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HYE JI May 30. 2023

8. 고착화된 인식에 대한 생각

 노력하면 변할 수 있을까?

고착화된 인식은 어느 나라든 존재한다. 그것은 오늘날 각 국가마다 국민성 및 문화 등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우리는 익숙하고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외국인들이 문화충격에 휩싸일 만큼 고착화된 인식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지내면서 이곳의 문화 그리고 종족 등에 따른 고착화된 인식과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한 적이 자주 있었다. 오늘은 겪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1. 한국은 보통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특별구역 청소를 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반별로 정해서 돌아가며 청소를 했다(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깨끗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참여함으로써 깨끗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다. 청소는 행위로써 하나의 활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인의식과 연결 짓게 되는 교육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마라', '침 뱉지 마라',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라' 등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삼가고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받았다.

2013. 3월, 점심시간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1-1. 반면 에티오피아는 교실이든, 버스든 장소를 불문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이것에 대한 교육이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내가 만난 사람들은 교육을 하더라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는 오후 6시쯤 시내에 갔는데 가게들이 문을 닫기 전 쓰레기통을 문 앞에 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게 앞이 더러워지는 것은 나와 상관없다는 듯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쓰레기들이 주변 환경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이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반응해야 하는가?

1-2. 학생들의 답변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에 우리는 버려도 된다'였다. 학교 안에는 두 명의 환경미화원이 계셨는데 학생들은 우리가 있어 환경미화원들이 일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상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의 말문을 막았다. 이들을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1-3. 고민 끝에 교장선생님은 청소용품을 구입하셨다. 구입의 목적은 우리가 함께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도 학생들도 함께 참여하며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근처 지역주민들이 사는 큰길까지 청소를 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의 인식이 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 중 한 명이라도 인식이 변화된다면 정말 큰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2013. 7월, Dilla 창고 

2. 2014년 NGO에서 근무할 때였다. 우리 부서 직원들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에티오피아는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이 아주 충만했다. 나는 시도해보지 않고 자신의 나라를 하대 평가하는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와 사회 속에서 굳어져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들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 것이라 이해하고 싶었다. 우리네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산 부모세대에서 ‘우리나라는 틀렸어’, ‘우리나라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등 저런 말들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듣고 자랐을까?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일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이야기가 일하면서 부딪히는 사건이 있었다.

2-1. 나는 NGO에서 어린이결연 말고도 몇 가지 사업을 진행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중증질병 사업이었다. 당장에 수술이 필요한 사람을 발굴하여 필요한 검사비와 수술비 전액을 지급해 주는 참 좋은 사업이다. 나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환자를 발굴하여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의사는 수술할 수 있는 피, 간 수치 등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한 주간 약을 복용해 수술할 수 있는 수치가 되면 수술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때가 마침 12월이었다. 12월은 한해 재정을 결산하는 달인데 수술이 연기되면서 결산도 늦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본부에 연락하여 방법을 여쭈었고 의사 소견서를 받아서 공문 제출해야 1월에 수술비 지급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2-2. 나는 우리 부서 직원에서 환자의 수술비 지급을 위해 병원에 가서 의사소견서를 받아와 달라고 업무지시를 했다. 그러나 그 직원의 대답은 나를 정말 화나게 했다. ‘우리나라는 요청한다고 해서 바로 받지 못해, 절대 안 될걸?'이라며 지난번과 비슷한 대답을 하는 직원에게 참지 못하고 한소리를 했다. ‘해보지 않고 에티오피아가 왜 계속 안된다고 생각해? 정말 되는지 안되는지 한번 해보자. 내가 받아올게’라고 말하며 직접 병원을 방문했다. 물론 에티오피아가 한국처럼 빠르지 않다. 시스템과 상황에 쉽지는 않지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란 듯이 된다는 것을 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침 7시에 병원을 가서 오후 3시에 의사 소견서를 받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2-3. 의사 소견서를 보여주니 다들 깜짝 놀라며 어떻게 받았냐고 물어본다. 에티오피아가 안 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의 인식이 너희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그 후로도 끊임없이 에티오피아는 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안 해서 그렇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라서 그렇지, 에티오피아는 하면 되는 나라이며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2013. 1월, 유치원 수업 중

고착화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노력에 따른 결과는 변화되지 않을 수 있도 있고, 어쩌면 변화되지 않았지만 변화된 척할 수도 있고, 진짜 변화된 것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 인식이 고착화되기 전 받는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까? 

당연히 모두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중 한 사람이라도 바뀐다면 그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낳고, 그다음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은 해볼 법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7. 내가 살던 에티오피아 딜라(Dilla, ዲላ)지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