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오랜 정적을 깨는 왕의 귀환이다. 지난달 3년 만에 발매한 선공개 싱글 <Love wins all>이 발매와 동시에 음원차트를 석권한데 이어 앨범 발매를 나흘 앞두고 먼저 공개된 타이틀 <홀씨>의 뮤직비디오 역시 공개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뿐만 아니라 수록곡 <Shh..>에 뉴진스 멤버 혜인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위용을 보이고 있다.
먼저 등장부터 예사롭지가 않던 선공개곡 <Love wins all>이 3분 미만의 빠르고 단순한 송폼이 정석이 된 시대를 역행하여 4분 30초를 넘기는 대곡을 내놓았음에도 되레 모든 음원사이트를 단번에 정복하였다. 10여 년간 정상에서 군림한 '아이유'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케이팝의 트렌드 너머 더 높은 곳에 있음을 다시 입증해낸 것이다.
다만 <Love wins all>의 성공을 두고 단순히 브랜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곡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은 코러스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송폼이 다른 케이팝 아티스트와 결을 달리하는 독창적인 것도 그렇거니와 지난 2021년에 발매한 소품집 <조각집>의 트랙 <러브레터>의 가사 '더 사랑히 내게 입 맞춰 lover'와 같은 아이유식 표현법도 다시 빛을 발하였다. 이를테면 아티스트가 오롯이 쌓아 올려 만든 브랜드라는 탑에 단단한 벽돌을 새로 두른 것이다.
하지만 선공개곡의 성공 이후 야심 차게 내놓은 두 타이틀은 선공개곡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와 분명하게 다르다. 앨범 발매일보다 나흘 먼저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홀씨>는 9년 전 공개한 <스물셋>부터 <팔레트>, <에잇>까지 이어오는 자전적인 노래의 연장선이지만 앞서 공개했던 곡들과 달리 아이유만의 화법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였다. 이를테면 크레딧에서 자신감 넘치는 래퍼의 여유로움이라 표현했던 아이유식 랩이 오히려 곡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히트했던 전작 <Blueming>과 마찬가지로 일렉트로 팝 락의 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Shopper> 역시 상황은 <홀씨>보다는 낫지만 아이유에게 거는 기대치에 비하면 다소 아쉽다. 이전부터 능숙하게 활용하던 밴드 사운드의 경쾌함은 이번에도 이어졌지만, 곡이 담고 있는 감성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 제대로 즐기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에 앨범 후반부에 위치한 수록곡들은 전반적으로 아쉬웠던 두 타이틀곡과 다르게 왜 사람들이 아이유라는 아티스트의 귀환을 기다렸는지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먼저 팝 성향이 강했던 두 타이틀과 상반되는 블루스 기반의 <Shh..>는 아이유의 보컬과 더불어 좋은 기획도 빛을 발한다.
소울풀한 아이유의 보컬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감춰진 혜인의 음색을 재발견하고, 락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조원선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절정에 다다르다가 이윽고 패티김의 내레이션으로 긴장감이 해소되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보컬의 시너지를 최대한 끌어내는 프로듀서 아이유의 재치가 느껴진다.
첫 번째 트랙 <Shopper>와 장르적으로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는 마지막 트랙 <관객이 될게> 역시 만족스럽다. 사운드에 비해 보컬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크게 와닿지 않았던 <Shopper>와 다르게 <관객이 될게>에서는 아이유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리도록 맑을' 같은 아이유식 표현법도 더해지며 흥을 극대화한다.
결과적으로 3년 동안 누적된 기대치에 비하면 아쉬운 앨범이다. 대중성을 노려 장르를 선택하였지만 정작 아이유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가사 전달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다.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던 요소들을 타이틀이 아니라 되레 재생시간이 길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앨범 후반부의 수록곡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절반의 승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의 결과물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만큼 아이유 자신이 걸어온 길이 아름다웠기에 지금의 모습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고, 또 아이유라는 아티스트는 꽃대가 꺾여 부러지더라도 홀씨가 되어 다시 날아오를수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