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또를 사본 적이 없다. 어떤 복권도 긁어 본 적이 없다. 일확천금에는 별 관심이 없다. 로또에 돈을 쓰는 어른들을 보며 자랐다. 로또 한 장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든 많은 돈을 퍼붓든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나도 해볼까?' 하는 호기심은커녕 '대체 왜 살까?' 의문만 키워 왔다. 안 될 걸 뻔히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 그 '혹시'에 거는 기대 때문에?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각자의 몫이니 비난할 뜻은 없다. 이 글은 행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복권과 유사한 걸 해본 경험은 게임에서 가챠(확률성 아이템 뽑기)를 돌려본 게 전부다. 그것도 게임 머니로만 구입했다. 게임에는 돈을 잘 안 쓰는 편이어서 도박성 아이템에는 손댈 일이 없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게임에서도 한 번도 현금을 써본 적이 없다. 갖고 싶은 아이템이 있어도 얻으면 좋고 못 얻으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내 돈 주고 못 살 것에는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한 아이템을 얻고자 단 몇 퍼센트의 확률에 도전하며 몇십만 원씩 결제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항상 새로운 신상품이 쏟아지는 게임 안에서 그 애정도 금방 시들어버릴 텐데. 그렇게 얻은 아이템에 정말 기뻐할까? 그것도 의문이었다.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까.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초록 창의 어린이 전용 포털에서 빼빼로 데이에 친구와 관련된 사연을 보내면 추첨으로 빼빼로 상자를 보내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나는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같은 반이 된 친한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 짧게 글을 적어 보냈다. 특별히 기대는 안 했던 것 같은데 얼마 후 교실로 빼빼로 한 상자가 도착했다. 반 친구들 모두에게 한 개씩 나눠주기에는 개수가 모자라서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집에 가져가기를 권하셨고, 나는 커다란 빼빼로 상자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일까. 나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믿어 왔던 것 같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행운이 계속 따랐다. 라쿤이 그려진 라면에 다시마가 두 장이 들어 있는 행운은 없었지만, 처음 보낸 라디오 사연이 당첨되어 DJ가 읽어준다든지, 윷놀이를 할 때 내가 던지는 것마다 윷이나 모가 나온다든지, 지금까지 본 실물 면접에서 모두 합격했다든지, 필요한 물건이나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을 선물받는다든지, 내 글이 계속 브런치스토리 메인에 오른다든지... 나는 운이 좋았다. 그리고 그 일들은 모두 일어나서 기쁜 일이었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불행해질 일도 아니었다.
나는 운이 좋다고 믿지만 운에 나를 맡기거나 나의 운을 시험하고 싶지는 않다. 로또에 당첨되면 기쁘기보다는 무서울 것 같다.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니까. 로또는 내가 입력하고 실행한 값, 상상 밖의 범위에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괜한 마음을 쓰고 싶지도 않다. 살다 보면 내게도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운이다.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니 내 복도 아니다. 그런 복이 굴러 들어오거든 좋은 곳에 쓸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로또 번호를 불러주는 꿈을 꿔서 당첨된 것이라면 분명 그러라고 주신 복일 테니 말이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 그때 가서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이 글로 약속하자. 로또에 당첨되거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로.
사리사욕은 내 돈으로 채우면 된다. 내 능력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야말로 욕심이다. 아직은 젊고 건강해서 돈이야 언제든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늙어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검소하게 생활하고 성실히 자산을 모으는 쪽이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길 빌거나 재산을 어떻게 불릴까 궁리하는 쪽은 아닐 거다. 난 그냥 이렇게 큰 욕심 없이 살고 싶다. 찾아올지 모르는 행운에 기대하기보다 내가 누리고 있는 행운들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미 기적 같은 행운이니.
없이 살기 94. 로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