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관람 후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를 원작으로 하는 프랑스 뮤지컬이다.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연모하는 '콰지모도', 그녀를 탐하는 '프롤로', 그녀에게 이끌리는'페뷔스' 등의 이야기를 음유시인 '그랭구아르'를 통해 전하고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 라이선스 육연은 2024년 1월 24일부터 3월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본인은 24년 2월 17일 낮 공연을 관람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꽤나 난해하다. 때문에 그 이름값에 비해 지루하다는 평가도 많은 작품이고 실제로 본인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는 한편 어딘가 늘어지고 싱거운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애매한 호불호의 경계를 정의할 만한 표현을 찾고 있지 못하던 도중, 크리에이터 ‘황조교’님의 <노트르담 드 파리> 후기글에서 그 정확한 답을 찾았다. 따라서 본문 아래는 상당 부분 그 표현을 빌려서 작성한 바 있다.(감사하게도 인용을 허락해 주셨다.)
작품 속 모든 장면은 직관적이며, 상징과 여백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한 편의 완성된 드라마를 보고 온 느낌보다 한 편의 시를 읽거나 명화로 가득 찬 갤러리를 거닐다 온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걸려있는 그림은 답을 내려주거나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화풍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짐작하며 감상하는 관객이 있을 뿐입니다.
친절한 서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그저 놓여있는 장면'들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객들을 15세기 파리로 초대하는 인물인 그랭구와르의 직업이 '음유시인'인 것도 이러한 작품의 컨셉을 담고 있는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황조교 인스타그램 발췌
(https://www.instagram.com/reel/C48CJ9krgCw/?igsh=djVoMGh5ZWw2ZWI4)
일반적인 관객들과 다르게 이 작품은 ‘극’적이지 않고, ‘시’적이다. 극이 어떠한 뜻에 따라 흐르지 않고, 흐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요컨대 드라마보다는 그 속 인물들의 정서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이 때문에 전개가 대단히 느리고 불친절하다. 지루함을 느낀다면 아마 상당수가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이 궁금한 관객에게는 특유의 반복적인 음악과 군무가 오히려 몰입의 권태로 찾아올 뿐이니. 특히 본인은 같은 가사의 지나친 반복이 이런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고도 생각했다.
따라서 이 극을 바람직하게 감상하는 방법이란 결말을 향해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오른 채 흘러가는 대로 노래와 춤을 향유하는 것이겠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화려한 무대효과 없이 대부분 무용수들의 아크로바틱으로 무대를 채우기에, 여기에 담긴 메타포를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그랭구와르라는 화자가 전하는 긴 시와도 같다. 시인은 제 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읊을 뿐.
<노트르담 드 파리>의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서사보다 인물이 주가 되는 작품인 만큼 인간군상도 다양하고 인물마다 캐릭터를 구축할 시간도 충분하다. 또한 직관적인 하나의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평등과 차별, 사랑과 욕망, 유희와 고통 등 인물들의 정서를 보다 복합적으로 아우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프롤로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평생의 금욕을 맹세했을 주교가 처음 느껴보는 욕망에 사로잡혀 갈등하고 타락하는 과정이 너무나 생생히 그려져서 일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악인으로서의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에는 음악의 공도 크다. 독특하지만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꽤 난도 높은 가창력을 요구하는 넘버들이 가득하다. 이 덕에 듣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또한 안무 연출뿐 아니라 가사에도 상당히 많은 은유가 들어차 있다. 때문에 당대 파리와 노트르담 대성당 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더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