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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24. 2023

일 년만 기다려줘

내 결혼 이야기

일 년만 기다려줘. 그가 말했다. 남편과 결혼할 당시 계급은 경감이었다. 경찰의 계급 같은 건 내 평생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은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11개의 계급을 외우는 지경이다.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주로 짭새. 경찰대를 나왔던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서 들어왔던 계급도 상관없이 경찰은 다 짭새라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이 좋다고 했다. 너희는 그래도 항상 선생님이잖아. 그러면서 말했다. “올해 무조건 승진해야 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몰라.”


경찰의 승진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남편이 경감시험을 칠 때는 몇 달을 고시원에서 살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고 했다. 남편도 이럴 거면 사법고시를 준비하지라고 생각했단다. 고시준비한 친구들은 비웃을지 모르나 그들만의 리그는 치열했다. 더 웃긴 건 경감 합격하고 나서 주변에 인사를 해야 해서 술값으로 몇백 이상을 썼단다. 정말이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MZ세대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한 달에 버는 월급이 얼마라고 인사한다고 몇백만 원을 쓰다니. 취직을 돈으로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승진의 시기가 다시 도래했다. 남편의 다음 계급은 경정.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외근이라 시험이 아니고 심사를 할 거라고 했다. 당시 남편은 정보부 외근이라서 회사 전무로 불리면서 공기업출입을 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 인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부를 오래 해서 온갖 사실을 모으고 정리하는 일이 익숙한 남편은 이야기하면 모르는 게 없고 모르면 알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남편은 자신이 무슨 일 하는지 이야기하고 다니면 안 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나는 그런 걸 말할 사람이 없었다. 누가 남의 일에 관심이 있겠는가.


심사로 승진한다는 말은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말이고 그 말은 이상하게도 술자리가 많다는 것을 뜻했다. 일이 많다고 하는데 보면 술자리 약속이었다. 외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이 남자는 얼굴이 벌게서 들어와 자주 토했다. 식은땀을 많이 흘리고 항상 피곤해하며 불면에 시달렸다. 젊은 나이에 복부비만과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고 지방간도 동반되었다. 가끔 자다가 흉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119를 불러야 하나 여러 번 고민했다. 금주가 필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게는 일 년만 참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남편이 승진을 준비하는 동안 둘째를 임신했다. 그래서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잘린 거나 다름없었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자마자 원장님은 내가 빨리 그만두었으면 하셨다. 출퇴근 두세 시간 운전하는 것이 힘들다 하니 그냥 집에서 쉬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말씀하셔서 그러기로 했다. 후임을 구하고 나가라고 하셔서 쉬고 있는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몇 달 뒤 메르스가 터져 어차피 잘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좀 억울하긴 했다. 게다가 아껴서 살림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 남편월급으로 사는 게 빠듯했다.


심사가 다가올수록 남편은 더 날카로워졌다. 나의 실직도 스트레스 요인인 것 같았다. 거의 매일 술자리가 있었으므로 집에는 남편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농담으로 애 태어날 때 보고 대학 갈 때 만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승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했다. 승진을 위해 사는 인생들이었다. 총경이 되었지만 간암이나 위암에 걸린 선배들이 있었다. 경찰조직에서 총경까지 가려면 장기하나를 바쳐야 한다는 농담을 하며 그들은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힘들었다. 임신하고 벌이도 없으니 더 우울했다. 그 힘듦을 큰아이의 재롱을 보며 겨우 버텼다. 임신하고 4개월째 둘째 심장에 부정맥이 발견되었다. 소아과 태아전문교수님께 넘겨져 매주 태아 심장초음파를 한 시간씩 봐야 했다. 심장이 안 뛰는 시간이 길고 자주 발견되어 선천성 심장이상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남편은 걱정했지만 나와 함께 해줄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임신이나 출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는 승진을 못하면 생길 여러 가지 문제들이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서운했고, 화도 났고, 우울했다. 둘째 출산 후 첫째와는 달리 너무나 예민하고 자주 길게 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임신기간의 정신상태 때문이 아닌가 의심했다.


승진 발표 전날 남편은 한숨도 못 잤다. 나도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깨서 잠을 설치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남편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승진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너무 기뻐하였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축하해. 고생했어.”

“자기는 기쁘지 않아?”

“아니, 기뻐.”

분명 기쁜데 그저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날저녁 할 말이 있다며 산책하자는 남편말에 애들을 재우고 친정엄마께 맡기고 나갔다. 걷는 두 시간 동안 일 년간의 승진스토리를 다시 반복하는 남편이 지겨웠다. 매일 듣던 이야기. 어쩌면 저렇게 자신밖에 모를까. 나에게 고마웠다고 했지만 그 말로 내 텅 빈 마음이 충족되지는 않았다. 남편이 물었다.

“승진하면 우리 지방 가야 하는데, 어디 가고 싶어?”

“제주도”

“어? 제주도?”

“응”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에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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