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반장 면담
차렷과 경례를 외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반장과 야자 1교시에 면담을 했다. 아이는 경찰대를 준비 중이었다. 녀석은 무협 소설에 나오는 장수들처럼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나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무조건 장군이 됐을 상이다. 덩치가 얼마나 크던지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하면 녀석의 허벅지 둘레가 내 허리둘레보다 컸다.
힘은 또 얼마나 센지, 80kg이 넘는 사내놈 두 명을 등에 업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내가 “다치니까 그만해!”라고 계단 위로 쫓아갔지만, 두 명을 업은 채로 나를 따돌릴 정도로 속도도 빨랐다. 경찰대를 위해 운동을 많이 했냐고 물어보니, 원래부터 그냥 힘이 세다고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이런 한 덩치 하는 아이들이 엄청 순수하다는 것이다.
반장은 -‘나오려던 재채기도 귀찮다고 하지 않는’- 일본의 달걀 캐릭터, 구데타마를 좋아했다. 녀석은 ‘졸린 눈을 한 깨진 달걀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이는 큰 덩치에 맞지 않는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가지고 있었다. 큰 덩치에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매력 때문인지 아이들은 반장을 잘 따르고 좋아했다. 나는 반장을 처음 본 순간 이 아이라면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 중 하나다.
나는 반장을 전적으로 믿어보기로 하고 둘러가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반장, 애들이 선생님을 싫어하는 것 같은데, 뭔가 이유가 있을까?”
반장은 그가 좋아하는 캐릭터처럼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봄바람 같은 목소리로 소나기 같은 말을 쏟아냈다.
“선생님도 금방 그만두실 거잖아요.”
나는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응? 아니야, 선생님 그만 안 둘 거야. 왜 그런 말을 하는데? 누가 선생님 그만둔대?”
“전에 계신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나는 아이들이 내가 오기 전 담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아직 우울감에 젖어 있다고 생각했다.
반장은 조금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그 선생님도 선생님처럼 말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그만둔다고.”
아이의 목소리에서 우울감이 묻어났다. 첫날 교실에 감돌던 우중충한 기운이 먹구름 같은 이별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의 선생님이 최 선생님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은 그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이다. 진상을 알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역시 대화를 하니 풀리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뜻밖의 말을 한다.
아이의 말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대답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경험상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포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어차피 일방통행 길에 들어선 거 나는 곧바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좋은 사람은 버틸 수 없는 곳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반장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좋은 사람은 버틸 수 없는 곳이라니? 나는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여기는 일개 기숙학원일 뿐이다. 공부만 하면 되는 곳. 규율에 맞지 않으면 반성문을 쓰면 되는 곳. 간단한 법칙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선과 악 그리고 선한 사람은 버틸 수 없는 곳이라고 아이는 말한다. 그럼 나쁜 사람은 버틸 수 있는 곳인가? 나쁜 인간이 버티는 곳은 어디인가? 공교롭게도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선택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란 말인가? 좋은 사람은 좋은 선택을 한다. 아니, 좋은 선택을 하니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아이의 말을 들을수록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첫사랑과 대화 할 때처럼 더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머릿 속이 멍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런 내 눈치를 살폈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아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이제 공부해야 하는데, 그만 가봐도 될까요?”
“어? 어! 그래. 가봐. 공부해야지. 공부.”
아이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빈 교실에서 떠날 수 없었다. 아이가 한 말에 대해서 더 묻고 싶었지만, 나부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는 물을 수 없었다.
다음날 석회 시간에도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전달 사항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반항기 있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반인원 전원이 이렇게까지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진 않는다.
‘분명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의 불길한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분명 어둠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내가 오기 전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나의 직감이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서 도망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