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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RONY Mar 22. 2024

어찌 저 나그네에게 꽃바람 한 자락 허락하지 않으셨나

뮤지컬 <겨울나그네> 관람 후기

뮤지컬 <겨울나그네>는 故 최인호 작가의 동명 소설『겨울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이다. 우연히 '정다혜'와 사랑에 빠지는 순수한 의대생 '한민우'가 아버지의 죽음과 출생의 비밀과 관련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점차 어둠에 물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겨울나그네> 삼연은 재연으로부터 18년 만인 2023년 12월 15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상연했다. 본인은 24년 2월 2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


※ 본 후기는 극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에 대한 가감 없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후기는 작가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며, 다른 관객들의 모든 주관적 감상을 존중합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모든 것은 제자리로


이전 후기였던 <레미제라블>과 비슷하게, 주인공 민우의 이야기를 빌렸을 뿐 한 시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한 시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불리는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 어쭙잖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도기. 저 하나씩의 결핍을 가진 청년들이 서로 사랑하고 상처 입히며 모자라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본인은 민우 단독 주인공이 아니라 현태, 다혜, 제니를 포함해 주연 네 사람이 모두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여담으로 제목부터가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넘버들이 어딘가 쓸쓸하고 건조한 것이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줬다.


국내 소설을 원작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이 활성화되는 것에 본인은 매우 긍정적이다. 큰 사건 위주보다는 인물의 내적 성장을 심도 있게 다루는 인물극으로서의 매력도 확실했다. 그러나 줄거리 진행이 짜임새 있지 않고 다소 빈약하다. 긴 원작의 분량을 한 편의 극으로 각색할 때 흔히 나오는 서사 구멍인데, 특히 관객의 이해와 몰입을 도울 여러 상황 설명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다. 인물들이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것이 본작의 큰 장점이라 이런 밀도 낮은 전개는 결국 인물의 완성도에 흠을 내고 제 빛을 가릴 뿐이었다. 반대로 그만큼 주요 장면의 텐션이 훌륭하기도 했기에 이런 단점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조금 덧붙여서, 궁극적으로 한민우에 대한 연민을 성공적으로 끌어오지 못한 것이 패착이겠다. 민우는 작중 여러 번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제 딴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런 민우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다면 민우는 한없이 안타까운 인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민우는 어리고 못난 인물에 불과하다. 현태나 제니, 다혜마저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야만 했던’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체 왜 그랬는지’ 납득하기 힘든 전개의 연속이다. 그래서인지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듯하다. 사실 본인은 꽤 재미있게 보고 와서, 어쩐지 자꾸 등장인물들을 변호해주고 싶어졌다. 쟤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


결국 민우에게 가장 큰 결핍은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마약에 취해 다혜의 환각을 보는 민우의 반응은 마치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반면 ‘정착할 수 있는 곳’에 대한 갈망이 컸던 제니는 이 틈을 파고들어 민우와의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렸지만. 자신을 끝내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자신은 자신의 자식과 가정을 지키리라 마음먹었지만 야속하게도 운명은 민우에게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현태는 다혜에게 ‘겨울이 가면 봄이 올 것’이라는 말로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행복한 날이 올 거라 위로하곤 했는데, 그렇다면 민우는 끝내 봄을 보지 못하고 겨울만을 떠돌다 생을 마감한 것이리라.


그런 민우가 바로 '겨울나그네'가 아닐까.


2024.02.02. <겨울나그네> 밤공 캐스팅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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