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아버지는 누구래유?”
입추가 지나고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다. 12월 말까지 두 권의 책을 끝내려면 어르신 학생들에게 벅차다. 주 교재로만 수업을 하기로 했어도 오늘은 진도를 제대로 나가지 못할 것 같다. 지혜의 나무 11권의 18단원이 “메밀꽃 필 무렵(1)인데 지문이 길 뿐더러 내용도 어르신 학생들에게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다. 어려운 낱말의 뜻을 판서하는 것보다 한글 문서에 작성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수업하면 수월할 것 같다. 하여 어려운 단어를 문서로 만들어 프린트해 가지고 갔다. 역시 어려워하셨다. 그래도 내가 지난번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해 드려서 몇 분이 읽어본 경험이 있어 다행이다.
글자 크기를 15p로 하면 2장이 된다. 그러면 많아서 안 보실 것 같아 글자 크기를 13p 한 장으로 인쇄해 갔다. 그런데 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어려운 낱말을 인쇄해서 주셔서 참 좋은데 글씨가 잘어유. 크게는 못 한 대유?”
“그러세요? 할 수 있어요. 그럼 다음 수업 올 때 다시 크게 인쇄해서 드릴게요.”
오늘 하루에 한 개 단원을 마칠 수 없어 이틀에 걸쳐 수업하기로 했다. 낱말의 뜻을 잘 몰라서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오늘 낱말의 뜻 설명을 해주어 이해가 돼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책 읽고 있을 때 아들에게 전화 왔는데 엄마 뭐 하냐고 물어서 ”메밀꽃 필 무렵“책을 보고 있다고 했더니 우리 엄마가 그런 책도 읽느냐고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이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들은 딸들이 올 추석 연휴에 강원도 봉평군의 이효석 문학관에 함께 여행하기로 하였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마침 문고동아리에서 이효석 문학관을 다녀왔기에 소설에 나오는 물레방앗간도 있고, 소설에서처럼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 메밀꽃도 활짝 피었으니 잘 보고 오시라고 말했다.
89세인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책을 읽었다니 기뻐서 소설의 배경이 된 곳, 작가의 문학관이 있는 곳을 모시고 가려는 자녀들. 고마운 일이다. 효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게는 가르치는 보람이고, 학생에게는 한글 배운 뒤 읽어 본 소설의 배경을 직접 가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 들여놓는 가슴 뛰는 일일 것이다.
또 이 학생이 직접 소설의 배경이 됐던 곳을 보고 와서 다른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다른 학생들도 간접경험을 하게 되니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런 자녀분들, 와! 훌륭하다. 모두의 자식들이 이렇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최 학생은 이곳에서 가장 연세가 높으시다. 문장력도 좋으시고 머리도 영특하시다. 모든 일을 솔선수범하신다. 혼자 살면서 큰 수술을 했어도 늘 긍정적이다. 마음이 건강하니 몸도 건강하신가 보다. 허리도 꼿꼿하다.
정학생이 질문을 했다.
“동이의 아버지는 누구래유? 아무리 책을 읽어봐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유.”
“소설책 속에서 누가 아버지라고 꼭 집어서 말은 안 했어도 잘 읽어 보면 누가 동이의 아버지인지 알 수가 있어요. 책을 읽는 묘미 이기도 하지요. 교과서에서도 지문이 있으니 한 번 잘 찾아보세요.”
어르신 학생들이 한글을 배워서 처음으로 접해보는 소설책이라 그럴 수 있다. 소설을 다 읽어 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첫 번째로 읽은 “몽실 언니”는 읽고 내용 파악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4년 동안 한글 배워서 지금에서 이 책을 읽은 분이 세 분이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이 “메밀꽃 필 무렵” 두 분이 다 읽었다. “메밀꽃 필 무렵”은 세분 중 한 분이 중도를 포기했다.
세 번째로 읽은 책이 “백치 아다다” 두 분이 읽었다. 이 세 권을 다 읽은 분은 단 한 분이다.
마을 학교 학생들이 소설책을 읽었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87세 이상인 분들이 자모음부터 배워서 이렇게 읽을 수 있기는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 학생이 봉평 다녀온 이야기 들을 생각에 학생도 선생도 추석 연휴가 어서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