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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May 03.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8

08. 고통을 견디는 법 1 – 치통과 초코바



 차 안은 어두 컴컴한 고속도로만큼이나 고요했다.     


 음악마저 사라진 공간에는 고속으로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침을 삼키면 꿀꺽하고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아무것도 못 하고 운전만 하고 있다. 내 옆에는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어린 래퍼가 간헐적으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매번 밝은 모습만 봐오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부모들이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머리를 쥐어 짜냈다. 녀석의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었다. 녀석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그 걱정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앞으로 1시간이나 통증을 견뎌야 한다니 아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어린 시절 치과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나에게 치과는 지옥 그 이상의 고통스러운 공간이었다. 축농증이 심해 코로 숨 쉬는 것이 불가능했을 시절이었다. 아무리 코를 풀고 치료에 들어가도 나의 코는 마치 무너진 동굴처럼 그 어떤 산소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상 코를 막고 치료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란 인간이 산소 공급 없이 10분 이상 호흡을 참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는 평범한 보통의 인간이었다. 나에겐 호흡이 필요했다. 산소가 필요했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입으로 숨을 쉬면서 치과 치료를 받는 가엾은 영혼을. 그 영혼은 ‘켁켁’대기에 바빴다.     


 치아를 닦는 물은 쉴새 없이 입으로 쏟아졌다. 작디 작은 석션으로는 입으로 숨 쉬는 나의 목구멍을 제대로 막을 길이 없다. 석션이 놓친 물줄기가 간간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고 나는 ‘컥컥’거리며 기침을 내뱉는다. 그때마다 ‘위잉위잉’ 전기톱 소리를 내는 치과 도구가 나의 혀를 찔러댄다. 나는 물고문과 미세톱 고문을 동시에 받는 불운한 죄수가 된다. 아무리 침착한 의사라도 “어허! 이러면 안돼!”라고 나를 꾸짖는다. 내가 30m이상 잠수하는 프리다이버도 아니고 꾸짖는다고 숨을 10분 이상 참을 수는 없다. 그런 내 모습을 어머니가 부끄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는 이 물과 미세 톱의 고문을 이겨낼 대책이 필요했다.     


 고통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기억을 끄집어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었다. 한때는 내가 독립군이 되어 고문을 받고 있다고 상상했다. 의사와 치위생사가 나에게 동료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호통쳐도 나는 ‘윽윽’ 숨을 참아가며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통을 고통으로 인식한 순간 혀가 마음대로 (정말 마음대로) 석션기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해방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10분의 고문도 버텨내지 못하고 동료들을 팔아넘겼을 놈이다.


“선생님 대학은 어떤 곳입니까?”

치과 이야기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아이가 물었다.    

 

“대학?”     


“네, 선생님 대학 이야기를 해주시면 통증이 싹 사라질 것 같습니다.”

녀석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보탰다.

“뭐 썸 같은 거 있지 않습니까. 첫사랑 같은 달달한 이야기”     


“대학이라...”

나는 조용하고 재미없는 인간이었다. 나에게 대학 생활을 물어본다면 도서관 지하에 있는 고문서들의 향기가 어떤지나 알려 줄까, 나의 일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다. 내가 뜸을 들인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이 재촉했다.     


“에이, 선생님 그러지 말고 해주세요. 첫사랑 이야기”

녀석이 능청스럽게 운전하고 있는 나의 옆구리를 ‘툭’하고 쳤다.

‘이시키 아픈 거 맞아?’ 나는 고개를 ‘휙’하고 돌려 녀석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녀석은 나에게 느끼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녀석의 밝게 웃는 얼굴과는 반대로 항상 우울해 보이는 여자 후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과에 미련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과 활동에 소극적이었다. 군에 다녀온 나는 친한 선배에게 떠밀려 친교부 차장을 맡게 되었다. 

 체육 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때, 친교부 부장을 맡은 선배가 나를 불렀다. 선배는 그 외톨이 후배가 과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 좀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됐다. 이후 여자 후배는 나만의 아지트였던 도서관 지하 2층에 자주 찾아왔다. 그녀는 지하 2층에 올 때마다 손에 초코바를 들고 있었다.     


 남이 먹던 음식을 먹는 것이 꺼림칙 했지만, 그녀가 내 입에 이빨 자국이 선명한 반쪽짜리 초코바를 들이밀고 째려봤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초코바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후배지만 조금 무서운 후배였다. 생각해보니 겨우 한 살 차이긴 하다. 그래도 무서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녀석이 입술에 닿을 때까지 (먹던)초코바를 찔러 넣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깨문 것이다.     

혼자 밥 먹는 생활이 편했던 일상이 그녀를 기다리게 되면서 우리는 가까워졌다.     


 그녀와는 대학 근처에 있는 감리교회 뒷벽에 기댄 채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대학생들도 커피숍에는 가는데, 후배와 나는 꼭 그 회색 벽에 기대앉아 대화를 나눴다. 손에는 캔커피를 들고. 

 우리는 뜨거운 캔커피가 차가워질 때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 추운 날에 그녀가 갑자기 거리를 좁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그녀는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숨결을 애써 모른 척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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