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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현 Jan 12. 2024

두려움

악몽


  나한테는 특이한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 미끄러짐에 대한 두려움. 여태 살면서 나처럼 미끄러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들어본 적도 없고 보지도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나이가 들고서 입 밖으로 미끄러지는 게 무섭다고 하니 듣는 이가 신기해하더라는 특이한 종류.



 나란 사람은 잠을 자면 꿈을 많이 꾸는 타입인데 좋다고는 말 못 하겠다. 거의 매일 꾸는 꿈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거나 심하게는 꿈속에서 자면서 꿈을 꾸는 경우도 있고 며칠이 지나기도 해서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다. 좋은 일이 있는 꿈을 꾸는 건 매우 드문 일이며 사실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반면 안 좋았던 꿈을 얘기하자면 쉴 새 없이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라 제발 잠을 자면서라도 나를 멈췄으면 한다.


 반복되는 꿈들 중에 가장 클리셰로 남은 꿈 하나에서는 어떻게 해도 내가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꿈이다.  떨어질 때의 두려운 그 마음 그대로 깨거나 다른 꿈으로 이어나가서 더더욱 불안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이라 차라리 죽는 걸로 끝나는 게 낫겠다. 꿈에서 죽어보기도 했으니까. 그건 오히려 시원하고 편안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노력한 나에게 어떻게 해도 넌 떨어질 거라는 결말뿐이 없다고 자꾸 주입시키는 그런 꿈은 내가 꼽는 공포꿈 중 하나다. 남들은 이해 못 할.


 언젠가 나이가 적당히 들어서 아마 서른 전후 즈음일 때, 역시나 그 꿈이 초반부에 선 나는 클리셰처럼 진행되는 꿈 안에서 내가 곧 미끄러져 떨어진 위치까지 가서는 문득 나는 미끄러져도 죽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종종 꿈에서 이건 꿈이라는 걸 깨닫고 날거나 공간을 바꿔보기도 했는데 이 미끄러지는 꿈에서 깨달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미끄러졌다. 생각보다 시원했고 바닥까지 떨어져서는 안정적인 착지를 했다. 무슨 어벤저스의 아이언맨이 나타난 것 마냥. 그걸로 끝이 아니었던 그날 잠에서는 다른 이야기의 꿈을 이어서 꾸긴 했다.



 그 이후로도 미끄러지는 꿈이 간간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한 번의 깨달음으로는 학습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해결이 되기도 했다. 갑자기 계단이 나타나던가. 초지형태로 나타나던가. 결국 나를 믿지 않으면 미끄러졌다. '미끄러지지 않을 거야.'라는 강한 믿음이 있지 않으면 언제나 미끄러졌다. 다만 반이라도 조심히 걸어내려 갈 수 있었거나, 미끄러졌어도 이전처럼 두려움이 크진 않았다. 좌절이 크지 않았달까.


 그 공포는 아직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커어다란 댐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상황에 다들 미끄러지지 않거나 미끄러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내려가는데 나는 거기에 서서 공포를 지우지 못하고 심장이 쪼그라들어있는 걸. 아무렇지 않으려고 해도 결국 실패한다. 실패만 했었으니까.  당연한 거라 해도, 모두가 하는 거래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무서운 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이란 건 커져가고 무거워졌다. 지금 이걸 묘사하면서도 그때가 생각나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왜 항상 그곳에 서는 걸까. 분석해 보려고 고민을 해봤다.

 아,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 언덕에 있었고, 그 조그만한 아이였을 때에 난 집에서 내려올 때 반드시 지나야 했던 넓고 큰 진입로가 기억났다. 그 길이 꿈에서 갈수록 가파르고 커진 것 같다. 미끄러진 기억이나 그렇게 크게 다쳤다는 얘길 들어본 적은 없지만, 워낙 아기꼬맹이일 때 하도 넘어지고 다쳐서 상처는 많은 편이라 그 길도 나에겐 아마 공포였을지도 모르겠다. 미끄러울 때 미끄러져 본 건가.. 짐작만 할 뿐.



 몇 년이 지나고 며칠 전, 내가 있는 동네에도 눈이 조금 내렸다. 내가 여태 살던 곳 치고는 눈이 정말 쌓이지 않는 지역이다.  어떤 이유로 밤에 혼자 밖을 1시간 정도 왔다 갔다 걸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얕게 쌓여 녹은 눈이 슬러시처럼 깔려서 발을 딛는 어디든 미끄러웠다. 보폭도 평소의 반 정도에 시선은 바닥으로, 온 신경을 발바닥에 집중하면서 커다란 우산을 들고 걸었더니 1시간이면 다녀올 곳을 30분은 더 걸렸다. 돌아오면서 미끄러운 길이 조금 익숙해진 나는 길에 떨어진 눈이 반짝거리는 게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앞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그것도 두 발로 스윽 스윽 미끄러져가면서 시원하게 앞으로 나갔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난 길을 봤더니 발자국이 한 30cm는 늘어져 있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내 발자국이랑 비교되겠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정말 달랐다.


왼쪽은 미끄러져 가던 사람의 발자국, 오른쪽에 진한 건 내 발자국. 풋 하고 웃어버렸다.


 생각해보면 저 사람이 과감한 게 아닐 건데. 보통 어리거나 젊으면 미끄러지는 게 재미있으니까 다들 저러던데.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조근조근 밟으면서 온 건지. 내가 밟아온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아, 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누군가는 분명 나를 이해 못 할 것이다. 이해시켜 줄 여력도 없다. 이 공포를 모르면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테니까. 

 느꼈다는 건. 나는 정말 조심스럽고 느린 사람이다. 익숙해지면 빠르고 효율적인 사람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충분히 나를 믿어줘야 한다. 예전에 첫 자기소개서를 쓸 때에도 이런 내용을 썼던 것 같다. '처음엔 업무를 숙지하기까지 시간이 더디게 걸릴 수 있습니다만 확실히 이해하고 업무를 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며, 익숙해지면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썼었던 것 같다. 진작에 난 그런 사람인 걸 알고 있었는데 왜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또다시 깨달아야만 아는 건지. 그건 한두 번의 깨달음으로는 나를 보듬기에 부족했었나 보다. 



 물론 아직 이해해야 할 내 모습들이 많아서 헤매고 있지만. 지금 이 느리고 조심하는 모습의 나를 안아줘야 한다.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는데. 남들이 몰라줘도 나만 잘 알고 있으면 될 텐데. 자꾸 무너지려고 하니 발을 디딘 곳이 불안해서 자꾸 미끄러질 것만 같다. 떨어져도 죽을 리 없는 인생에서는 두려움만 남아서 쌓이고 쌓여 도망과 회피의 길만 밟아놓는다. 그러지 않으려면, 익숙해져서 자신할 수 있는 나를 만들려면 초보의 나를 알아줘야 한다.

 근데 그것도 참 쉽지 않다. 도망가는 편이 훨씬 쉬운 선택인지라. 



 내일의 나는 어떨지 장담할 수 없다. 오늘의 나는 일단 용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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