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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쁜파크 Sep 25. 2023

미국과 한국, 귀성의 마음은 통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리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닉 캐러웨이'는 고향을 찾던 생생한 풍경을 떠올리며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을 것이다. 중서부 도시의 제법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20대의 닉은 중서부를 초라하게 느끼게 되고, 꿈과 낭만이 가득할 것 같은 동부로 이주하여 증권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주 눌러앉을 생각으로 동부를 찾았지만, 서른 번째 생일을 갓 지나 30대가 되었을 때, 개츠비의 죽음을 통하여 동부의 그로테스크함을 겪고 고향으로 되돌아갈 결심을 했다. 


내 가장 생생한 추억들 중 하나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학 예비학교 시절에도, 그리고 나중에 대학에 간 후에도, 서부로 돌아가던 장면이다. 시카고보다 더 멀리 가던 친구들은 어느 12월 저녁 여섯 시, 낡고 침침한 유니언역에 모여 휴가 분위기에 들떠 있는 시카고 친구들과 서둘러 작별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이런저런 기숙학교들에서 돌아오는 소녀들의 털코트와 찬 공기에 더운 김을 내뿜던 재잘거림과 옛 친구들의 얼굴을 발견하고서 머리 위로 손을 흔들던 모습도 떠오른다. (중략) 장갑 낀 손마다 꼭 쥐고 있던 길쭉한 초록색 기차표도 기억난다.
   
(중략) 저녁을 먹고 객차의 냉랭한 연결 통로를 따라 걸어 돌아오면서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이 지역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고, 그렇게 기묘한 한 시간 남짓이 흐른 뒤에는 그 공기 속으로 다시금 완전히 스며들었다.

거기가 바로 나의 중서부다. (중략) 나는 그것의 일부다.
  
 One of my most vivid memories is of coming back West from prep school and later from college at Christmas time. Those who went farther than Chicago would gather in the old dim Union Station at six o'clock of a December evening, with a few Chicago friends, already caught up into their own holiday gaieties, to bid them a hasty good-bye. I remember the fur coasts of the girls returning from Miss This-or-That's and the chatter of frozen breath and the hands waving overhead as we caught sight of old acquaintances, (...) and the long green tickets clasped tight in our gloved hands.

(...) We drew in deep breaths of it as we walked back from dinner through the cold vestibules, unutterably aware of our identity with this country for one strange hour, before we melted indistinguishably into it again.

That's my Middle West (...) I am part of that.

p.216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p.166 <That Great Gatsby> Penguin Modern Classics


미국이든 한국이든, 1920년대나 2020년대나 고향 가는 마음은 통하는 걸까? 들떠 있는 대합실에서 기차표를 손에 꽉 쥔 모습부터, 평소에는 잊고 생활하다가 나의 일부였던 고향으로 향하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이 장면에서 오래 머물렀다. 특히 목적지에 도착할 때 즘 열차 객실에서 나와 연결 통로에서 대기할 때, 틈새로 들어오는 바깥공기를 맡던 모습이 그려지면서 내리기 직전의 떨림이 일었다. 공기에서도 다른 냄새가 배어 있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한국의 추운 겨울, 동남아에 도착해 비행기 탑승교(boarding bridge)를 지날 때 덥고 습한 현지의 공기가 여행 온 나를 환영하는 것 같은 설렘을 준다.


출처; Pixabay


테헤란로에 있는 회사를 다니던 20대, 명절에 남쪽 끝 부모님 댁으로 간다고 하면, '아니 어떻게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산 넘어 학교 다녔죠? 그 지역으로 발령 나면 유배 가는 걸로 여겼는데.' 하는 식의 애정 어린 농담이 늘 따라왔다. 대신 명절 연휴 전날은 오전만 근무하고 고향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서, 최소 6시간은 걸리는 시골집까지 차 끊기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출발해 분주한 마음으로 터미널로 가다 보면 점점 많아지는 인파에 끼여 빨라지는 발걸음만큼 설렘도 커졌다.


전자티켓을 사용하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엔 예매한 티켓을 출력해야 했기에 긴 줄에서 기다리는 시간, 점심을 챙겨 먹는 시간을 고려하여 그만큼 더 서둘렀다. 귀성객으로 꽉 찬 대합실에서 버스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에 꼭 쥐고, 표에 적힌 시간과 대합실의 시계를 번갈아 보며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버스에 올라 좌석 번호를 확인 후 제자리에 앉으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파란 하늘과 고속도로가 펼쳐지는 곳을 달리기 시작하면, 집에 가는 것이 실감 난다. 버스들이 줄지어 휴게소에 도착하면 그 실감은 배가 되고, 버스가 들리는 큰 휴게소는 수백 대의 자동차로 꽉 차 있어서 이렇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나 놀랐다. 기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 버스의 출발 시간을 알려 주시며, 휴게 후 버스 타기 전에는 버스 번호와 도착지를 꼭 확인하라고 당부하신다. 같은 지역으로 가는 버스는 비슷하고, 시간대도 촘촘히 많아서 휴게소에서 버스를 잘못 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20분가량의 휴게 시간 동안 화장실만 다녀오고자 내리면 여자 화장실 줄은 화장실 밖으로도 쭈욱 이어져서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다 한 번은 놀랄만한 일이 생겼다. 긴 화장실 줄에 섰는데 중학생 때 알던 친구를 발견했다. 10년 만에 봤어도 그 모습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고,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니 친구 역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랜만이라는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다가 몇 시 차를 탔냐고 물으니, 오마이갓, 심지어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왔다.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버스 옆 자리 승객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니 자리를 바꿔 주셨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학생 때와는 다른 위치에 있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무며 이후 귀성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친구와 연락처를 주고받고 목적지에 내려 헤어진 후 다시 볼 순 없었지만 괜찮다. 그날의 반가움은 친구의 기억 속 작은 구석에도 숨겨져 있을 테니.


추분도 지나고 다시 다가오는 추석 귀성길. 40대의 귀성길은 가족 4명이 함께 한다. 사람도 많아졌고 갈 거리도 훨씬 길어졌다. 서울에서 남서쪽, 그리고 다시 남동쪽으로 삼각형을 그리며 명절을 보낸다. 남쪽에서도 동과 서로 극명하게 떨어진 양가를 다녀와서 서울로 올라오면 전국을 돌고 온 느낌이다. 어려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즐기던 아이들도 주변 친구들이 긴 연휴 동안 서로 약속을 잡는 상황이 되니 점점 생각이 달라진다. 추석 이동 스케줄을 말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엄마, 아빠는 왜 이리 먼 곳에서 태어냤냐, 한 명도 아니고 어찌 둘 다 지방 출신이냐, 왜 비슷한 지역끼리 만나지 않았냐'며 농담처럼 진심을 말하며 웃는다. 남편은 아이들의 그런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아빠 회사 사람들도 어떻게 먼 양가를 다녀올 수 있는지 놀랜다는 반응을 전한다. 그래, 우리 부부 세대에서도 먼 거리라 놀라는데, 너희 세대는 더하겠지.


지금까지 한 얘기도 결국은 서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 그리고 나는 모두 서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동부의 삶에 미묘하게 적응하지 못하게 된 어떤 공통된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I see now that this has been a story of the West, after all - Tom and Gatsy, Daisy and Jordan and I, were all Westerners, and perhaps we posessed some dificiency in common which made us subtly unadaptable to Eastern life.

p.217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p.167 <That Great Gatsby> Penguin Modern Classics


마치 중력에 이끌리 듯, 아래로, 아래로, 남쪽 끝까지 내려가는 명절 귀성길.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는 그 중력의 힘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지만 나의 일부였던 곳으로 돌아가면 반겨주시는 부모님이 계시고 크게 변하지 않은 풍경을 만나는 푸근함이 좋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도시를 동경했고 이젠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음에도, 산과 들 바다가 펼쳐진 경치, 도착해서 들이마시는 공기 냄새, 나를 알아보시고 여전히 이름을 불러 주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말투, 거기서 먹는 음식이 여전히 좋다. 어쩌면 나도 서울의 삶에 미묘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어떤 결함을 가진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남편도, 명절 휴게소에 있던 그 사람들도.


명절마다 서둘러 내려가던 나와 달리, 회사 옆자리 언니는 차가 없으니 서울이 한산하다며 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모습에 나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얘기를 남편에게 하니 자기도 그랬다며 웃었고, 우린 그렇게 귀성의 정서를 지닌 채 남쪽으로 내려간다. 물결을 거슬리는 배처럼 나의 일부였던 과거를 만나 다시 열심히 달릴 힘이 되어주는 곳으로. 나를 지나 딸들에게도 훗날 이 기억이 충분히 오래도록 빛나면 좋겠다.


이번에는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저희 왔어요~~~" 고향집에 들어갈 설레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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