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태어난 탓일까?
여름이 되면 기진맥진 기운이 빠지고 시장을 가거나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는 숨 쉬는 것 자체를 못 견뎌하며, 여름 여행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하루종일 에어컨 아래에서 살갗이 보슬보슬한 채로 선선한 바람을 맞아야만 온전히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여름 나기가 곤혹스럽다.
8월 한 달 삼복 더위 속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발 전문병원을 들락거렸다.
발가락이 아파서 찾았던 병원은 각종 검사를 거쳐 '지간신경염'이라 진단했다.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한두 달 해보자는 의사의 말에, 난 빨리 하이힐을 신고 싶은 마음에 수술에 대해 물었더니 일단 한두 달이라도 치료를 해 보고 다음에 다시 질문을 하란다.
좀 당황스러웠다.
한 두 환자를 치료한 것도 아닐 텐데, 증상의 경중에 따라 수술을 해야 할지 안 해도 될지 의사는 판단이 설 텐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몇 번의 약물 치료와 물리치료가 계속되었고 다시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의사와의 상담이 이뤄졌다.
"어디가 아파요?"
엥? 첫 방문도 아닌데 어디가 아프냐고?
"가운데 발가락요"
의사는 내 발도 아니고 발 모형을 만지면서 발가락과 발바닥이 닿는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요?"
"아니요 발가락요"
또 다른 곳을 짚으며 "여기요?"
어! 지금 이게 뭐지?
난 처음부터 발가락이 아파서 병원을 왔고 차트에 분명히 가운데 발가락이라고 적혀 있을 텐데, 이 의사는 발가락이 어디인지 모른단 말인가?
급 당황을 하며 "아니요 발가락요. 움푹 들어간 여기, 발가락요." 라며 발 모형의 발가락 부분을 짚어주었다.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그동안 치료를 했단 말인가?
정이 확~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한 달 정도 치료를 하면 어쨌든 차도가 있어야 정상적인 치료일 텐데,
아픈 가운데 발가락을 피해서 무게중심을 바깥으로 두고 걸으니 시간이 갈수록 발등과 발목까지 통증이 전해져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진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지간신경염'이란 병이 불치병도 아니거니와 내 상태가 수술을 해야 할 정도의 중증도 아닐텐데 왠지 의사가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고 계속 뜸을 들인단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으나 그래도 믿어보기로 했던 치료였다.
하지만 이런 불쾌감으로 더 이상 치료를 지속 할 수는 없었다.
한 달 전부터 다시 찾아온 왼쪽 무릎 통증과 봄부터 아파오던 오른쪽 발가락은 보행조차 힘들게 했다.
두통약을 하루도 빠짐없이 먹었고, 독한 정형외과 약으로 인하여 위장 속쓰림이 지속되었다.
자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자고 나면 골반이 아프고 자고 나면 살이 아팠다.
50대 초반에 이렇게 안 아픈 데가 없이 다 아프면 60대가 되면 70대, 80대가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백내장도 올 테고 치매도 올 테고 온몸에 근육이 다 빠져나가 앉거나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동도 못하고 환자처럼 누워서 요양원에서 목숨이 다 하기를 기다리면서 요양사들의 구박을 받아야 할까?
건강하지 않은 체로 90이 넘도록 살면 어떻게 할까?
몸이 아프니 마음이 함께 아파왔다.
아픈 곳은 많은데 한꺼번에 여러 군데를 치료하기에는 컨디션이 허락해 주지 않으니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했다.
발가락 치료약으로 고장 난 위장을 고치기 위해 한의원에서 한약과 침으로 또 9월 한 달을 보냈다.
그동안 몸을 혹사하고 나를 돌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과정이었다.
발가락 통증을 치료하느라 방치했던 무릎 치료를 위하여 방문한 병원에서, 진료 후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에 고민하던 발가락 얘기를 했다.
"발 전문병원에서 지간신경염이라고 해서 한 달간 치료를 했는데 차도는 1도 없고 현재는 발등과 발목까지 아픈 상태입니다. 지금은 대학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의사는 문진과 함께 나의 아픈 발가락을 만져보더니 "제가 볼 때는 지간신경염이 아니라 힘줄에 염증이 있어서 아픈 것 같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일단 정확한 진단이 나와야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므로 MRI를 촬영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신경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여기 발가락에 하얀 부분이 염증이 있는 부분입니다. 주사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 더운 여름에 멀쩡한 신경을 치료하느라 한 달간 병원을 다니며 발 상태가 더 심해졌단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도 병원을 다녀보면 다양한 의사를 만나기 때문에 치료과정에서 의사 성향을 파악 할 수가 있다.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기능 보존을 위한 치료를 하는 훌륭한 의사와 병원 수익을 올리기 위한 과잉 진료를 하는 장사꾼 의사가 눈에 보인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물리치료 1회의 비용은 7만 원 이상이다.
앞서 다녔던 발 전문병원 첫 방문 시,
수술에 대한 나의 질문에 일단 한두 달 치료를 한 다음에 다시 문의하라고 했던 의사의 목적은 치료가 아니라 돈벌이였나 보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담보로 본인의 돈벌이를 하는 장사꾼을 만난 것이었다.
새로운 병원에서 2주간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무릎과 발이 많이 편안해졌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염증이 사라지고 나면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벌써 신이 난다.
건강에 대한 희망을 찾은 기분이 들어 우울감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곧 8cm 다시 올라갈 수 있겠지? ㅋ
70, 80대에도 내 팔과 내 다리로 건강하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혹독한 여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