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무엇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는 저출산이네 결혼을 안 하네 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사실 이런 결과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부분도 어느 정도는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자신만의 삶을 살기도 벅차서 사랑하는 사람 한명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심지어 다른 가족이 몽땅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나 또한 공부를 하고 수련을 받으면서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고 주변을 돌아보며 사는 것은 진작 포기했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에 대해서 별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결혼은 그때까지는 별 스트레스가 없는 그저 내가 사랑한 남자와 살아갈 수 있는 방도였다. 하지만 결혼을 그저 그렇게만 생각한 것은 나밖에 모르는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버님의 말씀은 아팠지만 나에게 필요한 약이었다. 어른이라면, 부모라면 자식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하며 아픔은 빨리 회복하기로 했다. 사실 상대방이 그런 말을 왜 할 수밖에 없었나 생각하면 세상에 이해 안 되는 일은 없다. 아버님이 나에게 바란 것은 그리 큰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싶은 그런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의 행동의 변화가 필요함을 인지했다.
“나한테는 연락할 필요 없다. 집사람하고만 연락해도 된다. 나는 신경 쓰지 말거라.” 아버님이 나에게 남기고 가신 한마디를 다시 생각해 보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결혼한 지 5년이 다 되어갈 때까지 아기 사진 한 장도 남편이 보내고 전화도 남편이 하고 나는 그저 들러리 마냥 그렇게 지냈다. 나의 가족이기도 한 관계를 나는 구경꾼처럼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으면서 잘하고 있다고 박수만 친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머니께 일주일에 한 번은 애들 사진을 내가 보내자.' 어머니는 아버님 혼자 나에게 찾아오신 것도 모르실터였다. 다행히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내가 사진을 보내도 이상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 같았다. 친정에 하는 거 반에 반만 해도 되는, 노력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매주 어머니께 규칙적으로 사진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용기를 내어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드려보기로 했다. 시어머니께 전화를 거는 일은 사실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고, 요일을 정하지 않으면 지속적 실행이 힘들 것 같아서 하루를 정해 퇴근시간에 맞추어 알람을 설정했다. 통화는 퇴근시간 중 5분이면 될 것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문안인사를 시작으로 어머니와의 소통을 시작했다. 처음 우리의 통화는 1분 남짓이었다.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로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이야기 남편이야기 일터에서 일어난 이벤트 등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통화를 어색해하셨던 어머니도 점점 주변 친구 이야기, 여행 이야기, 아버님 건강 이야기 등을 하시며 나와의 소통을 점점 편하게 느끼시는 것 같았다.
매주 한번 하던 통화는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늘어났고 그렇게 통화하며 지낸 것이 벌써 몇 년이 되었다. 가끔씩은 일주일 내내 통화를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어떤 글을 읽었는데 매일 시부모님이랑 전화하는 며느리 이야기였어. 근데 그 시어머니가 바로 나더라고. 매일 며느리랑 통화하는 시어머니 만들어주어 고맙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는 시부모님께 제주살이를 제안했다. 서울에서 코로나 공포로 꼼짝도 못 하시는 부모님께 제주 와서 지내시기를 말씀드렸을 때 내가 힘들 것이라며 아버님은 반대하셨다. 코로나가 길어지자 마지못해 한달살이 하러 오신 아버님이 일주일 지내시고는 마음에 드셨는지 제주로의 이사를 결정하셨다. 그렇게 코로나 기간 3년을 제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제야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얼마 전 다시 서울로 이사하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이렇게 우리랑 잘 지내주어 너무 고맙다. 덕분에 3년 잘 지내다 간다.” 거듭 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아버님께 이번에는 감사의 눈물로 답해드렸다. 나 또한 어설픈 며느리 행세를 잘 받아주셔서, 마음을 알아주셔서, 내가 무엇을 하건 긍정적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할 뿐이었다.
내년에는 바쁜 남편은 두고 며느리와 시부모님과 손녀들의 여행을 계획 중이다. 혼자 시부모님 모시고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 걱정도 많이 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과 할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실행해 볼 생각이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쌓여야만 한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보낸 시간과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이제는 우리를 진짜 가족이라고 말해도 괜찮은것 처럼말이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따뜻한 말이기를, 언제나 이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지켜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