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덩이 Apr 26. 2023

발은 땅에 붙이되, 고개는 하늘을 향하게

현실과 꿈 사이

발은 땅에 붙이되, 고개는 하늘을 향하게.


예전에 나에게 조언을 자주 해주던 동기 오빠가 카페에서 던진 말이다. 내가 왜 전전 남자친구에게 차였는지 얘기해 주다가 나온 말인 것으로 기억한다. 둘 다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렇게 진지하게 해 준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툭 던진 말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뇌리에 박혀있다.


그 둘의 발란스를 저울질하는 것은 사실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일다. 꿈이라는 것은 본디 땅과 하늘 사이, 굳이 말하자면 하늘 가까이에 있어 발을 땅에 꾹 붙이고는 잡기가 어렵다. 적어도 까치발, 더 나아가서는 점프라도 해야 잡을랑 말랑 한 것이 그 꿈이라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두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현실적인 꿈만을 좇을 것인지, 하늘 저 멀리 있는 꿈을 위해 하나 둘 발을 떼어볼 것인지. 기회는 한 번뿐, 그리고 그 기회비용은 막대하기에 선택은 항상 무겁다.


얼마 전에 동생들하고 영상통화를 했다. 그중에 꿈을 좇다가 현실로 돌아온 친구가 있다. 한 없이 꿈만을 따라가다가는 현생에서의 삶이 어려울 수 있다고 얘기해 주더라. 너무나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언제쯤 어떻게 꿈과 현실의 중간점을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타협을 할 수 있는 걸까? 기회는 복불복이고 후회는 고통스럽다.


나는 작년에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대학원을 왔다. 사실 이 친구가 말한 현실을 뜨기로 나는 결정한 거다. 땅에 발을 붙이려 했다면 나는 은행을 계속 다녔을 거다. 눈 한 번만 꼭 감고 현실에 안주하기로 마음먹으면 사실 빠른 시일 내 집도 생기고, 결혼도 하고 명품 가방도 샀을 거다. 요새 선배들,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는데 나도 그중 한 명으로 지금쯤 청첩장을 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들이 내가 포기한 기회비용이다. 지금의 나는 돈도 없고, 애인도 없고, 안정적인 미래도 없다. 그래서 불안하긴 하다. 


그렇다면 왜 내가 대학원을 왔을까? 그것 또한 기회비용 때문이다. 내가 포기한 미래보다 나중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도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후회가 더 클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돈이 없고 싱글로 살더라도 아, 그때 내가 머리가 더 잘 굴러가고 체력이 있고 모아둔 돈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해볼 걸 하는 후회는 매해가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것이 곧 자괴감과 열등감이 되고 말이다. 남들처럼 풍족한 인생, 그러나 어쩌면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나는 땅에서 발을 뗐다.


물론 꿈이라고 해서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 나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 이런 마음으로 임한 것은 추호도 아니다. 그저 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세계는 이렇게 넓고 똑똑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학계에 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연구를 하면서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과연 어디까지 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카루스처럼 한계를 모르고 날다가 날개가 닳아 땅에 곤두박질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카루스가 날개를 달아 뛰어보지 않았다면 과연 평생을 행복했을까? 모를 일이다.


이것은 현실을 떠나 꿈을 따르기로 한 사람의 구차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내년에, 또는 내후년에 같은 생각을 할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다만 나는 지금 미래의 내가 궁금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을지 궁금하다. 일할 때는 궁금하지 않았던 미래의 나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을 하며 버티는 게 아니라 지금 나는 무언가를 내 선택으로 인하여 주체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29살, 20대 마지막 1년을 보내는 지금 웃음을 되찾았고 오랜만에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느낀다. 비록 가난하고 미래는 불안정하지만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리고 혹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한 번 발을 떼보길 권유한다. 가능성은 무한하고 인생은 영원하지 않기에, 시도라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늘로 뻗은 손안에 무엇이 잡힐지 모르지만 그 하나의 도전이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꿈이 없다면 현실에 붙어있는 게 현명하지만, 혹시나 그대 꿈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현재 인생에서 가장 빠른 순간이기에 용기를 내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캠브리지와 호그와트의 공통점, 그리핀도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