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꼴통 202반
202반 아이들은 기숙학원에서 가상 현실 게임을 하는 듯했다. 일일 퀘스트를 받은 아이들은 난이도 높은 퀘스트부터 손쉬운 퀘스트까지, 하나하나 착실히 완료해나갔다.
퀘스트 이름은 ‘문제 일으키기’, ‘선생님들 화나게 하기’, ‘예상하지 못한 행동 하기’등등 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싸웠고, 선생님들과도 싸웠다. 어떤 날은 학원 들판에 자란 잡초하고도 싸웠다.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사람이 잡초와 싸울 수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잡초와도 싸웠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죄 없는 갈대를 발로 차고, 맛있는 쑥에 불을 붙였다. 나는 달려가 불길을 짓밟으며 화를 꾹 삼켰다. 타들어 간 들풀과 쑥은 아무 죄가 없지 않은가? 아이들은 왠지 모르게 항상 화가 난 상태였다.
매일 같이 아이들이 말썽을 피웠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제일 화가게 했던 사건이 있다. 어느 날 아침, 흡연하는 아이 여럿이 교무실에 씩씩거리며 몰려 들어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주임님께 욕을 쏟아냈다. 기숙학원에 마지막 남은 평화의 상징이신 주임님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아이들의 폭언을 조용히 감내해야만 했다.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불러내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날 주임님은 조기 퇴근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의 어깨는 수분 먹은 무말랭이처럼 축 처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방에 돌아와 룸메이트였던 김 선생에게 욕설을 퍼부은 아이들만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냈다. 김 선생은 나에게 진정하라고 하며 산책이라도 하자고 했다. 산길을 투벅투벅 걸으면서 김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여기 온 아이들은 다 불쌍한 아이들이에요. 선생님이 좀 더 잘해주세요.”
순간 축 처진 주임님의 어깨가 떠올랐다. 나는 화를 간신히 삼켰다. 김 선생에게 이곳에 불쌍한 아이들은 없다고 소리쳤다.
괜히 애꿎은 김 선생에게 화를 낸 거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은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슈퍼는 걸어서 왕복 2시간 이상 걸렸다. 아이들은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학원에 매점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아이들은 자유의 맛을 포기할 수 없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일탈을 정당화했다. 결국, 새로운 자유의 맛을 찾아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슈퍼에 가는 녀석이 생겨났다. 그 바람에 선생님들은 근무가 끝나고 2시간 동안 추가 근무를 서야 했다. 아이들은 근무 서는 선생님의 동선을 파악해 감쪽같이 슈퍼에 다녀왔다.
우리 202반 아이들은 공부엔 눈꼽 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 동안 일이 터지지 않으면, 잠들기 전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202반 아이들이 매일같이 말썽을 피워대는 통에 나는 잠자던 도중에도 교무실로 불려 나가야 했다. 비몽사몽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매일 오후 3시 40분에는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모여 회의를 진행 했다. 회의의 시작은 202반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재차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내 생에 이렇게 눈치가 보였던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아닌 우리반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 킨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모든 일이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회의 시간에 아이들의 잘 못을 듣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정 선생, 동혁이가 농구 하다가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왔으니, 주의 주세요.
정 선생, 진호가 오전 수업에 안 들어오고 숙소에서 잠을 잤으니, 주의를 좀 주세요.
정 선생, 진수가 숲에 불을 질렀으니,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정 선생, 새벽에 202반 아이 하나가 노래를 불렀으니, 하지 말라고 하세요.
정 선생, 누구누구가 컴퓨터실에서 딴짓을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컴퓨터실 사용 금지입니다.
‘정 선생’이라는 말이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 아이들은 질리지도 않고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다 수명이 반으로 줄겠다. 싶었다. ‘아, 그만두고 속세로 돌아가고 싶다.’
선생님들은 매일 밤 함께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용접사로 천안 아산에 있을 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고된 일을 마치고 나면 술을 마신다. 일의 고단함을 술로 비워낸다. 이곳은 육체적으로는 편한 곳이지만 정신적으론 고된 곳이다. 탄산 파였던 나는 점점 탄산보다 술을 먹는 날이 늘어갔다. 나는 술에 취해, 아이들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고 선생님들 앞에서 칭얼거렸다. 선생님들은 꼴통 202반 담이 된 나를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마치 자기 일처럼 위로해줬다.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에 학원을 그만뒀을 것이다. 역시 일이 힘들어도 함께 하는 사람이 좋으면 일은 계속할 수 있다. 주임님은 그 특유의 섬유유연제 같은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줬다.
주임님은 내가 진짜 그만둘까 걱정되시는 듯, 평소에 하지도 않던 거친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실패자’라는 단어가 꼭 나를 말하는 것만 같아 조금 슬퍼졌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나는 다시 친구들 곁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실패자란 사실을 숨기고 싶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산속에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 술에 잔뜩 취해서 그랬는지 갑자기 우리 반 꼴통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누군가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냥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들은 실패자가 아니다. 다만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하늘이 빙빙 돈다. 오늘은 술에 많이 취한 것 같다.
주임님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정 선생 교실에 가봐. 애들이 바나나를 죽였어.”
“바, 바나나라뇨?”
“그렇게 됐으니까. 빨리 가서 말려봐.”
주임님은 늦기 전에 가보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주임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은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도, 숲에 불을 지르는 것도 아니었다. 주임님은 젊잖지 않은 행동, 특히나 202반 아이들의 장난질을 제일 싫어했다. 주임님의 말을 들은 나의 당시 기분이 어땠을지 아는가? 나는 담담히 ‘바나나 살인’의 증거 사진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 기숙학원에서는 바나나 살인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서두르자. 나는 핸드폰 사진 어플을 터치했다.
<처참히 살해 된 바나나의 모습>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씨익 미소를 짓던 아이가 스스로 범행을 자백했다. 나는 사진으로 증거를 확보했다. 범인은 웃으며 “선생님 죽은 바나나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라고 장난스레 물었다. 잔인한 놈. 녀석은 죽은 바나나의 시신을 거침없이 벗겨 내 입으로 가져갔다. 뒤따라온 주임님이 교실 밖 창밖에서 고개를 내저었다.
<반성의 기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잔인한 범인의 모습>
문밖에 있던 주임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주임님의 안색은 어둡다 못해 캄캄했다. 내가 살인 현장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이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나는 혼나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았다.
“정 선생, 아이들이 잘 못을 저지르면 더 크게 혼내주면 좋겠어.”
“죄, 죄송합니다.”
주임님께는 정말 죄송했다. 왜냐면 바나나 살인 사건은 선생인 내가 봐도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룸메이트 김 선생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김 선생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좋아졌나 본데요? 이런 장난을 치는 거 보니.” 뭐, 기분은 좀 좋았다. 아이들과 친해진 것만 같아서. 그래도 주임님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조금은 강하게 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보단 주임님이 내 기숙학원 생활의 유일한 도피처였으니까.
며칠 뒤, 오전 선생님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오전 선생님은 난감한 기색으로 나에게 말했다.
“202반 진수가 수영장에 염소를 가둬놨어요. 선생님이 좀 꺼내 주셔야겠습니다.”
나는 하마터면 ‘선생님, 여기에 염소가 어딨습니까?’ 라고 되물을 뻔했다.
남자 기숙학원에서 불가능을 의심하면 굉장히 실례되는 행위다.
나는 “넵!” 짧게 대답하고 오전 선생님의 뒤를 따라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빠진 가엾은 아기 염소 두마리>
‘그래, 가능해. 그럴 수 있어. 염소? 있을 수 있어.
그래. 진수가 염소를 수영장에 잡아다 놨구나. 하. 하.’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남자 기숙학원은 진짜 거짓말 같은 곳이다. 보고도 못 믿을 일이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 깊은 산속에서 갑자기 염소는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며, 진수는 어떻게 염소들을 수영장에 몰아넣은 걸까? 미스터리 하다.
염소의 목에는 목줄이 걸려있었다. 분명 누군가 기르는 염소가 목줄이 풀려 도망친 것이리라.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라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오전 선생님께 약간의 불만을 털어놨다.
“선생님! 그, 두 마리란 말은 없으셨잖아요!!”
오전 선생님의 별명은 ‘콩 선생님’ 이었다. 머리 생김새가 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콩쌤은 담담하게 나의 불만에 답했다.
“두 마리라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두 마리면 혼자서 무리지’
콩쌤과 나는 수영장에 빠진 염소를 꺼내기 위해 창고에서 두꺼운 나무판자 두 개를 가져왔다. 염소는 우리의 탈출 계획에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나는 속으로 ‘너희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자유를 주려는 거야’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염소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나와 콩쌤의 손길을 피해 수영장 곳곳을 요리조리 누볐다.
야속한 염소는 우리가 설치한 ‘자유의 판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콩쌤과 나는 각자 한 마리씩 염소를 들어서 끌어내기로 했다. 염소의 뿔을 잡자 염소가 발버둥 쳤다. “으악!” 나는 뿔을 잡은 채로 염소의 뒷 발에 와사바리를 걸었다. ‘쿵!’ 소리와 함께 염소가 넘어졌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염소를 들어 수영장 밖으로 던져버렸다. 수영장 반대쪽 구석을 보니, 콩 선생님은 윗옷을 벗어 염소의 얼굴을 가린 뒤, 염소를 빼냈다.
‘휴우, 오늘 일일 미션 성공’ 선생님들의 미션은 아이들이 완료한 미션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콩쌤과 나는 서로 뜨거운 악수를 나눈 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수영장에서 빠져나온 염소들은 그 즉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염소 사건을 계기로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오늘 저녁 석회 시간에 반드시 아이들을 혼낸다! 그것도 아주 크게!’
염소도 죄인이 처벌받기를 원한 건지 저 멀리 숲속에서 ‘메~’ 하고 화답한다.
아이들을 크게 혼내려는 건 단지 염소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임님과 지난번에 했던 약속.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다만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교탁 바로 앞자리에서 흰자를 까뒤집고 나를 노려보는 무서운 녀석.
그 녀석이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까?’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