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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자 Feb 20. 2024

세월 앞에서

세월 이기는 장사 없나 봐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 3시다. 그동안 침묵하던 허리 통증이 심상치 않다. 거울을 보니 어제 아기 낳은 산모처럼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나이 듦이 이런 것인가?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무리하긴 했다. 금요일 저녁 9시에 모임을 끝내고 돌아와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20km 떨어진 곳에 가서 회의하고 오후 1시에 돌아왔다. 곧바로 걸어서 30분 거리인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다. 재활병원에서 재활 중인 언니가 좋아하는 감태와 나물거리를 구입해 돌아왔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국립교통재활병원에 입원 중인 언니에게 가려고 장을 본 것이다. 언니에게 가려면 대중교통은 너무 불편하다. 서울 사는 여동생은 집밥을 만들어 주말마다 양평에 다녀온다. 여동생에게 이번주엔 내가 밥 해서 언니에게 갈 테니 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여동생이 당진으로 내려와 나를 데리고 양평으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시장에서 돌아오니 기어이 대저토마토 2 상자, 영양탕, 냉이, 달래, 풋마늘 등을 사들고 동생이 도착했다. 오후 다섯 시부터 여덟 시 반까지 여동생과 둘이서 나물 반찬을 만들었다. 냉이무침, 시금치나물, 가지나물, 데친 풋마늘 무침, 풋마늘 생무침, 시래기나물, 더하여 검은콩장, 감태구이, 실치구이, 동치미무침, 쌈장, 상추, 오징어 젓갈무침, 나박김치, 알타리김치 등을 만들어 포장해 냉장고에 넣어놓고 잤다.   

       

일요일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언니가 좋아하는 찹쌀밥을 하고 고구마를 구웠다. 물까지 19종류의 음식을 빼놓지 않게 살펴가며 갈 준비 마치고 새벽 4시 40분에 양평으로 출발하러 집을 나섰다. 차 앞유리가 꽁꽁 얼어 제거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출발했다.

아뿔싸! 안개로 50m 앞도 안 보였다. 병원 아침식사는 7시 30분인데 애써 만든 아침밥 준비는 식사 전에 도착 못 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마음은 급한데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곳곳마다 안개가 더 심한 곳이 많았다. 경기도로 들어서니 더더욱 안개가 심했다. 동생은 식사를 늦게 하게 되면 언니가 배고파서 안된다며 속도를 내고 싶고, 나는 아침식사를 조금 늦게 하면 되니 안전하게 속도를 낮춰야 한다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며 2시간 50분 걸려 국립교통재활병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병실로 문병객이 들어갈 수 없다. 아침식사 준비만 올려 보내고 식사 끝난 후 1층에서 면회를 하기로 했다. 병원 1층이 너무 추워서 차 안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면회 가능 연락을 받고 1층에서 언니를 만났다. 얼굴은 좀 야위었고 두발은 아직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발톱 한쪽은 3개, 한쪽은 1개 더 빠져야 해. 언제 발톱이 나올지 몰라. 약을 독하게 써서 손톱도 빠질 것 같아.”

걷는 연습은 하고 있지만 휠체어를 타고 온 언니의 말씀이다. 서울대 일반병실에 있을 때 손톱 가득했던 봉숭아 물이 거의 다 빠지고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기적이야! 언니. 발톱은 오래 걸려서 그렇지 기다리면 발톱이 새로 나오잖아요. 절단하지 않는 게 어디예요? 너무 잘 되었네요.” 발을 절단하게 될까 봐 걱정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박수가 절로 나왔다. 만약 손톱도 빠지게 되면 새로 나올 것이니 시간이 가면 될 것이다. 살아나서 걸음 연습을 하는 게 어딘가? 시간이 흐르면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을 터인데.   


지난해 11월, 복통으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간 언니는 염증수치와 혈압이 자꾸 높아져 인공호흡기까지 했었다. 62kg으로 입원해 15일 사이에 78kg까지 몸무게가 불었다. 몸이 부어 팔다리에서 물이 흐르기도 했다. 병명을 모르는 채 염증수치를 내리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 했다. 그 결과 염증 혈압 모두 정상이 되어 인공호흡기 삽관 20일 만에 제거하고, 몸무게도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약 단계를 높이다 보니 발이 새카맣게 변해서 발을 절단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었다. 살아난 것도 기적인데 이제 발도 절단하지 않아도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23년 11월 13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24년 2월 18일 현재까지 응급실에 있을 때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 동생이다. 죽먹기 시작해 지금까지 식사와 과일을 사들고 가는 여동생을 보며 고맙고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언니가 살아있어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하는 동생이다. 어느 자식이 이렇게 효도를 할 수 있을까?          

동생이 내려온다기에 운전하기 어렵다고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도 당진으로 기어이 왔다. 언니가 시장 보면 들고 다니기 어렵다고 본인이 사 오겠다고 하는 배려 깊은 동생. 기어이 당진까지 와서 함께 반찬 만들어 같이 양평까지 갔다가 당진 집으로 데려다주고 갔다. 나는 오후 다섯 시에 도착하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 자고 새벽 3시에 기상한 것이다. 동생은 얼마나 피곤할까? 새벽이라 전화는 못하고 문자를 했다. 금세 답장이 왔다.    


“언니가 더 피곤하시지요. 아파서 어떻게 한대유. 저는 조금 피곤했지만 한잠 자고 멸치 볶고, 뭇국 끓이고, 밥 해놓고, 밥 먹고 쉬는 중. 피곤해도 언니들 있어 행복합니다. 쌀이랑 감태 잘 먹을게 유. 고맙습니다. 개고기는 바로 끓여 먹어보니 맛이 이상해  버렸어요.”          

영양탕은 언니가 안 먹는다 해서 도로 가지고 온 것인데 상했나 보다. 언니에게 밥 해 갖고 가니 쌀이 조금 남았다고 했다. 평소 밥 맛이 좋다고 당진 쌀을 구입해 가는 동생이다. 쌀을 사려고 집에서 10km 떨어진 용두리 정미소로 갔다. 나 때문에 운전하느라 고생한 동생에게 멥쌀 20kg, 찹쌀 20kg을 사서 차에 실려 보냈더니 고맙다는 문자다.   


‘일찍 출근하니 벌써 아침식사를 했구나! 동생 나이면 나도 그럴수 있지. 아니 지난해까지 나도 그랬는데.’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씻지도 못하고 잠들어 새벽 3시이지만 씻으러 나갔다. 허리 통증이 심해 고개만 숙이고 씻을 수밖에 없었다. 자는 남편을 깨워 파스를 붙여 달라고 했다. 어른들 말씀에 나이는 못 속인다 하더니 나이 탓인가. 운동을 하지 않고 산 때문인가? 아마도 둘 다 인가보다. 그래도 동생이 있고 언니가 있으니 행복하다.      

‘서해대교부터 비가 억수로 와서 저녁 8시 반에 서울집에 도착했다는 동생은 나보다 젊어서 그런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은 수업도 없으니 푹 쉬어야겠다. 내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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