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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Nov 08. 2023

올리브연쇄살인마는 오늘로 석방입니다

나의 눈물겨운 올리브나무 키우기

언제였더라, 내가 처음 올리브를 죽인 게.
3년 전이었나, 4년 전이었나. 
처음엔 마음이 아팠어. 9만원 주고 산, 화분도 멋들어진 다 큰 애였거든.
두번짼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2만원 주고 어린 애를 샀는데, 걔도 결국 내가 보내버렸어.
슬펐지.
그 다음에 또 하나가 더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 하도 여러 번 죽이다보니.
근데 죽이는 것도 자꾸 하다보니 익숙해지더라.
이젠 별로 슬프지도 않아요.

-어느 올리브연쇄살인마의 회고록


그러하다.

두 번째를 죽였을 때, 탁월한 식집사인 엄마는 나에게 이제 올리브를 다시는 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올리브를 향한 집착을 끊을 없어 뒤로도 호시탐탐은 계속되었다. 우리집에 다른 애들은 다들 잘만 자라서 숲이 되는데 왜 쟤만.


가질 수 없어서 더 키우고 싶던, 올리브유도 좋아하고 마티니에 들어간 올리브 열매도 좋아하고 이파리가 무성할 때의 아름다운 자태도 좋아하는, 나의 올리브.

올리브는 이번에도 나를 저버리려나.


엄마가 말리는 걸 귓등으로 듣고 이번에 또 하나를 들였다. 이사한 집에 베란다가 있으니 전에 살던 집과는 다르게 통풍을 해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여지없이 무너지며 올리브는 오자마자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리며 말라가며 마음도 타들어가며. 일부러 분갈이도 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통풍도 잘 시켜줬는데. 흙이 전부 말랐을 때만 물을 주래서 잘 지켰는데.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마른 이파리를 죄다 뜯어버렸다. 올리브는 마지막 잎새처럼 이파리가 떨어지면 나는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올리브별로 떠나갑니다, 하며 아련하게 멀어져갔다.

제기랄.

다시는 올리브 안 키워.

나는 다시 올리브연쇄살인마가 되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삶의 각종 문제들이 차곡차곡 들이닥쳐 못 살겠다가 살겠다가 일말의 삶의 의지도 희구하기 싫었던 오늘.

애들 물 주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무심코 쳐다봤는데 올리브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새 잎이 나 있었다. 뭐지, CG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실사였고, 가지의 마디마다 움이 트려 준비 중이었다.


보이는가 저 아름다운 연초록 새순들이!


계란후라이처럼 눌어 붙어있던 게 무색하게 펄쩍 뛰며 개호들갑을 떨었다. 물 먹을 때 되지 않았나 눈치 보며 물과 비료도 좀 먹였다. 그리고 어린 잎의 생장에 불필요한 마른 이파리들을 다 뜯어주었다. 올리브는 그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좀 움츠러들었을 뿐이었고, 이제 적응을 다 마쳤다고 한다.


처음으로 올리브를 죽이지 않고 살렸다. 

계속 쳐다보고 싶은데 오늘 입동이라 너무 추워서 그냥 들어왔다. 


올리브가 말했다.

나는 이제 살았으니 너도 좀 버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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