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이 분야에 있은 지가 10년이다. 더 크게 보면 1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많이 쉬고 놀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으니 같은 분야의 주변인들보다는 많이 뒤처지는 경험과 경력이다. 혼자 너무 기죽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난 나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겸손이 아니다.
기술이라면 누구든 하고 싶은 마음과 그 마음이 지속되는 시간만 있다면 터득할 수 있다. 그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나 내가 만족할 정도의 시간을 미리 못 가지는 게 어려울 뿐이지, 몸으로 배우는 건 누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라따뚜이]에서 나온 말 ‘누구든 요리를 할 수 있다.’처럼.
이 분야에 있었다 하더라도 기본은 동물을 좋아해서 시작했으니 대체로 우리 집엔 동물이 있었고, 일상에서도 동물을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한 주변인 중의 일부처럼 취미도 특기도 이 분야, 휴일도 휴가도 이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게다가 관심 가는 분야라고 해서 파고들고 찾아보며 공부하는 타입도 아니고, 기억력도 나빠서 공부했다 한들 확신을 두고 말하진 못한다. 내가 확신하며 말할 수 있는 건 내 생각들뿐.
학생 때에만 해도 사람들이 아무리 책이 중요하니 많이 읽고 교과서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잘 안 들었다. 일단 공부에도 재능은 없었지만 교과서도 결국 사람이 쓰고 책은 더욱 검증되지 않은 사람의 책도 많은데 굳이?라는 생각으로 어차피 안 좋아하는 걸 노력할 생각조차 없었다(그래서 지금은 늦게 시작한 연구 학문에 절절매는 중이다).
그런 나이지만 하필 몸담은 분야에서의 인력풀(人力pool)이 워낙 작다 보니 대체할 사람은커녕 일할 사람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어서 조금은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그동안 쌓은 것이라곤 경험으로 체득한 작은 노하우들뿐이라서 가방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대체 가능 소모품 인력이다.
그럼에도 이제 막 시작하는 이 분야의 새내기들에게는 가끔 내 덩치보다 내가 커 보이는 것도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곤 한다. 기술은 나에게 배우지 않아도 결국 다 나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다만 노하우를 미리 배우고 본인에게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하느냐는 각자의 능력치에 따라 다른 걸 테고 그걸 가르쳐주기 위해 우리가 있으니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근데 나도 모르는 게 많고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내가 가끔은 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저 한 분야에 남들보다 좀 일찍 들어와서 오래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과분한 수식어가 나한테 붙는 게 맞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직업이 생기는 초창기 시대부터 시작해서 오랜 세월 임하시고, 퇴직 후 90이 넘는 나이에도 정정하고 즐겁게 사시는 분의 모습이 나왔다. 이전엔 나도 모르게 그저 당연히 나도 같이 ‘와, 대단하시다.’ 하며 봤는데, 요즘의 나는 그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찾게 되었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 많은 고민들과 감정으로 나이 먹는지도 모르고 지내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 나이를 먹는 건데. 게임에서처럼 매일 일하는 게 내 능력치 올라가는 스탯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건데 왜 그저 오래 한 게 대단하게 보이지? 나도 오래 살면 그렇게 보일까? 난 하루하루 일하고 살아가는 게 버티는 것 같은데 그럼 오래 버티는 게 대단한 건가? 흔한 말처럼 들은 버티는 자가 승자라는 게 이런 건가? 그럼 굴욕과 고통과 거짓과 기만 안에서도 버틴다면 존중받을 수 있나? 나 자신을 잃게 되어도 버티는 게 대단한 것일까? 어쩌면 그렇게 버티면서도 숙명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건 아닐까?
그래도 정말로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잘 쳐주는 성실함과 꾸준함이 드러나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주는 개근상도 정말 어렵게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때엔 별생각 없이 다니다 보니 정근상을 탔다. 그때 처음 나도 꾸준할 수 있다고 느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난 꾸준함을 목표로 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한 분야만 파서 여기까지 왔다. 내 10년 안에서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나도 버텼고 결과로 보니 꾸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나를 고개 들어서 보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자꾸 내 말이나 생각이 TV 속의 그 어르신들 같을 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지.’하며 그래도 살아야 하니 버텼다는 말들과 나는 대단한 게 아니라는 생각들 말이다.
그런 생각들로 이 분야를 처음 시작하는 어른이들과 몇 번 얘기해보고 나니, 모든 어른이들이 다 같을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이 되고자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 써본다. 하루라도 먼저 해 본 우리가 도와줄 테니 너무 어렵고 대단하게 큰 산처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짐짓 과한 참견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작할 때 내 앞에서 먼저 해 보고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기에 많은 시행착오와 후회를 해봤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고, 많이 모자란 사람이라 나 같은 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지 하면서 세상을 원망도 해봤다. 쇼펜하우어처럼 이 세상은 지옥이라면서 살았다. 그래서 더욱 나 같은 게 살아서 할 수 있는 것도 몇 없으니 동물을 살리는 데라도 재능이 보이니까 계속 이렇게 나를 세상에 환원시켜 보자는 생각으로 직업마저 버리지도 못하고 성실해져 버렸다.
어쨌든 나는 지금 이 분야의 이 위치에 있으면서 나 역시도 더 먼저 시작한 전문가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시작하는 이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내가 그때 고민하던 것들을 안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중에도 누구는 전문가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겸손하여 가끔 주눅 들기까지 하고, 누구는 적성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음에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머뭇거렸다. 주눅이 들면 응원해주는 사람1 역할을 수행하고, 머뭇거려진다면 기회를 알려주었으며, 확신이 없다면 다른 선택을 해도 좋으니 자책하지 말라며 늦지 않았다고 다독였다.
어디든 시작의 기로에 서서 주눅만 들어 감히 발을 앞으로 못 내미는 나와 같은 어른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아직은 어른이이지만 그때의 나를 일으켜줄 수 없으니 지금의 그들에게 손을 뻗어주고 싶다. 10년 먼저 한 사람의 책임으로 주저하는 영혼들을 한껏 도와주고 싶다. 물론 그들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준다면 말이다. 나 역시도 더 먼저 시작한 전문가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다시 작은 한 분야의 첫 줄에서 길을 뚫어보고 있으니 미래의 나는 더욱 도움이 되는 자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잘만 버틴다면 아마도.
덧붙여, 포기해도 괜찮다. 그 길 역시 난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