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응급상황 2 – 베토벤
이제 놀란 토끼 눈으로 녀석의 귀를 살피고 있다. 사감님은 단 하나의 과장도 섞지 않았다. 녀석의 귀에서 붉은 선혈이 말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랩을 너무 많이 내뱉어서 결국 자기 귀를 공격한 것일까? 그래, 결국 녀석의 귀는 입이 내는 소리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녀석은 별이 빛나는 운동장에서 랩을 했고, 기독교인이신 어머니 몰래 피우는 흡연장에서도 랩이라는 방언 기도를 소리 높여 중얼거렸다. 심지어 <복.도.정.숙.>이라고 써 놓은 경고문 옆에 서도 당당히 랩을 했다. 녀석이 노래를 시작하면 선생님들은 녀석의 입을 막기 위해 더 큰소리로 조용히 하라고 외쳐야만 했다.
기숙학원에서 휘파람과 노래는 금지다. 휘파람과 노래는 전염되어 한순간에 합창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녀석은 물을 방류하는 장마철 댐처럼 쉴새 없이 떠들어댔다.
“선생님, 선생님! 이 랩 들어보셨어요?”
“아니, 이 노래를 모르세요? 실망입니다. 최악이네요.”
“네, 맞습니다. 저 관종입니다. 그러니까 들어보세요.”
“선생님들이 제 랩을 막을 순 있겠지만, 음악을 향한 제 사랑은 막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 이제 다시 제 의지를 보여드릴 시간이군요. 들어주세요.”
녀석은 하루에 열댓 번씩 그놈의 랩 때문에 주의를 받았다. 사과는 또 얼마나 빠른지 주의를 주면, 그 즉시 “죄송합니다!”하며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그리곤 곧바로 주의를 받기 전 불렀던 노래의 다음 트랙을 입에 담았다. 녀석의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해부해 보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참이었다. 녀석의 자유로운 영혼은 좋았지만, 밤낮없이 이어지는 랩만큼은 싫었다.
아이고, 내가 뭐라고 했어! 귀에서 피가 철철 난다고 했잖어!
사감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나 같아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이렇게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은 살아생전 처음 본다. 사감님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이들 방에 하나, 둘 불이 켜졌다. 녀석이 입고 있는 흰색 티셔츠의 어깨 부분이 붉은 피로 흥건히 물들어 있었다.
피를 보면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은 유전인가보다. 이런 증상을 ‘미주신경성 실신’이라고 한다. 나는 곧 죽어도 아버지 아들인가보다. 피를 보면 심장이 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맥박은 낮아진다. 맥박이 낮아지니 뇌에 산소가 공급이 떨어진다. 심하면 이대로 실신할 수도 있다. 나는 멍하니 녀석의 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나까지 정신을 잃으면 진짜 큰일이다. 사감 선생님은 나이가 있으셔서 어둠이 깔린 도로를 운전하지 못한다. 이 순간, 이 공간에서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천천히 꿈뻑이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어째 더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축농증 수술을 받았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수술을 마친 아들의 코에서 무려 거즈 40개를 꺼내는 모습을 보시곤 나를 두고 도망갔다. 솔직히 나도 내 콧속에 그렇게 많은 양의 거즈가 들어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아들을 두고 도망치는 상황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나는 의사가 아버지께 잘 들고 계시라고 한 거즈 통을 도망친 아버지 대신 손에 들었다. 의사는 “나머지 거즈 꺼낼 때까지 잘 들고 있어야 한다.”고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꽤나 불쾌한 자상함이었다. 의사들은 가끔 정말 남의 일처럼 차분하게 말하곤 한다. 하긴 아버지가 처치실에서 도망쳐 나갈 때 의사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깜짝 놀랐다면, 내 코는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의사의 불쾌한 차분함은 인정해줘야 한다. 인정. 인정.
의사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로 콧속에서 뽑혀 나온 피에 물든 거즈가 보인다. 거즈는 마술사가 입에서 뽑아내는 만국기처럼 내가 들고 있는 알루미늄 통속으로 신명 나게도 떨어졌다. 처량한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픈 것도 잊고 헛웃음이 났다. 이때만큼은 의사도 피식하고 웃었다. 나는 부모의 실수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그때의 상처로 나는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도망가면 남겨진 사람이 엄청 뻘쭘해진다. 나는 거즈 통을 스스로 들고 반대편 코에 박힌 거즈 20개를 받아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어깨를 툭툭 쳐 주었는데,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 자신이 대견하긴 했다.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옷 갈아입고 나와. 빨리 병원에 가자”
혹시 수술이라도 하게 된다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 가장 가까운 곳을 뒤지고 뒤지니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 병원이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다. 학원에서 아주대병원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차분한 의사 선생님을 떠올렸다. 귀를 다친 래퍼 앞에서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프로듀서로서 자격이 없다.
그 어떤 일도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차분 해졌다.
이제 나는 능력 있는 프로듀서다. 공연 중 무대 위에서 귀를 다친 소중하고 끔찍한 나의 래퍼. 그를 안전하게 병원으로 모셔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녀석은 수십 조의 가치를 가진 대한민국 최고의 아티스트다. 나는 수만 관중의 희망이다. 조수석에 그가 앉는다. 눈 뜨자마자 자신의 입을 가만히 놔두지 않던 세기의 래퍼는 웬일인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조용한 새벽의 고속도로에 긴장감이 감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십 분쯤 지나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녀석으로서는 굉장한 인내력을 발휘 했던 것 같다.
“선생님, 저 굉장히 유명해질 것 같습니다”
“뭐? 왜?”
나는 나도 모르게 시큰둥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맡은 역할에 너무 집중한 탓이었다.
망상 속에서 나는 조금 시크한 프로듀서였다.
“선생님 오늘을 기억해 주십시오. 만약 제가 오늘 한쪽 청력을 잃게 된다면 래퍼계의 모차르트라 불리게 될 겁니다. 오늘이 바로 그 전설의 날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모차르트가 아니라 베토벤이다 이놈아!’
녀석의 긍정 에너지는 대체 그 한계가 어디란 말인가? 청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저런 하찮은 소리나 떠벌이고 있다니. 녀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녀석은 성공한 래퍼 베토벤이다. 클래식 음악은 생전 듣지 않는 래퍼 베토벤. 그는 재수생 시절, 기숙학원에서 청력을 잃었다. 그는 토크쇼에 나가 자신의 일대기를 읊어 나간다. 슬쩍 보니, 녀석은 자기만의 망상에 빠져 꼴보기 싫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나는 녀석의 프로듀서다. 나에게 양심 따윈 없다. 나는 녀석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무려 한 시간 반이나 녀석의 통증을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 막중한 임무를 위해 내 양심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의 자존감을 살리는 길만이 그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베토벤이야”
“네?”
“청력을 잃은 음악가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베토벤이라고”
‘아, 불손한 나의 양심이여. 눈치도 없이 결국, 진실을 입에 담는구나.’
나는 아차 싶어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선생님, 그건 저도 알죠. 선생님이 알고계신지 테스트해 본 겁니다.”
녀석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진다.
거짓말이다.
녀석이 성공한 래퍼라는 망상에서 빠져나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선생님 아무래도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잔뜩 미소를 머금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귀를 부여잡았다. 처음 보는 녀석의 찡그린 얼굴이었다.
“귀가 아픕니다.”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 뒤늦게 시작됐다. 학원에서는 벌써 멀리 벗어났고, 진통제는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서두르느라 학원에서 약을 챙기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녀석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번뜩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차량 오디오를 틀고 볼륨을 높였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 하지 않았던가. 녀석은 랩을 좋아한다. 잘 됐다. 그동안 녀석의 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을 반성했다. 랩은 녀석에게 나이팅게일이 되어줄 것이다.
“드랍 더 비이트!”
나는 괜히 신난 척 소리를 지르며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틀었다. 자이언티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그 음악. 도입부에 맑은 벨이 울리고 바이올린의 선율이 심장을 후벼 파는 곡. 자이언티가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양화대교 위에서 깨닫게 된다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이제 이 부드러운 멜로디가 래퍼 자이언턱 아니, 래퍼 베토벤의 고통을 줄여줄 것이다. 나의 페르소나는 이제 라디오 채널의 DJ다. 한껏 기대에 부푼 나는 다음 곡은 뭘 틀지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악! 선생님!” 녀석은 음악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고통을 호소했다. “띵띵 소리 때문에 고막이 아픕니다. 거슬려요. 빨리 꺼주세요.”
‘개! 똥 같은 랩 같으니라고!’
랩이 나이팅게일이니 뭐니가 되어준다는 말 다 취소다.
울상이 된 녀석이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레코드판을 힘없이 내려놓는다.
그리곤 대시보드로 눈길을 돌렸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응급실까진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
과연 이 둘은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