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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Mar 27. 2024

3월 말에 폭설은 좀 너무 하잖아


엘니뇨 윈터를 보내고 있는 미네소타는 지난겨울, 거의 눈이 오지 않았었다. 살을 에는 극한의 추위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평년보다 높은 기온으로 4월 중순이나 말이 되어서야 녹아 사라지던 눈도 2월쯤에 모두 없어진 뒤였다.

작년 가을에 심어놓았던 튤립 씨앗이 3월 초에 벌써 싹을 틔웠고, 다른 꽃나무들도 연녹색의 새순을 내놓았는데... 갑자기 폭설 경고가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3월 말에.

3일 내내 경이로운 속도로 쏟아붓는 눈에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신랑과 나는 매 두 시간마다 나가서 눈을 치우고 있다. 축축하게 젖은 눈이 얼마나 무거운지... 어깨가 빠질 것만 같다. 그 와중에 우리 스노우 블로워(Snow blower)가 고장이 나서 앞집 브루스 할아버지 걸 빌려서 썼는데... 신랑이 쓰다가 뭔가를 고장을 낸 건지 작동이 멈춰버렸다.


플라우 트럭이 지나가고 나면 드라이브웨이를 경계로 산처럼 높은 눈이 쌓이게 된다. 브루스 할아버지 드라이브 웨이부터 치우고 있는 신랑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화요일 아침, 신랑은 브루스 할아버지 댁에서 그 스노워 블로워를 고친다고 몇 시간째 씨름 중이고, 나는 계속해서 쌓이는 눈에 반복적인 삽질을 하고 있다.

아... 진짜... 이건 사람 할 짓이 아니다...

이 와중에 제일 신이 난 건 바로 만두와 하나. 오랜만에 온 눈에 뒷마당과 숲을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다리가 짧은 만두를 위해 신랑이 아침 일찍 스노우 슈(Snow shoe)로 몇 갈래 길을 만들어 놓은 덕에, 내가 덱에 쌓인 눈을 치우는 동안 둘은 공놀이도 하고 눈 밭을 뒹굴며 한참을 놀았다.


이렇게 스노우 슈로 눈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무릎 위까지 발이 빠져서 걷기가 힘들다



어느 정도 눈을 치우고 둘의 배변을 위해 집 뒤의 숲으로 향했다. 역시 하나는 일사천리. 눈 깜짝할 사이 대소변을 말끔하게 해결한 반면, 만두는 한껏 꼬리를 내리고 어기적거린다. 눈을 엄청 좋아하면서도 눈이 심하게 오는 날은 무슨 일인지 숲에서 배변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꼭 목줄을 잡고 도로가로 나가야지만 배변을 하는 알 수 없는 심리. 발이 푹푹 빠지는 것 때문에 그런가 싶어 스노우 슈로 길을 만들어 주고 어르고 달랬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리쉬 줄을 잡고 길가로 나갔다.


깐깐한 그녀는 볼일을 보는 자리도 매우 신중하게 결정한다. 아무리 급해도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렇게 내 다리에 매달려 아련한 눈빛을 보내곤 한다


막상 길가로 나왔는데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나를 째려본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단다, 만두야. 그래도 볼일은 봤으니 그걸로 만족


다행히 오늘은 오프지만 어제는 이브닝 근무를 했었는데, 오랜만에 눈길 운전을 해서인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제설 트럭이 아직 지나가지 않은 길에선 차바퀴가 빠져서 헛돌기도 했고, 교차로에서 방향을 틀 때면 미꾸라지 꼬리처럼 차 뒤꽁무니가 마구잡이로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출근 전에 있었던 만두와 하나의 정기검진. 매해 3월이 되면 만두와 하나는 정기점진을 위해 동물 병원을 찾는데 한 달 전에 예약한 것이 바로 어제였던 것이다. 예약을 미루면 4월 말이나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눈길을 뚫고 동물 병원까지 갔었다.


동물 병원 앞에서


만두와 하나의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 3년마다 맞는 라임 백신 접종도 하고 일 년 치 사상충 약과 여름 내내 복용할 틱(Tick) 예방약까지 받았다. 진료비용은 총 1093.51달러... 한화로 약 150만 원.... 괜찮아... 너희만 건강하면 된단다... 엄마가 열심히 돈 벌게...

오늘 밤 7시까지 눈이 계속 쏟아질 거라는 예보와 이번 주 주말, 그러니까 4월 1일에 또 눈이 쏟아질 거라는 예보.


아... 진짜...

오랄 때는 안 오더니 이제 와서 이렇게 쏟아지는 이유가 뭐냐?


한국엔 목련이 피고, 벚꽃이 피고...

그렇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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