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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RONY Mar 18. 2024

얼마나 큰 빵을 훔쳤던 거에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 관람 후기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하는 프랑스 뮤지컬이다. 가족을 위해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선고받은 19년간의 노역형을 끝내고 새사람으로 개과천선한 ‘장발장’의 생애를 중심으로 1832년 6월 민중봉기 사건 전후 프랑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레 미제라블> 한국 프로덕션 삼연은 2023년 10월부터 1달여의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2023년 11월 30일부터 2024년 3월 10일까지 서울에서 상연했다. 본인은 24년 1월 21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


※ 본 후기는 극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에 대한 가감 없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후기는 작가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며, 다른 관객들의 모든 주관적 감상을 존중합니다.


그 누군갈 사랑하면 신의 얼굴 보리


<레 미제라블>의 가장 큰 무기는 친숙함이다.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감옥에 갇혀야 했던 장발장의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수록될 만큼 유명하고, 2012년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도 대흥행하면서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대다수가 직간접적으로 <레 미제라블>의 음악에 닿은 적 있다. 본인의 경우 학창 시절 음악 선생님이 자주 틀어주신 기억이 난다. 송스루 형식에 초반부 전개도 다소 빠른 편이지만, 한 곡 한 곡이 너무나 명곡이어서 지루할 틈없이 몰입해서 감상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모든 인물의 염원을 그들의 대표곡 멜로디에 담아 버무려낸 ‘One Day More’는 가히 압도적인 합창이었다. 


<레미제라블>이 다루는 주요 사건은 1832년 6월에 일어난 프랑스 민중봉기다. 특히 무대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바리케이드는 혁명을 노래하는 <레미제라블>의 상징이다. 다만 직접 관람한 바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혁명 자체에 있는 듯하진 않았다. 하지만 거대한 총성과 함께 시민군들이 차례차례 바리케이드에서 쓰러져 추락하는 장면은 정말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명장면이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레미제라블>의 진짜 주제는 ‘사랑’이다. 판틴이 죽음보다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게 만든 이유이자 장발장이 평생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모두 코제트에 대한 사랑이었다. 코제트가 받은 사랑은 마리우스를 만나 꽃피우며 끝내 비극 속에서도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사활을 건 혁명의 역사 속에 사랑을 노래하는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경솔하고 미숙해 보이지만, 사실 그 모든 혁명은 곧 젊은 남녀의 사랑이 그저 축복받을 수 있는 평화의 시대를 원했음이었다. 그래서 코제트라는 인물이 곧 주제의 상징이며, 메인 포스터의 주인공인 이유도 그러하다는 것이 본인의 해석이었다. 덧붙이자면 주교가 장발장에게 베푼 사랑, 끝까지 마리우스만을 바라본 에포닌의 사랑 등 작중에는 심금을 울리는 여러 얼굴의 사랑이 많이 등장했다.


어딘가 저 너머 장벽 지나 오래 누릴 세상


원작 『레 미제라블』은 장발장 한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보다, 혼란하고 가난했던 19세기 프랑스의 실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제목인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역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각기 다른 이유로 불쌍해야만 했던 한 시대의 모든 인물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립은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다. 이들의 관계는 ‘인간의 선악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가’, ‘이로운 뜻을 위해 행한 죄도 죄인가’, ‘죄인의 선행은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등 현대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장발장은 자신의 도둑질을 눈감아준 주교에 감화되어 전과자의 신분을 버리고 개과천선하여 평생 선행을 베풀어온 인물이지만, 자베르는 한 번 죄를 지은 자는 영원히 악인이며 갱생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인물이다. 결국 장발장의 손에 의해 목숨을 구한 자베르는 장발장의 도주를 눈감아주는 선택을 하는데, 범죄자에게 도움을 받는 것과 도움을 베푸는 것 모두 자베르가 평생을 믿고 따라온 신의 뜻이 아니므로 모든 신념이 무너진 자베르는 끝내 투신하여 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자살은 가장 큰 죄악이기에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그의 선택은 결국 지옥행이었다. 이 선택이 장발장이 자신에게 베푼 다름 아닌 용서 때문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때문에 본인은 이런 자베르가 장발장만큼이나 입체적이고 완성도 높은 인물이라고 느꼈고 무척 매력적이었다. 다만 자베르의 자살 장면은 참신했지만 극적이지 못한 연출이라 아쉬웠다.


장발장 역을 맡은 민우혁 배우는 <레미제라블> 서울 공연 종연 후 SNS를 통해 '<레미제라블>의 본질적 메시지는 사랑에 있다, 8년 전 앙졸라로 무대를 설 때는 혁명과 희생의 뜨거움을 느꼈다면 이제는 식지 않는 따뜻함을 느낀다'는 소감을 밝혔다. 극에 대한 감상이 나와 같은 것인지, 혹은 그 마음이 민우혁 배우의 열연을 통해 내게 정확히 전달되었는지, 어느 쪽이든 나와 정확히 같은 감상을 느꼈다는 것이 신기하다. 깊은 여운을 남긴 불쌍한 사람들의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의심할 여지 없는 수작이었다.

2024.01.16. <레 미제라블> 밤공 캐스팅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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