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l 08. 2023

집밥 한 선생

결혼대작전에 이어진 이야기

나는 밥순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학교를 갈 때도 우리 집 식탁에는 밥과 국이 차려져 있었다. 그렇게 매끼 집밥을 먹고살아서 더 밥순이가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 엄마도 밥에 진심이어서 식구들이 밥을 먹었는지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급식이 먹기 싫다 하니 우리 엄마는 귀찮은 내색 없이 도시락을 두 개씩 꼭 싸주셨다.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을 충실히 구현한 엄마 덕분에 나의 뇌에도 여자가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식이 박혀 있었다.

    

결혼 후 몇 주가 지났는데 집밥을 한 번도 못 해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엄마밥을 먹었고 독립한 뒤에는 병원밥을 먹었으니 라면 외에 요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엄마를 돕거나 보조를 해와서 하면 잘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결혼해서는 밥을 해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주말 저녁 한 끼는 집에서 먹어보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그냥 사 먹어도 되는데.’ 라며 말렸지만 건강 운운하며 끝까지 내가 해보겠다고 우겼다. 그리고 집밥에 관련된 책 두 권과 앞치마를 샀다.      


거기서 정한 첫 번째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그리 대단한 요리가 아니니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요리재료라고는 없었기 때문에 장을 보았다. 소금, 설탕부터 시작해서 쌀이랑 야채, 고기까지 산더미 같이 샀다. 맨날 먹던 김치찌개 그걸 못하랴. 일단 밥을 올리고 김치찌개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때 당시 나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일 외에 다른 기능은 퇴화된 상태였다. 레시피를 한 줄 한 줄 소중히 읽고 그대로 시행했다. 준비시간만 한 시간이 걸렸고 싱크대에는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 부엌은 엉망이었다. 내 소중한 토요일 저녁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남편이 와서 밥을 먹는데 표정 썩 좋지 않았다.

 '맛이 없었나? 이렇게 힘들여 준비했는데..'


그다음 주 주말 선택한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엄마는 뚝딱뚝딱하셨지 하며 겁 없이 덤볐다. 결과는 참담했다. 남편이 퇴근을 했는데도 음식은 다 완성되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게 닭과 씨름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겨우 요리를 완성하고 식탁에 앉았는데 부엌에는 쓰레기 산이 생겼 배 터지게 먹도 요리는 많이 남았다. 레시피에는 주로 3-4인분 기준으로 나와있어 저번주 김치찌개에 이어 닭볶음탕도 레시피대로 하다 보니 음식이 많이 남았다. 저번주 남은 찌개도 2-3일을 혼자 먹어 해결했다. 이것도 아침마다 먹고 출근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식사 정리가 끝나자 다음 주는 또 어떻게 하나 벌써 걱정이 되었다.     


저녁 식사 뒷정리 후 소파에 앉았는데 남편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우리 앞으로 저녁은 나가서 먹자. 나 밥 안 해줘도 괜찮아. 우리 엄마도 밥 잘 안 해줬어.”

내 머릿속에 메뉴 걱정밖에 없다는 알았나, 내가 두 시간씩 요리 준비 하는 걸 눈치챈 건가,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나 하며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식비도 우리 둘이 나가먹는 게 돈이 더 안 들어....”

그랬다. 우리 남편은 짠돌이 좋은 말로는 살림꾼이었다. 내 걱정보다는 식비걱정이 먼저인 남자. 결혼 전 느껴보지 못한 알뜰남의 모습이 와이프의 식재료 소비로 밝혀졌다. 솔직히 둘이 나가서 먹으면 2만 원 이면 될 것을 식사를 준비에만 몇 만 원을 훌쩍 넘게 쓰게 되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심지어 양도 2인분에 못 맞춰서 4인분씩 해버리는 와이프를 보며 말도 못 하고 남편도 참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요리해주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바쁘셔서 어릴 때 주로 외식을 많이 했다는 남편에게 따뜻한 집밥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좋은 의도였으나 성공 가능성 낮은 프로젝트로 솔직히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숙제였다. 처음에는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편으로 홀가분했다. 나는 남편이 그 이야기를 해주길 내심 기다렸다는 듯 이후에 밥을 한 번도 안 했다. 남편은 지금도 이야기하고 다닌다. 우리 와이프는 손이 너무 크다고. 식비가 엄청날 뻔했다고. 그 말이 밉지만 나에게 요리해 주길 바라지 않는 남편이라 다행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각자의 바람을 실현시키기보다 서로를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이후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지켜주었다고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