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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덩이 Mar 30. 2023

여기에 오기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정리해 보는 시간

저는 언제나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운에 만족할 줄 알았습니다.


사랑해 주는 부모님과 엇나가지 않는 귀여운 동생, 부자는 아니지만 필요한 건 비싸지 않다면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집안, 평균인 키와 외모, 그리고 노력한 만큼 가끔 찾아오는 기회. 이 모든 것에 '운이 좋았다'가 아니면 어떤 말을 붙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만큼 감사하며 살아왔던 29년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운만 좋았다고 말하기에는 억울한 것이, 정말 한 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내 집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거나 손수 돌봐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기에 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맞습니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시간을 날리거나 방탕하게 술 마시며 인생의 어려움을 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 나섰습니다.


그 과정에 실패도 있었습니다. 맞지 않은 친구를 사귀어 외로웠던 적도 있었고 스스로 오만에 빠져 실수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계획 없이 들어간 직장에 환멸을 느낀 적도 있었고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없는 점만을 찾아 비관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모두와 비슷하게 탈락의 고비도 수도 없이 마셨고 경쟁에 뒤쳐지는 경험은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특히나 소심하고 그릇이 작아 걱정도 많고 불안도 가득하며, 무엇보다 사람이 고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연인에게 매달려도 보고 상사에게 혼나기도 하면서 저 또한 아린 청춘을 겪어나갔습니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며 그래도 조금 무뎌졌습니다. 사실 모든 것에 새로워하며 흥미를 느끼고 눈을 반짝이던 것이 저의 가장 큰 장점이었기에 무뎌지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여행지에 가고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도 예전처럼 심장이 뛰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장점을 잃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을 대할 줄 알고 호불호가 생겼으며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을 성장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저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때로는 미워하고 시기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있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쁜 순간도 힘든 순간도 결국에 돌아보면 감사함밖에 남지 않습니다. 기억이 미화돼서 그런 걸까요.


제 스스로에 대해 정리해 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요새 들어 계속 뒤를 돌아보게 돼서 이 기회를 틈타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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