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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Jun 14.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18

18. 거짓말


더위에 지친 유리 컵에서 얼음이 짤랑하고 녹아내렸다.

‘거짓말!’     






섬유 유연제 같이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흘러들었다.

‘애들 너무 믿으면 안돼!’          



 나는 반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진실을 말해라. 이 악당아!’ 반장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나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아이는 평온하다. 밀담을 나누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마치 졸린 것처럼 부스스하다. ‘거짓말을 하는 걸까? 긴장한 나머지 졸음이 쏟아지고 있니? 아니지, 긴장했다면 졸리진 않겠지.’ 나는 가재눈을 하고선 다시 한번 반장의 눈을 쏘아보았다. 반장은 그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구데타마 처럼 눈이 감기기 직전이다.     


 나는 점쟁이도 형사도 아니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거짓을 판별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더구나 반장의 눈은 작아도 너무 작다. 가만 보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젠장, 모르겠다.’ 나는 반장의 말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반장은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체념한 듯한 감정이 오히려 나에게 설득력을 불러일으켰다. 

반장은 입이 마른지 침을 끌어모아 꿀꺽 삼켰다.     


 반장이 전하는 진실은 이러했다.     


주임님은 아이들이 하지도 않은 잘못을 꾸며내는 거짓말쟁이다.

그는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학생과로 끌려가 억울하게 반성문을 써야했다.

- 반성문이 10장 쌓이면 아이들은 강제 퇴소를 당할 수 있다 -


이에 화가 난 아이들이 부모님께 하소연해보지만, 부모님들은 아이들 말보단 주임님의 말을 더 신뢰한다. 

- 아이들이 집에서도 말썽을 피운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 


이후 주임님의 거짓말 공격은 더욱 과감해진다. 

고통스러운 누명의 시간이 흘렀으나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 이 모든 사실을 말한다. 도움을 구한다. 

이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들을 다독인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담임 선생님은 소리소문없이 학원을 그만둔다.

결국, 아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처하고 만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났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자라났다.     


 주임님의 이상행동은 이미 아이들 사이에선 유명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장의 말에 따르면 주임님은 특히 우리 반을 지독히 미워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전 담임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의 SOS요청이 주임님께 전달된 것 같다며 한탄한다. 아이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담임 선생님이 휴가를 가면 주임님이 교실로 들어와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폭언까지 믿을 수 없는 말들 투성이다.

아이는 주임님에 대한 말을 마치고 담담히 나를 바라본다.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저희도 알아요.”     


 나는 입이 떡하니 벌어진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 다정하신 주임님이 이중인격자 소시오패스라니. 머릿속의 조각 얼음이 스믈스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 이상의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아이들의 말을 믿지 말라던 주임님과 주임님이 소시오패스라고 말하는 반장. 나는 주임님의 말을 더 믿고 싶었다. 만약 반장의 말대로 그가 악당이라면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그 이야길 왜 선생님께 하는 거지? 이제 이 학원 선생님들은 믿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나의 물음에 반장이 피식 웃으며 답한다.

“애들이 선생님을 좋아해요.”     


갑작스런 고백은 사람을 당황 시킨다. ‘요 말썽꾸러기 녀석들, 한없이 불친절하게 굴더니 사실은 아니었구만!’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물었다.

“반장 너는 어떤데?”     


“그냥, 좀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천사와 악마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놓지 말았어야 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르고 어두운 교실의 불을 켰다.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교실로 돌아가서 공부하고 있어.”     


 반장은 말을 잘 듣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곧바로 교실로 향했다. 아쉬운 이야기지만 나는 반장을 믿지 않았다. 주임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주임님의 말이 맞다. 아이들을 믿는 건 위험하다. 녀석들은 단지 심심할 뿐이다. 심심해서 선생님들을 이간질시키는 것 뿐이다. 


 얌전하고 고상하신 분이 능구렁이 같은 일들을 꾸미는 간사한 뱀 새끼라니, 믿기 힘든 거짓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주임님이 아이들을 억울하게 만든다고 그에게 무슨 득이 되겠는가? 반장의 축 처진 뒷모습이 애처롭다. 머릿속 얼음이 하나도 남김없이 녹아내렸다. 감정적으로 문제를 판단하지 말자는 다짐이 무너졌다. ‘진짜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교무실로 향하지 않았다. 옆문을 통해 학원을 빠져나온 나는 이어폰을 귀에 가져갔다. 클래식은 지루하지 않다. 나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에 내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나는 고요히 두 눈을 감았다. 눈으로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감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른다. 무의식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또렷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어둠 속 저 멀리 우리 반 아이들이 보인다. 클래식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깨워 준다.     


맨 앞자리 아이의 치켜뜬 두 눈은 원망을

진수의 꾹 다문 입술은 억울함을

반장의 축 처진 어깨는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래, 아이들의 말이 무조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건 단지 감정이 내린 편파적 결정일 뿐이다. 주임님을 존경하는 순수한 마음이 되려 진실의 눈을 막은 것이다. 주임님도 맹목적인 존경은 원치 않으실 것이다.     


이 순간 나는 나의 선택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친다. 그렇다.

아이들도 주임님을 악당으로 만들어서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적당히는 넘어가지 말자’     


이건 내 양심의 문제이자, 대학시절 용기 내지 못했던 초라한 진실의 문제였다.

다음날 나는 휴가를 가는 척 차를 산 아래에 주차했다.





     

나는 영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웠다. 

진리가 담긴 철학적인 영화에서 희망의 답을 찾아왔다.

내가 죽지 않은 이유도 내가 그렇게나 사랑한 영화 덕이었다.

좋은 영화 한 편은 좋은 책 열 권을 읽는 것과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에서 그랬다.

‘늘 그랬듯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라고     


 나는 음악을 듣던 철제 계단을 통해 학원 안으로 몰래 잠입했다. 석회 시간은 오후 5시 10분에서 20분까지다. 나는 그림자같이 쪽문을 열고 연기처럼 202반 옆 창고 교실로 몸을 숨겼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아직 1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별의별 망상을 다 했다.

     

교실에 주임님이 들어서자 아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

앞자리 아이가 눈을 치켜뜨자 아이에게 경고 하는 주임님.

세 번의 경고에도 아이가 계속 주임님을 노려봐서 분노하는 주임님.     


주임님이 내가 숨어있는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와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모습을 들키는 망상.

주임님이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어우’ 나는 악몽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몸을 ‘움찔’하고 떤다.      


 1시간 같은 10분이 흘렀다. ‘제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아찔한 망상들이 지나가고 저 멀리 복도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폭주 기관차처럼 미친 듯이 펌프질했다. 시계를 보니 5시 10분이었다. 석회 시간이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구두 소리가 우리 202반 교실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갑자기 거칠게 ‘쾅!’하고 문이 조각나는 소리가 났다.


“너희들 부끄럽지도 않냐?!!”     


 누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불안한 감정이 조용한 복도를 가른다. 교실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나는 좌절하고 만다. 고함의 주인이 주임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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