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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Dec 14. 2023

퐁듀와 올드 패션(Old Fashioned)

그리움


아침에 일어나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카톡 메시지 101개.

이렇게 많은 메시지는 백발백중 고등학교 친구들의 단톡방이다. 이 단톡방은 카카오톡이 생긴 이래 사라진 적이 없는 고대 유물, 아니, 어쩌면 우리의 과거사를 모두 간직한 블랙홀 같은 곳이다.

나를 제외한 6명의 친구들이 모두 창원 근방에 모여 살아서 자주 만나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다 같이 찜질방을 가기로 한 모양이다. 숯가마 찜질방이라 고구마와 감자를 가져가도 된다는 대화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저녁 메뉴와 술안주 사진들, 찜질방을 갈 때 누가 누구를 픽업해서 갈지, 아이들은 데리고 올 건지, 1시간 정도 운전해서 가는데 간식거리는 뭘 들고 갈지, 이런저런 대화가 한참 이어졌다.

시지만 봐도 친구들의 말투나 억양, 목소리 톤까지 들리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물론 좋은 것도 많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아쉬울 때가 많다. 가까이 살면 별다른 계획 없이도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도 가도, 친구네 가족들과 여행도 갈 수 있을 텐데.

너무 바쁘고 고달팠던 어린 시절, 친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라는 존재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가난한 사람에겐 우정도 사치라는 생각에 그녀들의 관심을 무시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라면 한 봉지 사 먹을 돈이 없을 때도 이 친구들은 내 곁에 있었고, 먹고살 만해진 지금도 내 곁에 있다. 이 친구들 말고도 한 동네에서 함께 태어나 자란 친구 Y도, 중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 MH도,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며 만난 간호사 친구들도 여전히 내 곁에 있다. 나의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는 그녀들은 그때도, 지금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5년간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첫 두 해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병원 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고, 그다음 3년은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 사이 친구들 중 두 명이 결혼을 했고, 두 명은 아버지를, 한 명은 어머니를 여의었다. 결혼식에 참석 못 한 것도 미안하고 속상했지만 부모님을 잃은 친구를 곁에서 위로할 수 없었을 땐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까지 들 정도로 미안했었다.  

근사한 말로 위로는 못해줘도 곁에 있어줄 수는 있는데...
그마저도 못하는구나.

20대, 30대엔 결혼과 출산, 돌잔치에 쫓아다니기 바쁘더니 30대 후반, 40대가 되니 친구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혹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작년, 한국에 오랜만에 들어가서 동네 친구 Y와 중학교 친구 MH를 만났었다. 술자리에서 친구 MH가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굳이 멀리 사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마음속에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그렇지, 나 미국에 살지...
물리적인 거리가 이렇게나 크구나.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내 삶이 힘겹고 고달플 때, 힘이 되어준 친구들.
나는 과연 친구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 기대고 싶은 친구일까?
너무 멀리 살아서 제때 위로도 못해주고, 곁에 있어주지도 못하는데,
과연 나는 그들에게 좋은 친구일까?

별 볼일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알짜배기 친구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누가 태우러 오는데?"

내 카톡에 친구 하나가 재치 있게 대답을 한다.  

"미안~~~ 나는 눈길 운전은 쥐약이라~ ^^"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단톡방의 멤버는 원래 8명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인간관계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는 친구 한 명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금은 칠공주지만 언젠가는 다시 공주가 될 것이라 믿는다.


보고 싶다, 내 친구들.




얼마 전에 직장동료들과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 연극을 보러 갔었다.

연극 시작 전, 극장 옆의 바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며 다 같이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올드 패션에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려 퐁듀를 시켰는데,  스위스에서 맛보았던 퐁듀와는 정말 다른 미국식 퐁듀. 이렇게 짜게 만들기도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올드 패션이 맛있었으니 통과.


오늘은 혼술이 아닌 다 같이 술 :)



올드 패션 레시피는 [피자와 올드 패션] 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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