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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총총 Oct 19. 2023

[이런, 이란!] 쿰에 가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쿰(Qom)에 왔다.

쿰은 사실 이스파한과 시라즈 같이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도시는 아니다.

호스텔 근처에 있는 아잠 모스크(Azam Mosque). 쿰(Qom)은 여기를 기준점으로 잡음 되는 듯하다.


내가 쿰에 오고 싶어 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박물관 큐레이터 시절, 전시 기획 때문에 한국에 있는 페르시아 카펫 전문가를 찾아다녔었다. 찾아낸 분은 학자도 아니고, 카펫 무역상도 아니고, 참 뜻밖에도 페르시아 카펫이 좋아서 그냥 수집을 하셨다는 어느 젊은 남자분이었다.


유물(?)을 대여하고자 내 이야기를 하고 약속을 잡았더니, 카펫집에서 보자고 한다. 추천해 줄 카펫이 너무 많으니 직접 보고 골라가라고 한다. 약속을 잡고 그분의 집에 갔는데, 참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서울 모처의 좋은 아파트였지만, 살림살이의 흔적은 거의 없고, 카펫들만 둘둘 말려 집안을 가득 메우며 세워져 있었다. 3시간 여 동안 이 카펫 저 카펫을 펼치고 접으며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카펫 자체에 홀린 이른바 카덕이었는데, 전 세계 카펫을 수집하려 돌아다니다 보니 이란 카펫이 제일 좋았고, 그중에서도 쿰 카펫이 최고더라는 말이었다. 카펫은 수천만 원부터 몇만 원까지 그야말로 다양했다.

나는 그분의 이 한마디 때문에 홀린 듯이 쿰에 미친 듯이 가고 싶어졌다.


쿰(Qom)에 무사히 오긴 왔는데... 위기가 많다... ㅠㅠ

일단 하마단에서 쿰으로 가는 버스티켓 자리가 없다.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한데 설마 이 루트를 타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줄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만석이다. 하마단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누신(Nooshin)이 인터넷으로 쿰으로 가는 버스티켓을 밤새도록 열심히 수배했으나... 실패하고, 다음 날 버스터미널로 같이 가서 뻗치고 있어 보다는 말에, 다음날 누신의 아들을 안고 함께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단, 나는 이란어를 못하니 그냥 벤치에서만 앉아있고 신이 열심히 애를 업고 뛰어다닌다... 얼마 후에 기적적으로 누신 씨는 버스표를 구했다고 한다.


나를 터미널까지 데리고 와서 엄청난 신경을 써준 누신씨. 고맙다고 하니까 '우리는 친구'니까 괜찮다고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길고 깊은 작별을,


그다음으로는 숙소 찾기가 너무 힘들다. 쿰엔 호스텔도 많지 않은 데다가, 그나마 있는 호스텔이 전부 만실이라 전전긍긍하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 끝에 도미토리가 아닌 민박집을 구했다. 쿰이 관광도시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누신 씨가 쿰 가는 버스회사에 나를 젤 먼저 배정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말을 남기고, 눈물의 애틋하고 긴 작별인사를 한 후 터미널을 떠났다. 나는 그냥 앉아 하염없이 기다린다. 한 시간여 후,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사내가 와서 와서는 이란어로 '티켓 어쩌고, 너 쿰 어쩌고'라는 듯한 메시지를 손짓발짓으로 뭐라고 뭐라고 하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하마단 터미널.  티켓 때문에 꼼짝없이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렸지만... 좋은 기억뿐.


유추해 보니 누신씨의 당부대로 한 자리는 구한 것 같은데 그다음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외치고 착실히 기다린다. 그런데도 버스 출발 시간 5분 전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버스를 타라'는 둥, '어디로 가라'는 둥 아무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불안하다. 나는 다시 하마단의 누신씨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까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이 놈들이 혼자 여행하는 동양 여자인 나를 골려먹는 건지,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불안백배지만 방법이 없어 그냥 앉아 있는다. 나름 낭여행 고렙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이런 상황에서는 소통이 안되고, 현지의 순간적 문화를 알 수 없으니 고렙이고 뭐고 완전 쪼렙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1안이 틀어졌을 때의 2안과 3안의 마련뿐이다.

멘붕 상태로 착하게 앉아있는데, 출발 5분 전에 버스 매니저가 나를 극적으로 버스로 데리고 가서 좌석에 앉히고 현금결제를 하라고 한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쿰에 갈 수 있구나....!


이란 버스는 길이 안 좋아 그런지 휴게소도 안 들렀는데 300km 정도가 5시간이나 걸린다. 교통체증도 심하다. 한국 같아서는 3시간 반이면 독파할 거리지만, 표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지체한 시간을 포함하여 아침 일찍 움직였는데도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쿰에 도착한다.


쿰(Qom)가는 길. 또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쿰에 가까워오자 차가 엄청나게 막히기 시작했는데, 저분이 불주전자 같은 거로 차에다 휘휘 휘두르는 의식을 진행한다 , 액땜? 그렇다면 아직도 조로아스터 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거다


문제는 또 발생한다. 버스가 터미널이 아닌 고속도로 어귀에 승객들을 그냥 버리고 간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외국에서는 터미널의 개념의 없는 데가 허다하다. 중국에서도 그랬고, 요르단이나 아제르바이잔에서도 그랬다. 그냥 도시 어귀 어딘가에 내려놓고 간다.

우리나라처럼 '터미널'이라는 건물 자체가 없는 데가 많은 데다가, 소위 터미널에 들르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오래된 문화인 것 같다. 한국이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3차 멘붕을 겪는다. 다행히 쿰의 호스텔 주인하고 여러 차례 통화 끝에 내가 서있는 데까지 저렴 택시를 보내줘서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한다!! 쿰의 호스텔 주인은 내가 오는지 참 살뜰히도 살폈다.


이란에서 나를 살린 건 8할의 유심칩임이 틀림없다. ㅋ


쿰 호스텔 체크인 후 밥 먹으러 나와 시킨 치킨라이스. 밥에 덮여 치킨이 없는 줄 알고 화낼 뻔했다. ㅋㅋㅋ


근처 커피집에 아메리카노가 있길래 시켜봤더니 이렇게 나온다. 아메리카노라기 보단 에스프레소 수준.  그래도 커피머신으로 내려 맛은 썩 괜찮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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