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 옮긴 수원 병원은 힘들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일하다 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덜 힘들었다. 바쁘기 때문에 인간들끼리 서로 정신적으로 고문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모두 자신의 일을 하면 되었다. 인턴끼리 친해질 시간도, 레지던트들이 인턴을 괴롭힐 시간도 없었다. 일이 힘들어 모두 수원이 싫다고 했지만 나는 좋았다. 교수님들도 훌륭하시고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멀쩡했다.
수원의 기억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도중 한 곳. 바로 흉부외과가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 맞다. 절대 가면 안 되는 과로 생각되는 그곳.
아무리 병원이 커도 심장 수술 하는 병원은 찾기가 힘들다. 심장 수술은 최고 난도 수술이기도 하지만 케이스도 많지 않아 큰 병원에서도 흉부외과는 인원수가 적다. 그러니까 결국은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술 한 건당 8-10시간씩 걸리고 에너지도 많이 들지만 돈은 안되니 병원에서도 어쩔 수는 없는 거다.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그렇다. 흉부외과 선생님들은 수련 후에 자신의 전공을 살려 심장 수술을 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 교수님이 퇴임하지 않는 이상 대학병원에 남아 제대로 된 대우를 받거나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비인기 과이기 때문에 레지던트는 없다. 일은 몇 배로 힘들어 QOL이 바닥인데 지원할리가 만무하다. 레지던트가 안 들어온다? 의사들이 이기적이라서? 당연한 거다. 의사도 인간이다. 의사라면 다 흉부외과를 꿈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 살기 위해서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과다. 스스로 무덤에 걸어 들어가는 셈이니까.
흉부외과 의사들은 매일이 당직이다. 다 병원 앞에 산다. 언제 환자가 들어올지 모르니까. 수술은 하루 종일 걸린다. 화장실도 못 가고 식사는 당연히 못한다. 그게 하루 이틀이면 모르는데 매일이 그렇다. 수술하고 나온 환자는 모두 중환자다. 매일 생사를 오간다. 중환자실을 떠날 수가 없다. 응급실 콜은 레지던트가 없으므로 인턴이 받고 펠로우를 연결한다. 펠로우들은 주치의의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교수가 되면 나을까? 교수도 병원 앞에 살아야 한다. 자기 손에 의해 환자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니 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찍 죽으러 들어가는 곳이니 열망에 가득 찬 비정상 범주의 사람들이 들어가지만 정상적인 사람도 들어가서 이상해 지는 게 당연한 곳이다. 거기에 흉부외과 의사의 개인 삶은 없다. 가족도 친구도 그들에겐 뒷전이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삶을 희생한다.
수원은 지방병원이지만 심장 수술이 있는 편이다. 심장 수술은 수술 중 환자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수술보다 더 스트레스가 많다. 평소에 교수님은 쾌활하시고 많이 웃으시고 친절하시다. 그러나 수술방에서는 초 예민한 상태로 허락받기 전에는 절대로 마음대로 움직여서도 안된다.
“내 허락 없이 움직이지 마. 죽는다....”
어느 날 심장 수술환자를 수술방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허벅지에서 박리 한 혈관이 막힌 심장 혈관의 대체재로 쓰이는데 어떤 수술 보다도 감염에 주의해야 하므로 수술 전 환자의 전신을 소독한다. 교수님은 우리가 소독하는 것도 못 믿어서 몸소 하신다. 그날은 소독을 위해 내가 환자 다리를 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80킬로그램이 넘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 다리를 비리비리한 여자가 두 손으로 하나씩 드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날 나는 포비돈 거즈로 얼굴을 맞았다. 분명 수술방에 들어오는 교수님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교수님 맘에 들게 다리를 못 들어서? 다리가 무거워 손을 벌벌 떨고 있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아니면, 그냥, 그날의 내가 맘에 안 드셨나 보다. 쌍욕과 함께 얼굴에 포비돈 거즈가 날아와서 철석 하며 달라붙는 느낌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눈을 떠보니 간호사가 거즈로 내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다리를 들고 있었다.
며칠 뒤에는 대동맥 박리 환자의 응급수술이 잡혔다. 8-10시간이 걸리는 수술이다 보니 나와 동기가 번갈아서 수술 보조를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 저질 체력이라 시험 전날도 두 시간은 꼭 자야 하는데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밤새 비몽사몽으로 수술어시를 하고 있는데 새벽 다섯 시 즈음이었나, 수술이 끝나가고 있었고 펠로우 샘이 “오분만 쉬고 들어와.” 하셨다. 아마 화장실만 갔다가 다시 들어오라는 말씀이셨던 것 같다. 나는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보니 여섯 시 반이 넘었고 수술은 이미 끝나있었다. 정신없이 회진 준비하고 콘퍼런스에 들어가서 욕을 오지게 먹었다.
“야! 너 미쳤냐? 어디 도망갔어? 너 혹시 자러 갔냐?”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탈의실에서 잠이....”
수술하다 환자가 잘못되는 일이 생기면 흉부외과 식구들은 모두 숨을 죽여야 한다. 그날 교수님께 잘못 걸리면 죽는다. 흉부외과에 근무하는 한 달간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은 다 들었지만, 그분들을 존경한다. 포비돈 거즈를 맞은 날도 교수님이 그리 밉지만은 않았다. 그저 저렇게 긴장하고 예민한 교수님이 짠했다. 심장수술을 위해 심장을 멈추게 하고 체외순환기를 돌리며 수술하는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흉부외과 의사는 그 순간 신과 같은 존재다. 미미한 인턴 나부랭이가 그 순간을 함께 해서, 환자를 살리는 그 순간에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했다. 제발 남은 흉부외과 선생님들이 건강하시기를, 견디시기를, 계속하시기를... 나는 이렇게 비겁하게 밖에서 바라만 보며 기도할 수밖에 없다. 이 빌어먹을 제도가 고쳐지지 않는 한 기도밖에는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