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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RONY Mar 05. 2024

드라큘라도 혈액형 보고 피 빠나요?

뮤지컬 <드라큘라> 관람 후기

뮤지컬 <드라큘라>는 브램 스토커 저 동명의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영생의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이 400년 전 사별한 아내의 환생 '미나 머레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뮤지컬 <드라큘라> 오연은 본작의 10주년 공연으로, 샤롯데씨어터에서 2023년 12월 6일부터 2024년 3월 3일까지 공연했다. 본인은 2023년 12월 31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


※ 본 후기는 극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에 대한 가감 없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후기는 작가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며, 다른 관객들의 모든 주관적 감상을 존중합니다.

뮤지컬 <드라큘라>, 샤롯데씨어터

우리의 인연은 시간을 넘어 함께할 운명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러웠다. 작품의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서사도 너무나 빈약하다. ‘드라큘라와 맞서 싸우는 판타지 스릴러’인가 ‘400년을 기다린 드라큘라의 가슴 아픈 로맨스’인가. 뮤지컬은 전체적으로 후자를 내세우는데, 그렇다기엔 드라큘라와 미나의 사랑에 설득력이 지나치게 부족하고, 굳이 드라큘라가 소재여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후술할 거대하고 역동적인 무대 세트를 내세워 전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내세우는 게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추격과 전투의 역동적임과 사랑의 서정적임이 한 극(劇)에 어우러지지 못하는 극(極)과 극의 분위기였다.


전생이라는 소재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직접 체험할 수 없으니 공감받기 어려운 소재이기도 하다. 드라큘라는 미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을 말하며 다시 자신과 함께하자며 유혹하는데, 이 방법이라는 것이 진심 어린 호소도 치밀한 계획도 아닌 그저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억지를 부릴 뿐이다. 당연히 자신과 함께해 줄 것이라 믿으며. 400년의 세월을 살아온 존재가 이렇게나 부주의하고 어리석은 것도 납득가지 않지만, 미나가 이에 감응하여 점차 그에게 이끌린다는 점을 가장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설득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극이, 그리고 드라큘라가 더 영리했어야 했다. 전생의 인물이나 사물, 사건 등을 작중에 설치해서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모종의 매개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런 것은 일절 없고 미나는 당최 알 수 없는 이유로 점점 더 드라큘라에게 사랑을 느낀다. 본인도 이 감정을 잘 모르겠다는데, 지켜보는 관객도 잘 모르겠더라. 이러니 이별에 아파하고 울부짖는 두 사람의 결말은 끝까지 물음표였다.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절절하게 만들었는가. 작품 속 인물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작품 밖의 관객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제 함께 달빛의 축복 속에서 영원한 삶을


로맨스로서도 아쉽지만, 드라큘라 한 개인으로서의 캐릭터성도 심히 납작하다. ‘She’에서 드라큘라는 아무리 아파한들 죽은 그녀에게 갈 수 없으니 차라리 내 고통의 삶을 끝내 달라 절규한다. 그러나 이때 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칼을 찔렀으니, 흡혈귀가 되어 영생을 사는 건 그에게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은 신의 형벌이었다. 한데 드라큘라는 영원한 삶을 선물하겠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시종들을 거느리며, 미나에게도 자신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꼬드기고 있으니, 그에게 영생이란 대체 어떤 의미였나.


드라큘라의 뉘우침에도 구멍이 많다. 이미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미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흡혈귀로 만들어 미나 앞에서 죽음을 맞게 만드는 끔찍한 고통을 준 주제에, 반헬싱 부부를 보며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다니, 앞뒤가 너무 안 맞다. 여기에 덧붙여 런던행을 택한 드라큘라의 목적에 대해서도 정확한 설명이 미흡하여 흡혈귀로서의 정복욕인지 미나에 대한 소유욕인지 그 동기도 모호해졌다. 결국 드라큘라는 서글픈 운명의 연인으로도, 비극적 사태의 원흉이자 빌런으로도 애매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만 동서고금의 흡혈귀 대명사 ‘드라큘라’로서의 여러 특성은 극 전반에 걸쳐 매력적으로 살리고 있다. 웅장하게 움직이는 4중 회전무대는 공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드라큘라의 마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드라큘라>의 시그니처 연출이다. 또한 특유의 괴력과 각종 환술, 성물에 대한 거부 반응 등도 원작의 고증에 따라 우리에게 친숙한 드라큘라를 묘사한다. 물론 배우의 액션 역량에 상당수 의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특히 음악만큼은 앞선 모든 혹평을 뒤집을 만큼 매력적이다. 극의 긴장감을 제대로 끌어올려주는 ‘Fresh Blood’, ‘Life After Life’ 등의 록 기반 넘버와 ‘Loving You Keeps Me Alive’, ‘Please Don’t Make Me Love You’, ‘The Longer I Live’ 등 차분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요동치는 감정적 넘버가 모두 빠짐없이 중독적이다. 개인적 선호지만 중간중간 깔리는 여성 소프라노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살려줘서 취향저격이었다.

2023.12.31. <드라큘라> 밤공 캐스팅보드

'무대, 음악, 이야기'

본인 브런치스토리의 프로필이자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뮤지컬의 세 가지 조건이다. <드라큘라>는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음악을 가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 속의 이야기는 많이 부실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매 시즌 흥행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그만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성일 기준으로 서울 공연은 이제 막 폐막했지만, 부산과 대전에서의 지방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예매처를 방문해 보도록 하자.


이제야 2023년 관극 기록을 전부 업로드했는데, 2024년 후기는 너무 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와 연계하여 정보성 글들도 업로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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