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빵을 만들며 든 생각
그리고 이 글은 빵을 전혀 만들 줄 모르는 당신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글을 읽고 나면 당신은 빵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될테니.
집에 생이스트와 보라색 식용색소 파우더가 들어왔다. 어느 날 어떤 집에 놀러 갔는데 "아, 마침 나파밸리 와인이 하나 들어왔어"와 같은 맥락으로 베이킹 재료가 심심찮게 굴러 들어오는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빵을 사랑하는, 제과·제빵·케이크데코 자격증 있는 내 후배 덕분이다. (참고로 난 야매) 그 친구가 우리 집에서 빵을 실컷 만들고 나서 놓고 간 생이스트를 죽이지 않기 위해, 오랜만에 생식빵 반죽을 시작했다. 생이스트는 식빵 네 개 분량이었다. 밀가루 잡은 김에 이스트 다 살리자는 대명제 아래 두 시간 동안 네버엔딩 반죽 솔로플레이. 반죽을 하면서 새로 쓸 대본의 시놉시스를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만 두었다. 사실 더 이상 생각이 안 났다. 시놉이란 모름지기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릴없이 자판이나 쓰다듬고 있다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 그 난장판을 한구석에 짜져서 내내 지켜보던 보라색 파우더놈이 그제야 내 눈에 띄었다. 색소를 잘 시도하진 않지만 재료란 뭐든지 있으면 좋다는 생각에 받아둔 게 '오냐 너 잘 걸렸다, 식빵에 좀 들어가야겠다' 하면서 충동적으로 빵 반죽 마지막에 투입되었다. 잘하면 마블식빵처럼 되겠지 하는 건방진 생각에.
열세 시간을 발효하고 다음 날 구웠다.
음... 얜 뭐지. 힘줄인가. 좀 무서워. 곰팡인가. 좀 더러워보이는데.
그렇게 내가 만들었지만 약간 거부감이 드는 식빵을 뜯어서 먹었다. 하아. 드럽게 맛있었다. 그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 미친 맛의 식빵을 홍보하기 위해.
약간 마블식빵의 마블링이 있다고 눈물겹게 우겨본다.
나처럼 눈 앞에 결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지난한 과정 중심의 일을 하는 사람은 즉각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취미를 가지면 좋다고 한다. 그런 걸 알기 전부터 나는 주무르고 있는 반죽의 부드러움에, 향긋한 빵냄새에, 갓 만든 빵의 따뜻함에 힐링해왔기로, 여러 가지 취미 중 최근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게 베이킹이다.
이 생식빵은 오븐만 있다면 별다른 도구가 필요없고, 노력 대비 성과가 기가 막히고, 빵값이 비싼 요즘 같은 때에 직접 만들어 먹기 수월하고, 이것만 할 줄 알아도 어디 가서 빵 만드는 사람이라고 방귀 좀 뀔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당장 시간과 에너지가 좀 남는데 무료한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이 맛을 한번 보면 분명히 다시 만들어 먹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 입에 들어가는 빵 하나 정도는 직접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원시시대 뗀석기 만들던 조상님들 뵐 낯이 있지 않겠나. 뭐 하나만 꼭 만들 줄 알아야 한다면 생식빵 만들 수 있는 인간이 되어라~는 게 오늘의 요지 되겠다. 레시피는 간단한데 약간의 팁을 주절주절 써놓았다. 총 일곱 단계의 퀘스트가 있다. (출처: 베이킹팀 굽ㄷa, <진짜 기본 베이킹 책>, 2021, 레시피 팩토리) 시간이 좀 필요한데, 그것도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이스트가 알아서 일을 해주니 그냥 숙면하세요.
재료: 물 70g, 우유 80g, 생크림 80g, 설탕 30g, 소금 3g, 꿀 30g,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 5g, 버터 20g, 강력분 300g
특별히 필요한 도구: 오븐, 식빵틀(대), 밀대(소), 주걱, 스크래퍼(반죽 자르는 도구)
Q1. 주걱 밥주걱 가능한가? 네.
Q2. 반죽 칼로 잘라도 되나? 칼의 용도가 그것임.
Q3. 밀대 수제비 만드는 방맹이밖에 없는데? 가능. 각 가정에 하나씩 굴러다님.
1. 물, 우유, 생크림, 설탕, 소금, 꿀, 이스트를 넣고 이스트가 녹을 만큼만 섞은 뒤 녹인 버터를 넣고 휘휘 저어요. 이스트를 살리기 위해 모든 액체는 미지근해야 합니다. 28~30℃ 손가락 살짝 담가봐서 아주 살짝 따듯한 느낌. 너무 따듯하면 안 됨. 찬 상태 기준으로 전자레인지 30초 돌리면 딱 알맞게 됨. 버터는 녹여야 되니 1분. 아, 꿀은 안 데우고 그냥 썼는데 이스트 죽지 않았음. 그리고 저는 동물성 생크림, 머스코바도 설탕, 프레지덩 버터를 씁니다. 사치스럽죠. 그게 미친 맛의 비법.
2. 강력분을 체 쳐 넣고 주걱으로 가루가 다 스며들 때까지만 섞어요. 랩 씌워서 20분 휴지. 그동안 설거지를 하세요. 자고로 요리는 그때그때 치우면서 해야 한다는 게 우리 모친의 말씀. 주걱은 빼놓고 설거지하세요. 아직 필요함.
3. 랩을 옆에다 잘 놔두고 주걱으로 반죽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리면서 20-30번 접으세요. 바깥에서 안쪽으로 접으면 됩니다. 30번 의외로 금방 감. 아까 그 랩 다시 씌워서 다시 20분 휴지. 그동안은 누워 있어도 됩니다.
4. 랩을 다시 옆에다 잘 놔두고 반죽을 다시 20-30번 접어요. 두번째 접을 때는 손으로 하는 게 더 쉬워요. 왜냐면 첫번째 접을 때 이미 초기 글루텐이 형성된 상태라 애가 좀 탱탱해져서 주걱으로는 말을 잘 안 듣기 땜에. 다시 랩을 씌우고(랩이 요긴함) 냉장실에서 12-13시간 놔둡니다. 오늘 작업은 끝. 주무세요.
5. 다음날 반죽을 꺼내서 강력분(분량 외)을 뿌린 도마 위에 두고 3등분해요. 이때 반죽을 주물러서 가스를 뺍니다. 그러고는 둥글리면서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어요. 왕만두같이 마무리하고 다시 랩 씌워서(랩이 요긴함) 10분 놔둠.
6. 반죽 성형. 밀대를 사용하여 반죽을 긴 타원형으로 밀어요. 이때 또 가스를 뺍니다. 애가 이미 쫄깃해져서 잘 안 밀리니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고 나서 양옆 긴 쪽을 안으로 접어요. 서로 겹쳐서 포개지게요. 이음매를 꼬집어서 풀리지 않게 한 뒤, 위아래를 같은 방식으로 안으로 포개어 접고 꼬집어요. 그러면 통통한 원통형 반죽 세 개가 나옵니다. 이제 식빵틀에 이음매가 아래로 가게 해서 넣는데 그 중 뭐 하나가 더 통통하다 싶으면 그걸 가운데 놓아요. 다시 랩을 씌워(랩이 아주 요긴함) 전자레인지 발효합니다. (날씨가 더우면 실온에 둬도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발효가 오래 걸리니, 컵에 찬물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2분 돌린 후, 그 컵을 옆에 두고 식빵틀을 놔두면 발효가 잘 됩니다. 물론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안 되겠쬬. 문도 꼭 닫아야겠쬬) 반죽이 식빵틀의 80% 올라올 때까지 약 45분. 그동안 누워 있다가 슬슬 일어나서 오븐을 150℃로 예열합니다.
7. 150℃에서 20분, 끝나면 바로 160℃로 올려 15분. 따뜻할 때 바로 뜯어먹으면 내가 식빵 하나를 다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실온에 3일, 좀 두고 먹을 거면 식힌 뒤 냉동보관합니다. 데워드셔야 더욱 맛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제빵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