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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May 24.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14

14. 첫인상부터 삐걱삐걱






우리 반은 총 12명.

교실 분위기는 열대야 밤처럼 우중충했다.



“차렷, 경례.”     


“아녀아세어”  

   

 교실에 대충 휘갈겨 쓴 것 같은 인사 소리가 중저음으로 낮게 깔렸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따분한 박물관에 억지로 끌려온 꼬마 아이의 표정.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나를 선사시대 돌도끼 보듯 바라보고 있다. 아니, 적어도 돌도끼라면 최소한 3초라도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돌도끼보다 못한 인간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짜 돌도끼라도 들고 등장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에 앉은 녀석들은 지루하다는 듯이 창밖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산 중턱에 푹 패인 잔디 하나 없는 모래 운동장뿐.     


 이유는 모르겠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 아. 안녕!”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아이들의 무관심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척했다.          



 새로 부임할 선생님에 대한 환상은 누구나 있다. 나의 학생 때를 떠올려보면, 교생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면 교무실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었었다. 새로운 선생님이 누구인지 얼굴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이들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 시절 학교에 새로이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살아있는 공룡보다 인기가 많았다.    

 

 나는 욕심이 없는 편이다. 공룡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삼엽충 화석 정도의 관심은 끌 줄 알았다. 나는 그저 선사시대 사람이 발로 한 번 찼던 돌이다. 나의 설레는 첫인사는 1초 만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래, 여기는 남자 기숙학원이다.      


 지난밤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생각해 두었다. 그래도 좀 서글프다. 이렇게 힘없이 ‘시작...’이라고 쩜쩜쩜같은 사족을 붙일 줄은 몰랐다. 오디션 때 불렀던 <지금 이 순간>은 괜히 준비한 것 같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먼저, 선생님이 여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한다.”

교실은 전쟁을 코앞에 둔 상황처럼 전운이 감돌았다. 지난밤 생각한 웃음 포인트 하나가 자신감과 함께 점점점 꼬리표를 달고 사라져간다. ‘안타깝지만 개그는 포기한다...’

라고 방심한 순간, 세 번째 줄에 앉은 안경 쓴 녀석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아직 희망은 있어어어!’     





   

“202반 아주 꼴통 반이야.”

“꼴통이요?!”

 너무 놀란 탓인지. 입에서 밥풀이 튀어나와 버렸다.    

 

선생님들은 점심 종이 울리기 30분 전에 먼저 밥을 먹는다. 나는 상급자인 주임 선생님 옆에 후다닥 뛰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그에게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황급히 앉느라 된장국이 반찬과 국에 다 튀어 버렸다. 그 모습을 슬쩍 보더니 주임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애들 때문에 힘들지?” 다행히 주임 선생님은 인자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 일이 힘들어도 함께하는 동료가 좋으면 일할 맛이 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임님은 일 할 맛이 나게 하는 분이었다. 이런 분과 함께 라면 어떤 힘든 일이라도 오케이다. 나는 거의 울상을 하고 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주임님은 얌전한 고양이처럼 숟가락을 살포시 내려놓더니 입을 뗐다. 그의 첫마디가 바로 이거였다.  

   

“202반 아주 꼴통 반이야.”    


 주임님은 나의 눈을 한동안 지긋이 쳐다봤다.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우아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꼴통이라는 소리가 나오니 당황할 만도 했다.


“그러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란 얘기야. 꼴통 반이니까. 내가 그 반을 맡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네. 자네 오기 전부터 내가 다 미안했어.”


‘인자하다! 그는 인자한 사람이야. 아니요. 제가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라 죄송합니다!!’


“지금 그냥 기 싸움하는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애들 너무 믿지 마. 믿는 순간 바보 되는 거니까.”     


“넵!”

나는 혹여나 아이들이 들을까. 작은 소리로 답했다.  

   

주임님은 수저를 들더니, 말끝을 흐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에 최 선생도 애들을 너무 믿어서 그렇게 됐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을 마친 주임님은 된장국의 두부를 건져 입에 가져갔다. 나도 그를 따라 삐걱거리며 수저로 국을 떠 삼켰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믿음을 주지 않으면 상대도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 믿음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신뢰를 얻어야만 하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뭘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까? 고민에 잠식되지는 말자.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대가 없는 믿음을 줄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믿는다고 꼭 바보가 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하지만 주임님의 말처럼 조심할 필요는 있다.     


“근데, 식판에 김치가 없네?”

“네? 아, 네. 제가 김치를 못 먹습니다.”

“한국 사람이 김치를 먹어야지. 정 선생도 보통은 아니겠어.”     


 ‘보통이 아니다.’ 군 생활을 할 때도, 영화를 찍을 때도, 용접사 자격증을 따서 한 곳에 뿌리를 내려 살아보겠다고 발악하며 살 때도 들었던 말이다. 나는 보통에 낄 수 없었다. 아무리 비집고 그 보통의 자리에 들어가려 해도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보통이 아니어서 힘든 점을 대라면 날이 새도록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이 아니어서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바로 보통이 아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보통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편견이 없거나, 편견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성체가 되지 못했다. 나는 아직 그 중간에 낀 ‘편견이 없고 싶은’ 사람이었다.     


“김치를 먹지 않으니 보통은 아니겠다.”라는 주임님의 말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은 일단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 수 있게 길을 터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숟가락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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