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대리석이나 그리스 고전 조각, 도자기 등 옛날의 유물들을 클린 뷰티의 상징인 비누로 제작하시는 신미경 작가님의 <신화장구지 新花長舊枝> 개인전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제2회 하인두예술상의 수상하신 신미경 작가님의 수상기념전으로 오는 7월 13일까지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전시회 리뷰를 쓰기에 앞서 하인두예술상에 대해 적어보자면, 독자적이고 선구적인 화풍으로 추상미술을 선도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하인두 작가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자, 아트조선에서 2022년에 처음 제정되었습니다. 제1회 하인두예술상의 수상자는 '평면조각' 작업의 독자성을 인정받은 김현식 작가님이시고 제2회는 신미경 작가님이 수상했습니다.
신미경 작가님 개인전을 연 아트조선스페이스 전시전경.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아트조선스페이스에 들어서면, 작품을 보기 전부터 이미 코 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비누의 향을 느낄 수 있어요. 그 향을 따라가면 비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옵니다. 이번 전시는 <Ghost Series>, <Toilet Project>, <Weathering Project>, <Large Painting Series> 등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다양한 비누 작업 40여 점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들이 골동품과 같은 유사한 형태 때문인지 마치 유럽에 있는 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유명한 컬렉션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브론즈, 유화, 돌, 유리 그리고 세라믹처럼 전통적인 재료도 아닌 비누로 이렇게 정교한 작업을 했다는 게 그저 신기했습니다. 눈과 코를 쓰면서 관람한 거는 이번 전시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작가님은 유물이 가지는 값어치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물을 만들었던 제작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봤었죠. '그 당시에는 동 시대성으로 만들 것이었을 텐데 지금은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라는 측면에서 비누라는 소재는 실용성이 있는데 미술로 들어왔을 때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비누의 성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유물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되어가는 과정'라고 볼 수 있습니다.
<TPBD>, Bronze, 2023,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전시회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작품은 <Painting Series, 2020>입니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누의 소재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러데이션이었습니다. 작가님의 의도는 사실 간파하기 힘들었지만, 저에게는 색이 잘 어우러진 게 숲 속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얀 부분은 숲 속에 있는 호수처럼 보였죠. 초록색 진한 부분은 험준한 숲 같았고, 연한 부분은 거닐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호수가에서는 산들바람을 맞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사실 어려울 때는 험준한 숲 속을 헤매는 거 같지만, 지나고 나면 호숫가에서 물도 마시고 쉴 수도 있죠. 그래서 인생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는 저로서는 작품 속 초록색이 희망찬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Painting Series, 2014> 작품은 코발트블루색의 작품입니다. 마치 바다를 연상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무한한 자유와 즐거움, 그리고 진한 부분에서는 강인한 생명력도 느껴졌지만, 블루의 또 다른 뜻에 '우울'이 있듯이 외로움이라는 상반된 느낌도 받아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입니다.
Painting Series, 140cm X 92cm X 10cm, Soap, Frame, Colourance, Fragrance and Vanish, 2020. 출처, ACS.
Painting Series, 113cm X 151.5cm X 6cm, Frame, Soap and Fragrance, 2014.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Painting Series를 보고 난 후에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생긴 <Romantic Sculpture Series>, <Toilet Project> 그리고 <Weathering Project>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있지만, 이 세 가지 작품들 덕분에 유럽에서 열리는 유명한 컬렉션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 같았습니다. 서양화, 조각 소장품에 영향을 받아 제작한 작품들이고 실제로 보면 비누로 정말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제 대리석 조각들과 유사해 보이지만, 비누라는 재료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서 다른 재료들보다 더 부드럽고 매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Weathering Project>, Soap, 2013.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Weathering Project>는 건축물의 외부, 혹은 공원 등의 공공장소에 비누 조각을 일정기간 설치해 말 그대로 비누를 '풍화' 시키는 작업입니다. 비, 바람, 온도 등 외부의 자연적인 현상들에 의해 형성되는 형태의 변형을 일으킨 비누 조각상은 풍화된 시간을 응축해 보여줍니다. 이와 더불어 화장실 프로젝트는 외부에서 다변적인 시간의 흔적을 물질에 남긴 비누 조각상은 균열이 생기고, 형태의 디테일들이 녹아내려 초기의 형태와는 상당한 차이를 결과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Toilet Project>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어도 있고, 실제 화장실에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으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참여형 전시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여러 시리즈와 프로젝트 작업 중에서 실용성에 부각하여 아마 유일하게 전통적인 비누의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고, 실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 비누 조각상이 다른 작품들과 묘하게 잘 어울리며 유머를 발휘합니다.
<Toilet Project>2023, 화장실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게끔 관객참여형 으로 유도하였다.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다 보면, 가운데에는 운송에 쓰이는 나무 상자 위에 동양적인 유리 공예품 느낌을 주는 도자기 형태의 작품과 꽃병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 또한 비누로 작품이 만들어졌고, 바니시로 마무리 작업이 되어있습니다. 2008년과 2010년에 제작된 <Ghost Series> 작품들입니다. 도자기 혹은 꽃병의 속을 파내는 작업을 통해 비누의 투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며, 이로 인해 비누가 지니는 물질의 연약함이 극대화됩니다. 투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작품들 이름이 Ghost가 아닌가 싶었어요.
여러 가지 영롱한 작품들을 다른 전시회에서도 봐왔지만, 비누에서 나오는 영롱함은 확실히 차별성이 있고 <Painting Series>와는 달리 실제 사물기반의 작품이라고 보입니다. 나무로 된 화물상자 좌대는 그간의 숱한 여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라벨이 그대로 부착된 디테일이 인상 깊었습니다. Ghost라는 제목도 어울리기는 하지만 유리라는 제목을 붙여도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Ghost Series>, Soap, Vanish, Colourance and Fragrance. 2008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Ghost Series>, Soap, Vanish, Colourance and Fragrance. 2008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
신미경 작가님은 전통적인 예술의 재료를 쓰기보다는 일상적이고 가변 하는 비누를 작가님의 예술세계로 끌어들여 전문적이고 차별성 있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로 여겨지는 것들을 작가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동시대성을 불어넣고 비누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작가님의 바이브를 한번 제대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Large Painting Series, 201cm X 160cm X 5cm, Frame, Soap, Fragrance and Colurance 2023. 출처, 아트조선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