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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May 17.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13

13. 남자 기숙학원으로 출발!




찍었던 영화가 완전히 망해 버렸다.

말 그대로 쫄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를 당해 원룸 보증금까지 날려 먹었다.

배우 생활을 하며 틈틈이 각종 알바를 뛴 결과가 통장 잔고 제로라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서울 땅에 조그만 나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나는 몇날 몇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방구석에 누워 있었다.

넓은 서울 땅덩어리에 자그만 원룸 조차 허락하지 않는 하늘이 원망 스러웠다.


 공허한 일주일이 연기처럼 흘러갔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배가 고파왔다. 나는 귀신처럼 부스스 일어나 흰 죽을 끓였다. 흰 죽 위에 간장 한 숟가락을 보탰다. 짠맛이 입에 닿자 신기하게도 기운이 돌았다. 이때다 싶었던 뇌가 죽어가던 몸을 일으키려 도파민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거 까짓거 책부터 쓰자!’     


나는 하나 남은 재산인 스파크 차량에 짐을 싸 욱여넣었다. 햇수로 10년 서울살이가 우체국 6호 상자 3개로 정리됐다. 상자를 봉 할 테이프 살 돈도 아까워 상자의 바닥과 입구를 대각으로 접어 닫았다.    

  

‘겨우 세 박스라니...’     


상자에 담긴 짐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나의 10년 연기 생활이 끝났다.     






 기숙학원 이사장은 나에게 아주 달콤한 말을 던졌다. 아이들 관리만 잘하면 남는 시간에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과 꿈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기숙학원 선생님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님들은 야간 자습시간에 자격증이나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다.     


나는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담긴 수첩을 펼쳤다.     


- 영화 1편

- 다큐멘터리 1편

- 책 1권     


 영화 1편이라고 쓴 글씨에는 빨간 펜으로 세모 표시가 되어 있었다. 글자 위에 엑스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다시는 영화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워 세모 표시로 타협을 봤다. 종작에는 빨간색 세모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위에 파란색 펜으로 덧칠을 했다. 

‘보류!’     


 이를 악물었다. 죽기로 다짐했을 때, 그리고 죽기에 실패했을 때, 나는 딱 세 가지 도전을 하고 ‘다시 죽어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나는 그날 죽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10년을 미친 듯이 영화에 매달렸다. 덕분에 배우로 그리고 감독으로 영화제에도 여러 차례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악재가 겹쳤다. 늘 이런 식이었다. 악재는 겹친다.     


 기숙학원을 만만하게 본 것도 악재였지만, 기숙학원 중에서 남자 기숙학원을 선택한 것은 악재 중의 악재였다. 원룸에 들어가려고 했던 돈을 –운명의 장난처럼- 날린 뒤, 숙식이 가능한 직업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기숙학원이었다.      


‘기숙학원’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아는 형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틀어박히겠다고 말한 두 곳 중 한 곳이 기숙학원이었다. 형님은 머리를 ‘빡빡’ 밀고 그가 말한 첫 번째 선택지로 향했다. 그는 몇몇 영화 동료들에게 가끔 고기나 들고 면회나 오라며 호기롭게 고향 근처 절로 향했다. 절에 들어가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벌써 고기 타령을 한다며 걱정 섞인 핀잔을 들었다. 동료들은 그를 위해 삼겹살집에서 송별회를 열어 주었다. 영화과 후배 중에는 눈시울을 붉히는 아이도 있었다. 누군가의 단절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형이 멋져 보였다. 꿈을 위해 일상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는 다시 속세로 돌아왔다. 한 달 동안 신선한 공기를 마신 그의 노트북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노트북은 형이 절에 들어가기 전 신선한 상태 그대로였다. 속세로 돌아온 형은 노량진의 고깃집에서 진지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맑은 곳에 있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써져.”     


술이 좀 들어간 그는 내 술잔에 소주를 채우며 혀 꼬인 소리를 냈다.

“인간은 말이야, 좀 삐뚤어진 곳에 있어야 뭐가 나와도 나와. 알았지? 절은 아니야. 절은 절대 아니다!”     


 그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형님의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 나는 나의 위대한 초고를 쓸 장소로 기숙학원을 택했다. 무엇보다 나는 김치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절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얄궂은 운명에 맡겨보기로 했다.     


 좀 삐뚤어진 곳에 가야 뭐라도 나온다는 형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형이 절에서 맞이한 어떤 순간처럼 나 역시 이곳에서 글을 쓰겠다는 헛된 희망은 버려야 했다.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든 글을 쓰든 한 가지만 선택해야 했다. 테스토스테론 냄새가 풀풀 풍기는 남자 기숙학원은 절대! 절대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남자 기숙사에서 일어난 ‘집단 대탈주’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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