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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RONY Apr 13. 2024

우리가 꿈꾼 정의가 정녕 이것인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관람 후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일본 토호 뮤지컬이다. 실존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상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중심으로 프랑스혁명 배경의 실화를 각색한 드라마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10주년 기념 공연은 2024년 2월 27일부터 5월 26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상연 중이다. 본인은 24년 3월 10일 낮 공연을 관람했다.


※ 본 후기는 극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에 대한 가감 없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후기는 작가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며, 다른 관객들의 모든 주관적 감상을 존중합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더는 참지 않아 이제 보여줘야 해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인공은 마리지만, 사실 마리와 마그리드 두 사람 다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로고의 MA가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와 마그리드 아르노(Margrid Arnaud)를 모두 아우르는 이니셜이기도 하고. 뮤지컬 오리지널 캐릭터인 마그리드의 존재가 이 작품의 차별화이고 주제의식이기 때문에, 마그리드에 대한 해석이 곧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다. 마리가 프랑스의 왕비이자 최고 계급의 귀족을 상징한다면 마그리드는 사회 최하 계층의 천민들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투쟁하고 쟁취하는 능동적인 인물. 아마도 이것이 기본적인 마그리드의 캐릭터 설계였을 것이다. 다만 마냥 그런 인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첫째로, 왜 그렇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싫어하나?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했던 당대 프랑스의 하층민이 넓은 궁전에서 허례허식하는 왕정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작중의 마그리드는 노골적이고 집착적이리만치 “마리”를 증오한다. 물론 당시 프랑스 민중들은 여러 이유로 마리를 싫어했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장서서 마리에 대한 온갖 악성 소문들을 퍼뜨리고 다니는 마그리드를 보고 있자면 그녀가 주도한 프랑스혁명이 부패한 지배계층의 교체와 불공평한 사회체제의 변혁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 개인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일어난 것만 같다. 게다가 혁명을 주도했다기엔 그녀 역시 오를레앙 공작에 의해 수동적으로 조종당했다는 느낌이 강해 캐릭터에는 여전히 의문 부호다.


둘째는 그다지 의미 없는 출생의 비밀이다. ‘두 사람은 닮았다’는 페르젠의 평가 등 복선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설정으로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가 모호하다. 왕비와 천민이라는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 두 사람이지만 알고 보니 배다른 자매였다는 것으로 귀천 무용론이라도 펼치고 싶었던 것일까. 이해가 안 가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 방법치고는 너무 부실하다. 게다가 이 사실이 극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반전으로 작용하지도 않는 데다 이미 여러 국내 매체에서 오랫동안 소비됐던 막장극의 대표적 클리셰라는 점도 이 설정의 느닷없음에 불을 붙이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런 설정은 마그리드의 뉘우침이 한 개인의 억울한 추락을 본 뒤 느낀 연민과 뒤늦은 객관화가 아니라 그냥 모르고 이복 언니를 해한 동생의 일차원적인 후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극의 본질을 흩트릴 뿐이라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마그리드 아르노는 민중 봉기의 주체자라기엔 동기와 개성이 부족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해자로서는 설정 자체적으로 허점을 남겨버린 아쉬운 인물이다. 극의 정수이자 메시지가 사실상 이 인물의 행적에 녹아드는 본작 특성상 마그리드의 아쉬움이 곧 작품의 아쉬움이 되어버렸다.


네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냐 진실을 똑바로 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왜 이렇게 아쉬운 이야기를 앞에서 길게 늘어놓았냐면, 그럼에도 이 작품이 대단히 재미있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리 매력적이었냐 함은, 어떤 대의를 땔감으로 불붙었 그 정도가 지나쳐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들의 분노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타오를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극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도 비슷한 감상을 남겼지만, 여러 의미에서 성인(聖人)인 예수와 달리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저 인간이다. 일체의 거룩함과 숭고함 없이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훨씬 직관적이었다. 누군가는 불쾌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본인은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성 잃은 집단 광기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왕비, 여성, 그리고 어머니. 불쾌한 게 당연하다.


군중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면 개인으로는 감히 저지르지 못할 일들을 가벼운 명분에도 그토록 쉽게 자행한다. 18세기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너무도 익숙한 현실이다. 재밌게 보는 내내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늦게나마 자신들이 옳지 못했음을 깨달은 마그리드의 결백한 증언으로 인해 오를레앙과 자크는 정당한 심판을 받지만 정작 그들과 함께 민중을 선동한 마그리드 본인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다. 권선징악의 의미에서는 모순이고, 그들이 꿈꾸는 ‘정의’가 애초에 이분법적인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니 이쪽으로도 가다 말았다. 결말부까지 무언가 텁텁한 느낌을 지울 순 없었지만, 주제를 확고히 가져오며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단초를 준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던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심판이, 단죄가, 정말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의를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지도자들도, 민중들도, 우리가 꿈꾸는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2024.03.10. <마리 앙투아네트> 낮공 캐스팅보드

EMK의 뮤지컬들은 화려한 무대와 자극적인 전개로 대중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작품의 깊이가 얕은 점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꽤 밀도 있고 농도 짙은 드라마라 기대 이상의 감상으로 남았다. 인물 프로필이나 극장 등 전체적인 작품 홍보를 단순히 화려한 유럽 귀족풍 뮤지컬로만 강조하는 것 같아 아쉬울 정도이다. 실제로는 그 아름다운 무대와 의상보다 그 속의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인데 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아이다>나 <엘리자벳>처럼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재 버전의 프로덕션은 막을 내리고 대대적인 리뉴얼에 들어간다고 한다. 본인 생각에 이 작품은 주제가 분명하고 살릴 부분과 적절히 잘라낼 부분이 명확해서, 이번 10주년 공연으로 유종의 미를 거둔 뒤 보다 수준 높은 작품으로의 재탄생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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