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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Jun 07.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17

17. 천사와 악마



 아이들을 크게 혼내기로 결심 한 날 저녁,

나는 주임님께 조언을 얻기 위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주임님은 나에게 간결하게 조언했다.     


“애들이 덤비면 교무실로 뛰어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는 만약 이번 일로 내가 학원을 떠나게 된다면, 202반 담임은 뽑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크게 혼을 낼 거면 휴가 전날 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정 선생에게 린치를 가할 수 있으니, 혼을 낸 다음 날 기분 좀 풀고 오라는 취지였다. 주임님은 내 휴가 뒤에 연차 하루를 더 붙여 마음껏 쉬고 오라고 배려까지 해 주셨다. 영화촬영장에서도 일했었고, 일반 촬영 회사 그리고 건물 유지 보수 회사에서도 일했다. 그 어느 곳도 주임님처럼 직원을 배려해 주는 곳은 없었다. 선생님 한 명이 휴가를 가면 다른 선생님이 쉬는 선생님 반까지 맡아야 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휴가는 1박 2일로 엄격히 통제됐다. 주임님은 나 대신 우리 반을 맡아 준다고까지 한다. 
 

‘이런 자상한 사람.’      


 솔직히 겁은 났지만, 기운이 조금 더 났다. 

이렇게 든든한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휴가 전날. 이제 결전의 날만 기다리면 된다. 내가 이곳에 입사하고 나서 아이들이 선생님의 멱살을 잡은 것만 해도 벌써 세 번이 넘는다. 나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침착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조치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전속력. 그리고 교무실.’     


 숙소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교실로 내려오는 비탈길에서 난 항상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재수생이라는 이름의 살아있는 소 악마들을 만나기 전에 마음을 평온케 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그중 쇼팽의 ‘피가로의 결혼’이 나에게 가장 큰 안식을 주었다. 안식이 곧 절망으로 바뀌는 날들도 많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처럼 ‘내 마음속에 있는 음악을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오늘 나의 계획이 실패한다면 바닷가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며칠 전 아이들이 교무실에서 소리치고 난리를 피울 때, 가만히 눈만 감고 계셨던 주임님의 침착함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계속 내리고 다녔던 머리에 힘을 잔뜩 줬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일종의 경고성 머리 스타일이었다. 머리를 바짝 올린 나는 심각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에 눈치가 빠르다. 202반 아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교탁 바로 앞자리의 녀석은 금방이라도 나에게 튀어나올 듯한 표정이었다. 녀석은 언제나처럼 두 손을 턱에 받치고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녀석이 내 말을 듣고 튀어나온다면 “반장, 도와줘!”라고 소리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야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스치듯이 반장에게 불쌍한 눈빛을 흘렸다. 반장은 내 신호를 읽은 건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반 반장은 든든하다.’ 이제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나는 가만히 분필을 들어 대문짝만한 글씨로 칠판에 나의 분노를 옮겨 적었다.


‘천사와 악마’     


 나는 가다듬어지지 않은 언뜻 쉰 것 같은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하는 거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머릿속에 빙빙 떠돌던 말이 나의 전두엽을 스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이 첫 멘트. 

대한민국 고등교육을 거친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 

그렇다. 이건 중고등 학생 시절 수련회 조교가 했던 말이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의 ‘천사와 악마’ 레파토리는 이젠 거의 명대사 반열에 올라있는 대사가 아니던가! 

머릿속이 멘트를 따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내뱉은 말대로라면 나는 이미 악마가 됐어도 한 참 전에 되어있어야 했다.

민망함을 이겨내지 못한 나의 못난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망했다!’






 교실 분위기는 마치 스탠딩 코미디 공연장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들을 웃기려고 한 건지, 혼내려고 하는 건지 헛갈린 듯 보였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교실을 둘러봤다. 얼굴에 웃음꽃이 필랑 말랑한 아이들이 미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그 아이들을 눈빛으로 제압했다. 아이들은 전혀 제압당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눈썹을 들썩이며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간을 보고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혼을 내 봤어야 알지!’ 준비한 모든 말들이 시작과 동시에 꼬여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당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는 잔인한 염소 사냥꾼 진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수! 너! 아무리 그래도 염소는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진수는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나는 아이의 말을 싹 잘랐다.

“진수 너!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거야. 어디 핑계 댈 생각을 해!”

나는 속으로 ‘나는 악마다. 지금 나는 악마다.’를 되뇌었다. 혹여나 실수로 몹쓸 말이 튀어나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막 대하면, 안돼! 결국, 그런 행실들이 사람에게 향하게 되는 거야. 알았어?”


 평소 장난기가 흘러넘치던 진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강하게 나가줘야 아이들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구나.’

“대체 염소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수영장에 가둘 생각을 하지?”

나는 어깨가 으쓱해져서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희들도 똑같아. 친구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너희들이라도 말렸어야지. 수영장에 물이 없었으니까 망정이지 염소가 불쌍하지도 않아?!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술에 취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자신에게 취하는 것이다. 내가 언성을 너무 높였던 걸까? 

맨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쾅!’하고 내리쳤다.

“아니, 말이 왜 또 그렇게 전달 되는데요?!”

아이가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본다. 나는 교실 문을 슬쩍 곁눈질로 바라본다.

“저, 전달이라니?”

아이가 아까보다 더 성을 낸다.

“아니라니까요?! 몇 번을 설명해도 왜 그러시는 건데요? 며칠 잠잠하길래 잘 전달 됐다 싶었는데, 또 이러네? 이 망할 학원이!”     


 나는 머릿속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몇 번을 설명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나는 진수가 염소를 수영장에 빠뜨렸다는 말 말고는 전해 들은 바가 없다. 거기다 그 가엾은 염소 두 마리를 나와 콩쌤이 직접 꺼내 주지 않았던가! 아이들의 말을 믿지 말라던 주임님의 단호한 얼굴이 떠올랐다. 밀리지 말자.


“아무튼!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우리 반에서 조금이라도 장난치는 녀석이 나오면, 우리 반 전체가 혼나는 거야? 알았어?!”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은 후 교실을 빠져나왔다. 손이 미끄러진 건지 실수로 문이 ‘쾅!’ 하고 닫히고 말았다. ‘으이구,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하지만 이건 진짜 바람이 그런 거다. 복도 끄트머리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세차게 들이닥쳐서 그런 거다. 교실로 돌아가 ‘얘들아 이건 진짜 바람 때문에 세게 닫힌 거야. 오해하지 마.’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해명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랬다간 아무런 소득 없이 진짜 스탠디업 코미디가 되고 말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군가 책상을 또 한 번 ‘쾅!’하고 내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맨 앞자리 아이가 한 말 때문에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벌컥 화를 내고 달려들었다면, 아이를 용서해주면 그만이었을 텐데. 억울한 눈빛을 한 아이들의 얼굴이 스친다. 맨 앞자리 녀석의 주먹 진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악당은 나였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몸을 기댔다.      


‘휴, 이것도 못 할 짓이구나.’ 

‘차라리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걸 그랬나?’      


 후회가 몰려온다. ‘휴가 다녀와서 아이들 얼굴은 또 어떻게 본담?’ 앞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서 상황을 정리하자. 지금 이대로 시간이 쌓이면 아이들과 다시는 친해지지 못한다. 오해가 쌓이면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 몸의 균형을 간신히 바로 잡았다. 나는 방향을 돌려 계단을 뛰어올랐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선생님”


 누군가 계단 위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계단 사이로 얼굴 반쪽이 빼꼼하고 튀어나왔다. 반장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웃음을 지었다. “그래, 왜?” 반장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푹 쉬고는 나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반장을 따라 계단을 꺾어 빈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은 어두웠다. 나는 스위치를 찾기 위해 벽을 더듬었다. 반장이 내가 스위치를 누르려는 것을 가볍게 제지했기 때문에, 녀석과 나는 계속 어두운 교실 안에 서 있어야만 했다. 반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주위를 살피곤 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선생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하신데”

아이의 눈에서 짐승처럼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뭔가 기괴한 느낌이 들어 머리털이 곤두섰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나에게 해를 가할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 아이들을 원망하진 말자. 김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그때 반장의 입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진수는 구해준 거예요. 그 염소들”     


 황당한 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기울어졌다. 염소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수영장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진수가 구해준 거라니? 반장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장 녀석도 말썽꾸러기들과 한통속이 되어 나를 속이려는 건가?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수영장 안에서 구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염소 두 마리를. 반장은 불안한 듯 교실 문에 달린 작은 직사각형 창문을 살폈다. 누가 엿듣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낌새였다. 이렇게 긴장한 반장은 또 처음 본다. 그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선생님, 제 얘기 잘 들으세요.” 반장은 마른 침을 삼키며 나에게 속삭였다.      







    

“이거 다 주임 선생님이 꾸민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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