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l 28. 2023

당신이 지긋지긋했던 이유

나의 결혼이야기

“나 오늘 소화가 잘 안 된다.”라고 하면 나의 남편은 어김없이 잠시 후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한다. 첫아이를 임신하여 입덧을 할 때도 남편은 자기도 속이 안 좋다며 입덧을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밥을 못 먹었다. 그때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따라 아픈 모습에 남편의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0년을 넘게 살고 보니 몸이 안 좋을 때면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이 남자는 또 아프다고 하려나' 하며 걱정이 앞선다.


이 남자의 무엇이 그렇게 지긋지긋했었나 생각해 보았다. 살면 살수록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편, 자신의 감정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모습, 나 또한 남편에게 내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었다. 사실 남편이 지긋지긋한건 그가 아니라 그와 사는 내 모습이었다. 이 사람과 살면서 경험한 나의 바닥은 너무나 끔찍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애정결핍이 있었고 나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그는 나의 안정감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안정감을 갖기 위해 자주 물었다. “너도 나 없으면 못살지?” 그런 물음을 들으며 내가 없으면 불안할까 봐 저렇게 묻는 이 남자가 짠하기도 했고 내가 없으면 못살게 해 주고 싶기도 했었다. 마음은 어린아이인 나의 남편은 주변의 인정욕구가 강했고 사랑을 갈구하였지만 본인의 감정이 충족되고 나면 나의 감정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원래는 아주 감정적이고 여린 타입이었지만 감정을 죽이고 사는 트레이닝을 오랫동안 받아와서 감정조절이 나쁘지는 않다. 일과 육아와 남편과의 관계는 분리하며 살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행복한 엄마인 듯 연기했는데 아이들과 있으면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갈수록 아이들 앞에서도 남편과 다투는 일이 생겼고 그것이 나에게는 제일 힘든 일이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에도 부모님의 대치상황이 제일 불편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살고 보니 이 남자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도 이제는 별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이해가 되고 거기에 서로 맞추고 있다. 절대 맞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우리는 다행히 그 산을 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말이었다. 제주 와서 주말부부로 지내는 3년간은 거의 대화를 하지 못했다. 다시 남편이 제주로 내려와 지내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남편은 약속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내 하루를 궁금해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아이들은 어땠는지를 묻고 나의 두서없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남편은 본인의 이야기도 많이 하였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와 이야기하고 나면 감정이 수그러들어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나도 들어주는 일이 힘들었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지금은 나도 꽤 괜찮은 조언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베프가 되기로 하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상대방이 어떤 상태라도 그러려니, 나중에 이 사람과 다시 이야기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믿음이 앞서는 우리를 본다. 한 인간과 서로의 바닥을 알고 나서 서로의 바닥까지 이해하는 경험이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래 살아온 부부가 그렇듯 다행히 우리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골프지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