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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14. 2023

베스트 프렌드가 되기로 했다

결혼대작전에 이어진 이야기

나의 결혼은 다를 줄 알았다. 결혼생활을 지긋지긋함에 비유하는 선배들의 말이 듣기 싫었고,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다. 그러나 나도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 남자와 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지고 그렇게 되는 우리가 싫어지고 마지막에 남은 서운함은 지속되었다. 무슨 일이든 상의하고 다정한 언어를 쓰는 동생 부부를 보면 부러웠다. 분쟁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서로를 언제나 이해하고 믿는 커플. 어떻게 해야 저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걸까? 우리의 문제는 도대체 뭐지? 내 생각에우리 문제의 모든 원인 남편이었다. 남편을 쳐다볼 때면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왔고, 다정한 말 한마디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 번은 동생이랑 같이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도 남편과 싸우는 모습을 보며 동생이 냉정하게 말했다.

“언니, 그렇게 힘들면 그냥 그만둬.”     


그래, 그만두자. 내 인생에서 이 결혼이 뭐가 그리 중요해서 나는 이 지옥에서 살고 있나. 나는 내 행동이 이 남자와 살아보겠다는 건지 안 살겠다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분명 이 남자와 살기가 싫은 여자였다. 생각해 보면 남편이 먼저 잘못은 하지만 그걸 강화한 것은 나였고, 지혜롭게 풀지 못한 것도 나였다. 그냥 싫고 밉다는 감정 미움으로 가득 차 남편뿐 아니라 나 자신도 고문하고 있었다.

     

결혼 6년 차, 주말부부 1년이 지난 시점에 내가 말했다. “우리 그만 정리하자. 너 없으니까 내 삶이 더 가볍더라.” 심각하게 말하면서 이 남자는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대답했다. “나는 너랑 절대 안 헤어져.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리고 이 남자는 나에게 매달렸다. 이후에 조금씩이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종종 아이들을 챙기고, 가끔 주변을 둘러보아 주었다.  평생 안 바뀌는 아버지를 보아 와서일까, 변하는 이 사람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 남자도 결혼생활이 처음인데 나는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한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입으로는 남자라는 생명체가 여자와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고 했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항상 서운하고, 맘에 안 들고, 부족하고, 요구하고 결국은 남편이 미웠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었던 것은 나의 남편은 나랑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내 행동이 지긋지긋할 만도 한데 변함없이 단호하게 말하는 남자. “나는 이 결혼 한번 도 후회 안 했어.”     

여전히 지금도, 그는 자기 할 일이 먼저지만, 그 부분도 이제는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니, 조금은 적응을 한 것이리라. 이전에는 비난으로 시작했던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당신은 당신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하잖아. 대신에 이번 주말은 애들이랑 같이 보냈으면 좋겠어.”

라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며 조율하니 싸움도 조금씩 줄어갔다.


몇 년 전 싸우는 도중에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자기 나 정말 이해 못 해? 우리 베프 아니야? “

친구? 부부가 친구? 너무 슬픈 일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우리는 제일 친한 친구가 되면 되는 거였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이. 그래 우리 베프가 되자. 이후로는 싸울 때면 불리한 사람이 먼저 이야기한다. “너 나의 베프라며. 이해 좀 해줘.” 신기하게도 친구라면 이해가 된다. 그렇게 분쟁 대충 종료되고 넘어가니 큰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남편에게 편지를 쓰라는 글쓰기 수업의 숙제를 하는데 오글거림이라고는 없는 글을 썼다. 그래, 뭐 친구끼리 당연한 거 아니야? 하며 메일을 보냈다. 남편의 손 편지는 첫째 낳고 조리원에서 받고는 기억이 없다. 그때도 내가 써달라고 한 것이었고. 그에게 답장을 받으려면 메일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답장을 받아도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았다. 메일을 보낸 날 밤, 답메일도 없고 아직 귀가 전인 남편에게 톡을 했다.

'자기한테 메일 보냄. 답장 필수'

내심 남편이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나 보다.

'다 읽었고 항상 사랑해. 피터팬을 이해해 주는 웬디인가?'(내 편지의 제목은 '피터팬을 닮은 나의 남편에게'였다.)

또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려 하나. 새벽에 들어온 남편에게 “장문의 답장을 써줘!”라고 말하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한 남편에게 답장이 왔다.     


우리 집의 든든한 가장 안나에게   

철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피터(?) 남편과 11년을 살면서도 항상 이해해 주고 사랑을 줘서 고마워.

자기와 달리 난 11년의 결혼생활 중 우리 결혼을 후회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네.

부부라는 존재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애증이 넘치는 존재인데, 우리도 점점 그렇게 돼 가는 것 같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를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이겨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이겨나갈 것으로 믿고 있어.

우리 애들도 자기의 애정 어린 가르침과 나의 적당한 관심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 스스로 멋진 존재로 커 나갈 거야.

멋진 의사로 똑똑한 엄마로 믿음직한 자식으로 사랑스러운 아내로 매일매일 전투하듯 자기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와이프 항상 존경하고 사랑해.

우리 지금처럼 가끔은 다투지만 서로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남은 인생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나가자.

항상 고맙고 사랑해.                                                                                              

당신의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가         


눈물이 안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났다.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치열하게 싸우고 미워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저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끔은 ‘베스트 프렌드 포에버!’ 하 서로의 우정을 강요하지만 그것도 꽤 마음에 든다. 조금만 더 일찍, 먼저 이해해 줄 걸 하는 후회와, 더 사랑만 하며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지만, 지금이라도 잘 지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사이가 베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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