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가 있는 지인이 오랜만에 한국에 잠깐 들어온다며 얼굴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문득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여행했던 최고의 순간이 떠올랐다. 그날의 나는 어른이라는 부담감을 멀리 던져둔 채 마냥 웃고 있었는데. 그런 날이 언제 다시 올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건가 싶었다. 생각의 회로가 타임머신을 타고 꿈같던 찰나로 흘러간다.
작년 겨울, 한국은 한파와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었지만, 베트남 어느 작은 도시 무이네(Muine)는 반팔 반바지로 다니기에도 더웠다. 아침에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잠깐이나마 밖에 있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이네는 리조트가 여럿 있고, 물가가 저렴하며 자연경관이 좋기로 유명한데 특히, 사막 투어로 한국 예능에 나와 이름을 알렸다.
사막이라니. 모래를 밟을 때 내 발에 느껴지는 감촉이 어떨지 가히 상상도 어려웠다. 직접 느껴보고 싶었지만 같이 떠난 사람들이 좋아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아 망설였다. 딸아이를 포함하여 아홉 살 어린이 셋에 그들의 부모 다섯. (바쁜 건지 낯가리는 건지 안가겠다던 우리 신랑 빼고 갔다) 우리는 자식들의 친구인 W를 보러 베트남으로 떠났다. 호치민에 출장 간 W의 아빠 덕분에 친구들끼리 해외에서 만나는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일행들에게는 간 김에 다른데도 둘러보러 알아보니, 근처에 사막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일정에 넣었다.
그렇게 하여 사막에 도착하여 탁 트인 모래사장을 마주하니, 어릴 때 놀던 동네 모래 놀이터가 빈대만하게 느껴졌다. 마치 집 앞 놀이터에 쌓여있던 모래언덕은 어린아이 코 묻은 손으로 만든 두꺼비집이고, 사막의 모래언덕은 신이 만든 거대한 알프스산맥 같달까. 모래놀이터만 알다가 진짜 사막을 보니, 어른들이 종종 다 커서도 스케일이 작게 놀 때 어린애들 소꿉장난 같다는 게 왜 그런 말인지 와닿았다.
발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이 먼저 느껴졌다. 분명 단단한 알갱이로 이루어진 공간을 밟는데도 발이 푹푹 들어가면서 하얀 솜처럼 폭신하다. 새벽녘에 가서 그런지 공기마저 시원하다. 바람결에 실려 온 자잘한 모래들이 내 얼굴을 살짝 간지럽히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가는 느낌도 좋았다. 자연스레 손이 땅으로 뻗어 모래를 한 움큼 집어봤다. 스르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래처럼 손안의 모래도 쉬이 잡히지 않고 어느샌가 사라졌다. 안 잡히면 어떠하리, 언젠간 잡히겠거려니 생각하면서 신나게 또 잡고, 놓치고, 또 잡아보면서 보드라운 모래 감촉을 느꼈다. 이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며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하이라이트, 사막 썰매를 타러 갔다. 절벽같이 가파른 모래언덕이 썰매 타기에 제격이라는 후기를 들어서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 상황까지 후기에 반영하여 전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한적한 모래언덕에서 심호흡 한 번 가다듬고 몇몇 관광객들과 어울려 소리를 지르면서 탈 거란 상상은 바로 무참하게 깨졌다. 모래언덕 주변에만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있었다. 현지인들은 자기 썰매를 타라며 "5만 동, 5만 동" 금액을 외치면서 호객하고, 관광객들은 썰매를 타려고 어떻게 돈을 내야 할지, 얼마가 적정가격인지 헤맸다.
그 와중에 절벽의 가파른 각도를 보면서 나는 놀이동산에 롤러코스터가 떠올랐다. 롤러코스터가 달달달달 꼭대기로 올라가서 절정에서 속도가 점점 멈추고 그 정점. 절벽 위는 마치 나를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내가 탈 수 있을까. 딸내미가 타도 안 무서워할까.'
바로 옆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두 명 9만 동, 9만 동"하면서 빨리 자기를 택해달라고 하고, 나와 딸 J는 각이 70도는 되어 보이는 초대형 모래 미끄럼틀을 바라보며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탈 수 있을 것인지 저울질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도 입은 쉬지 않고 흥정은 흥정대로 하고 있었다. 10명이라는 콩고물로 극적인 흥정은 만족스럽게 끝냈다. 일행 몇몇을 먼저 내려보내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썰매 위에 앉았다. 거의 눕다시피 허리를 젖히고 자세를 잡아야 했다.
눈을 질끈 감고 출발! 내려간다!
'으악 잘못 탔다. 괜히 탔어! 근데 짜릿해! 와!'
바이킹에서 내려갈 때 의자에서 몸이 들리는 느낌이 나는 것처럼 썰매가 지면에서 2밀리미터 떨어진 기분이었다. 체감 시간 3초쯤 내려갔나. 대부분의 썰매가 멈추는 지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내 의지로 사막 모래에 내 몸을 맡기고 굴렀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데굴데굴 말이다. 사막은 푹신하고 따스하며 안락했다. 잠시 몸을 대자로 누워있었다.
'좋다.'
얼굴 위로 태양이 나를 비추며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등 뒤로는 사막이 나를 편하게 지탱해 주니 그처럼 몸과 마음이 편하고 걱정 없이 좋을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앞서 내려온 애들 몇몇은 "엄마! 한 번 더 탈래!" 하면서 사막을 오르고 있고, 그중 하나는 두세 바퀴 구르다가 얼굴에 사막 모래가 잔뜩 묻고 입안에도 들어갔다며 엉엉 울었다. 아이는 불편해서 울고, 엄마는 아이를 달래주는데 나에게는 순수한 아이와 순정한 부모 같아서 보고 있노라니 왜인지 마음이 포근했다. 예기치 않은 순간의 연속에서 울고 웃는 소리가 공존하는데도 나를 웃게 했다.
"자, 어느 정도 구경을 하셨으면 ATV(4륜 바이크)를 타고 근처 호숫가로 이동하겠습니다. 두 명씩 짝지어 주세요."
힘센 ATV는 타자마자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사막의 크고 작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부앙부앙 소리까지 경쾌해서 어떤 놀이기구보다 더 흥이 났다. 혹여 덜컹거리다 ATV에서 떨어질까 봐 손잡이를 꽉 잡고 있으면서도, 사막 중심부의 청정한 바람이 폐 깊숙한 곳까지 훅 들어오니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더불어 한국에서 지금 시간이라면 회의실 탁한 공기에 복잡한 이해관계의 유관부서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유리한 대로 하려는 사람들 틈에서 답답해했으리라. 사막 한가운데서, 사무실에서 내 모습을 상상하노라니 묘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온전하게 느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놀이터에서 모래에 장난하다가 미끄럼틀도 타고 친구랑 미친 듯이 뛰고 달리던 때로. 언제든 동심으로 살고 싶다. 사실 생각해 보면 '넌 어른으로서만 살아야 해'하며 누군가가 떠밀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의무와 체통이 있다며 재미없는 하루하루만 쳇바퀴 돌 듯 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샌가 묶인 타성의 끈을 끊을 수만 있다면,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하루 중 어느 순간만큼은 더 신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 신나는 날을 계획해 두고 기다리며 사는 것도 방법이겠다.
오늘 나는 냉동실에 넣어둔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을 시간만 기다리며 야근을 견뎠다. 역시 기대했던 바대로 달콤한 초콜릿과 마시멜로의 조합은 꿀맛이다. 글을 쓰며 시원한 초코파이를 먹고 있으니 왜인지 모르게 오늘이 다 즐거웠던 기분이다. 이 찰나 또한 한없이 어린이이고 싶은 나 자신이 누리는 기분 좋은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