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RONY Dec 23. 2023

돌덩이들아 적셔 하카두!

뮤지컬 <멤피스> 관람 후기

뮤지컬 <멤피스>는 멤피스의 DJ였던 듀이 필립스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제작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1950년대 미국 멤피스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가창력의 흑인 가수 '펠리샤'와 그녀를 만나 흑인 음악에 매료되어 그 음악을 라디오로 전파하고자 하는 '휴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뮤지컬 <멤피스> 한국 초연은 충무아트센터에서 2023년 7월 20일부터 10월 22일까지 공연했다. 본인은 7월 25일 밤, 9월 22일 낮, 10월 21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


※ 본 후기는 극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에 대한 가감 없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후기는 작가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며, 다른 관객들의 모든 주관적 감상을 존중합니다.

뮤지컬 <멤피스>, 충무아트센터

온 세상에 들려줄게 내 영혼의 노래


사실 <멤피스>는 한국 초연이 올라오기 전 기대만큼이나 걱정을 많이 받은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작품의 메인테마가 '인종차별'이기 때문이다. 본작의 주인공인 휴이와 펠리샤는 각각 백인과 흑인이고, 두 사람이 당시에는 엄격히 금지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작품의 발단이다. 그러나 단일인종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배역을 동양인 배우가 소화해야 하므로, '흑인과 백인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공감시킬 것인가'가 작지 않은 화젯거리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머리색과 메이크업 톤의 차이로 구별에 어려움은 없는 정도였기에, 나름대로 최선이었겠거니 했다.


<멤피스>의 음악은 작품 분위기에 맞게 전체적으로 리드미컬한 R&B와 로큰롤 등의 흑인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나 펠리샤의 넘버들은 극악무도한 고음을 자랑하는데, 펠리샤 역 배우들 정말 경이로운 가창력으로 이를 소화해 내더라. 거기에 라디오 → TV쇼로 이어지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극을 이끌기 때문에 극 분위기 자체가 캐주얼하고 역동적이라 보는 재미도 한가득이었다. 


너의 곁에서 널 붙잡은 채 견뎌낼게


<멤피스>는 쇼뿐 아니라 상당히 밀도 있는 드라마로 구성되어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등장인물들이 현실감 있고 입체적이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상적으로 충돌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너무나도 '그럴듯하다.' 휴이는 주체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인물로,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1막, 휴이의 DJ로서의 성공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고, 휴이는 지금껏 자신이 해왔던 대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펠리샤는 달랐다. 펠리샤는 그럴 수 없는 인물이다. 펠리샤는 흑인이고, 시대는 그녀를 수동적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펠리샤에겐 가수로서의 데뷔도 휴이와의 연애도 매 순간 살얼음길이었다. 휴이와 같은 길을 걷지만 그녀의 현실은 배로 거칠었다. 때문에 자신의 방식대로 시대를 바꿀 수 있으니 펠리샤가 믿어주길 바랐던 휴이자신은 휴이와 달리 꿈도 사랑도 시대에게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알았던 펠리샤의 갈등은 예견된 운명이었다. 휴이는 끝까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했으나, 결국 시대의 기득권층이었던 자신의 오만임을 알게 되었고, 펠리샤의 꿈을 위해 자신이 펠리샤로부터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한없이 달콤했던 성공, 그러나 더없이 쓰라린 몰락, 그 덧없음 속에 살고 있었던 휴이와 성공한 뒤 4년 만에 그를 찾아온 펠리샤는 마지막으로 멤피스에서 함께 무대를 꾸미게 된다. 여기서 펠리샤는 자신을 잃어버린 휴이에게 그의 영혼의 음악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휴이는 조촐하지만 여전히 음악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 휴이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펠리샤 본인이 아니었을까. 어색하게 무대를 함께하며 펠리샤를 바라보는 휴이의 눈빛에 화려한 무대와 신나는 음악에도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2023.07.25. <멤피스> 밤공 캐스팅보드

누구 하나 오롯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없이 각자의 캐릭터성이 뚜렷한 서사와 내적 흥이 폭발하는 넘버들이 너무나도 내 취향저격이라 3번이나 관람할 정도로 재밌게 봤다. 한국뮤지컬어워즈 앙상블상 후보로 멤피스 앙상블들이 노미네이트 됐던데, 개인적으로는 멤피스 앙상블들 가뜩이나 넘버도 어려운데 극 내내 이리저리 텀블링에 줄넘기에 좋은 무대 만든다고 한여름에 고생한 게 너무 잘 보여서 상 받았으면 좋겠다. 


휴이 역의 고은성 배우가 마지막 공연에서 휴이라는 인물을 그리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지인에게 '휴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팔아 스타가 되었지만 끝까지 멤피스는 팔지 못했다. 너의 멤피스는 어떤 것이냐'라는 말을 듣고 비로소 캐릭터를 완성했다는 후일담을 밝혔다고 한다. 자신에게 멤피스는 뮤지컬이었다고. 굉장히 인상깊은 소감이다. <멤피스>를 관람한 모든 관객과 우연으로라도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걸 팔아도 끝내 팔지 못할, 당신의 멤피스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당신의 이상도 언젠가는 묵은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현실이 되길 바란다. 하카두!


작가의 이전글 빰~빰빰빰빰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