇄살인마가 되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삶의 각종 문제들이 차곡차곡 들이닥쳐 못 살겠다가 살겠다가 일말의 삶의 의지도 희구하기 싫었던 오늘.
애들 물 주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무심코 쳐다봤는데 올리브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새 잎이 나 있었다. 뭐지, CG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실사였고, 가지의 마디마다 움이 트려 준비 중이었다.
계란후라이처럼 눌어 붙어있던 게 무색하게 펄쩍 뛰며 개호들갑을 떨었다. 물 먹을 때 되지 않았나 눈치 보며 물과 비료도 좀 먹였다. 그리고 어린 잎의 생장에 불필요한 마른 이파리들을 또 다 뜯어주었다. 올리브는 그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좀 움츠러들었을 뿐이었고, 이제 적응을 다 마쳤다고 한다.
처음으로 올리브를 죽이지 않고 살렸다.
계속 쳐다보고 싶은데 오늘 입동이라 너무 추워서 그냥 들어왔다.
올리브가 말했다.
나는 이제 살았으니 너도 좀 버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