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학생들과 연극 프로젝트2
지난 11월 3일 학생들과 참가한 광주시민연극제에서 우리는 작품상을 수상했다.
청평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고생한 보람이 좋은 성과로 나타난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우리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것이 기뻤다. <시선, 그때 우리는>은 아이들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직접 대사도 쓰고 함께 만든 작품이기에 무대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값진 성과를 얻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실은 공연 직전까지도, 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남몰래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무대의 완성도가 요동을 쳤기 때문이다.
그중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기까지 가장 힘들고 긴 시간을 들인 H는, 무대에 서는 것에도 유달리 긴장도가 높았다.
H는 ’장애인’을 향한 친구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알았고, 그래서 도움반에 가기를 거부했던 학창 시절의 경험담을 극에 담았다.
내내 장애인임을 숨기고 싶어 하던 아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장애가 있음을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응원해 주는 교사와 친구들에게 기대어 용기를 냈으나 편치만은 않은 길인지라 아이는 갖가지 방식으로 불안함을 표시했다.
특히 공연 이틀 전 교내에서 선후배를 대상으로 프리뷰 공연을 앞두고는, 하기 싫다며 작년에 자주 보이던 비딱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대사를 외우고 연습하여 비교적 안정적인 연기를 보였지만 쉬는 시간이면 감정의 기복이 컸다.
성실히 연습하는 태도에서, 연극 프로젝트 수업일이면 평소와 달리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서는 투덜대는 말과 달리 회피하고 싶은 상황을 마주하고자 하는 진심 또한 느껴졌다. 치열하게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샘솟았다.
나는 아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만 그 크기를 감히 알지 못한다. 이 연극이 아이들에게 치유의 과정이 되리라 믿지만 무대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울지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H가 무대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상상을 했다. 우리는 아이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고자 하지만 결국 마지막 한 발을 내딛는 데 필요한 건 스스로의 의지이다.
프리뷰 공연일, H는 긴장해 잔뜩 굳은 얼굴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첫 대사를 한참 동안 뱉지 못했다. 영화였다면 NG를 외쳤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연극이었고, 무대를 채우는 건 오로지 아이들의 몫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긴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H는 겨우 첫 대사를 토했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야.”
무수한 연습으로 달달 외운 덕분인지 첫마디 이후로는 쭉 대사가 이어졌다.
다음 장면에서도 H는 첫음절을 꺼내기가 힘겨웠지만 이어지는 대사는 매끄럽게 소화했다. 기나긴 침묵은 그 아이가 홀로 견뎌온 과거의 흔적이었고, 막힘없이 이어진 대사는 그 아이가 노력해 온 현재의 증거였다.
“제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면 불행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행복해졌어요. 지금은 애견훈련사와 미용사라는 목표를 갖고 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학교생활도 너무 편해졌어요.“
H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대사를 하고 단체 군무까지 공연을 마쳤을 때,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아이의 진정성이 관객들에게도 닿은 것이다.
나 역시 공연을 준비하며 수십 번 본 장면임에도 눈시울이 시큰했다.
H 뿐만이 아니다. 연극의 주인공이 된 것에 마냥 신나 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한 C의 에피소드에서도 나는 코끝이 찡했다.
작품 속에서 ‘이젠 스스로 할 수 있어요!’를 외친 아이는 실제로도 ‘제가 할게요’가 늘어났다.
손기능이 약해 혼자서 리본을 묶지 못했었는데 연극 장면을 위해 리본 묶기를 연습했고, 이제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방법을 터득했다. 제 물건도 남에게 맡기던 아이가 무거운 연극 소품을 제가 들겠다며 나서고, 제가 흘린 음료도 남들이 닦아주기만 기다리던 아이가 제가 식사한 자리를 척척 정리한다.
군무도 원래 기억하지 않고 그냥 다른 친구들을 따라 하느라 한 박자 이상 늦고 몸짓에도 힘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앞서 나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아이에게는 큰 동기부여로 작용한 듯했다.
극 중에는 다 담지 못한 여러 장면들이 C의 뒤로 스쳐서, 앞치마 리본을 묶는 짧은 장면에도 나는 마음이 찡했다.
M이 반짝이 재킷을 입고 신명 나는 트로트를 목청껏 불러댈 때는 너무 대견했다.
주말에 뭐 했냐는 평범한 질문에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던 아이가 2학년 봄 MT에서 처음 노래를 선보였을 때 모두가 깜짝 놀랐었다.
“저는 말을 좀 더듬어요.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는 좀 괜찮은데 이렇게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거나 어른들하고 이야기할 때는 말을 많이 더듬어요. 지금도 많이 긴장돼요.“
담담한 자기소개로 장면을 시작하는 M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관객 앞에서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엄청난 변화이고 성장이었다.
지금까지 상처를 주었던 말들에 대해 털어놓는 K의 이야기에는 번번이 마음이 아팠다.
“넌 이런 것도 못하냐?“
“하지도 못하면서 왜 나서? 너를 믿은 내가 바보다, 바보!”
“저리 가, 너 때문에 망쳤잖아!”
“아무것도 하지 마.”
주인공은 K였지만 거기엔 오랫동안 박혀있는 가시 같은 말들로 상처 입은 모든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아프게 한 말, 사람, 상황 등을 두고두고 잊지 못해 곪아있었다.
무대 한 번으로 지난 상처가 전부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히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고 말하는 K의 낯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실제로 공연 후 K는 ‘과거의 상처가 지워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J의 에피소드에서는 잘못된 행동으로 갈등을 유발하던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이제는 함께인 게 더 좋아졌다 말하던 어느 날의 감동이 떠올랐고.
늘 외로웠다는 W가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며,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외칠 때도 뭉클했다.
그리고 극의 또 다른 주인공, S도 참 귀하고 기특했다.
우리 학교에는 졸업 후에도 개별적인 욕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인턴쉽 과정이 있는데, S는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학교를 좋아해 주 1-2회 등교를 하고 있다.
S는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연극을 좋아해 2학년 프로젝트 수업에 멘토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후배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게 스스로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S는 후배들에게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수업 중 상처, 분노, 변화, 행복 등에 관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반복적으로 후배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래서 6명의 주인공에게 힘을 주고, 조언을 하고, 대신 화를 내주는 등의 역할로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을 했는데, 직장 때문에 학교를 자주 나오지 못함에도 대사와 동선을 다 외워와서 놀라웠다.
덕분에 우리가 ‘대배우’라는 별명도 붙여주였다. 대배우답게 기분에 따라 대사를 바꾸고 애드리브를 남발하여 후배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지만 S는 공연을 연습하는 내내 행복 가득한 얼굴과 드라마틱한 표현력으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또한 무기력하고 자발성이 없던 2학년 아이들이 스무 명의 복잡한 순서와 동선, 동작, 대사를 외우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수업의 성과였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다 보니 배역의 비중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작은 역할에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공지사항이든 활동지든 주기만 하면 몇 시간 이내로 낙서하고 찢어서 버려버리기 일쑤이던 아이가 대본을 두 달 내내 파일에 넣고 곱게 간직하여 소소한 감동을 불러오기도 했다. 본인의 대사라고는 ’저리 가‘ 달랑 한 마디였는데 형광펜으로 칠하고 빈 공간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를 반복해 쓰며 연습한 흔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관심표현을 하지 않던 아이들이 한 무대를 만들며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도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해낸 것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주인공을 맡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직 본인의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아이들도, 친구들을 보며 다음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비췄다.
저마다의 속도로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공연 연습을 한 건 두어 달, 공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두 학기 정도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우리가 함께 한 이년 여의 시간이고, 아이들 각자가 가진 스무여 해의 세월이다. 연극제는 끝났지만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긴 여운이 남는다.
스토리와 구성력으로 호평을 받은 무대 위의 모습(호산나대학 유튜브 참고)도, 우리만 알고 있는 무대 뒤의 모습도, 모든 순간이 벅찼던 <시선, 그때 우리는>의 비하인드 스토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