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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Jun 21.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19

19. 부끄러움



“너희들 부끄럽지도 않냐?!!”

주임님의 목소리에서 다정한 섬유 유연제 냄새는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했다.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가 아는 사람인지 똑바로 알아야만 했다. 나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았다.     


“뭐가요?”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불만 가득한 표정이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교실은 여전히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다.     


 손이 덜덜 떨린다. ‘확인만 하자. 확인만 하고 돌아가는 거야’ 나는 살그머니 문을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우리 반 교실 앞문과 내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창고 문 사이의 거리는 약 1.5m. 나는 호흡을 멈추고 눈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문을 열었다.          



       


 


 주임님의 옆모습이 내 동공의 크기를 확장 시켰다. 그의 얼굴은 거의 일그러지다시피 구겨져 있었다. 그는 내가 지난 석 달 동안 알고 지낸 인자한 성품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화가 난 들짐승처럼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임님의 입술이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들썩였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말하면 알아듣긴 해? 니들 같은 꼴통들한테 내가 뭔 얘기를 하겠냐?”

그의 목소리에서 장마철 덜 마른 수건 냄새가 났다. 온 신경이 거슬리는 퀴퀴한 냄새가.

앞자리 아이가 참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아니, 말씀해 보세요. 갑자기 뭐가요? 뭐가 부끄럽다는 건데요?”     


나는 문틈으로 똑똑히 보았다. 

아이가 언성을 높이자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을.

그는 아이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

“공부가 뭐요?”

“못하는 거. 공부 못하는 거.”

이번엔 우리 반 아이들 전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아이들의 황당해하는 얼굴이 눈에 선했다.      


“부끄럽지 않냐고. 공부 못하는 거”


 주임님은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듯 다시 한번 자신의 궤변을 찬찬히 훑어 전달했다. 그의 왼쪽 눈에서 이상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리가 달달 떨려왔다. 분노와 공포가 섞인 긴장감이 온몸에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너희는 부모 피 빨아먹는 실패자들이야. 니들이 멍청하고 수치심이 없으니까 죄 없는 니들 부모들이 개고생하는 거고. 알았어?”


 나는 블랙홀에 뇌가 빨려 들어간 것같이 아무런 생각도 이어갈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의 궤변을 듣고만 있었다. 그 젊잖던 주임님이 아이들에게 의미 없는 폭언을 쏟아내는 건 기숙학원 수영장에 염소 두 마리가 빠진 것처럼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독설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202반이 꼴통 소리를 듣는 거야. 공부도 못하고 생각도 없으니까. 니들 부모들이 불쌍하다 불쌍해”


나는 이번엔 답을 찾아내지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염소들을 건져 올린 것처럼 옳은 일은 해야만 한다. 

나는 문고리를 꽉 잡았다. 그때 졸린듯한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선생님은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데요?”     


 반장이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반장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졸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졸린듯한 목소리에는 단 하나의 반항도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침착하기 위해 감정을 최대치로 낮추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중재와 평화가 뭍어났다. 어쩌면 반장이 나를 설득해 이 자리에 오게 한 것처럼 주임님의 감정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싹텄다, ‘반장을 믿어보자.’ 나는 잡고 있던 문고리에서 힘을 풀었다. 만약 내가 학원에 오기 전에 아이들과 주임님 사이의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이 그 문제를 풀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눈에서 힘을 빼고 주임님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이 다시 고요함을 찾아갔다. 그는 이전에 내가 알고 지낸 고요하고 평온한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반장 해냈구나!’     


“자, 이번 주 주말엔 비가 올 예정이니까 운동장 통제가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식사 시간 전에 영어 단어장 안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다. 밥 먹을 때 단어장 꼭 챙기고.”     


 주임님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지 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가 삐져나왔다. 반장의 말은 진실이었다. 주임님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석회 시간 10분이 지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서 30분을 더 주저앉아 있었다. 창고 안은 어둡고 적막했다.          



오해는 내가 가진 하나의 눈으로 세상 전부를 보려 할 때 생겨난다.

난 우리 반 아이들 전부를 오해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김치를 못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온갖 편견에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수없이 많이 편견에 맞서왔다.

그날 밤 나는 주임님의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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