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와 부모의 세대차이를 만드는 시대차이
어쩌다가 사춘기 자녀와 부모 사이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사랑으로 서로에게 최고의 것만 주어도 짧은 인생인데,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어긋나고 깨지는 요인 중 하나는 시대 차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대 차이는 부모님들이 살던 과거 시대와 자녀들이 사는 현대 시대의 차이를 뜻합니다. 인간의 뇌 발달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는 영유아기와 청소년기입니다. 부모와 자녀 각각이 보낸 유아기와 청소년기 시대 상황과 분위기는 매우 차이가 납니다. 이 차이가 세대차이를 만듭니다.
비교 시대를 살다
수도권이 발달하면서 주요 행정기관들과 기업들, 문화공간, 교육기관, 의료시설 등 인프라가 대도시에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1963년에 서울의 행정구역이 현재와 비슷한 크기로 확대된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각 수도권에 엄청난 인구 유입이 시작됩니다. 현재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출생연도를 1960~80년대로 추정할 때, 대표되는 출생연도를 1975년으로 하겠습니다. 현재 사춘기 자녀의 대표 출생연도는 2008년으로 하죠.
서울의 인구밀도는 1975년에 1만/1㎢, 2008년은 1.7만/㎢고, 2022년은 1.6만/㎢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모두 서울 혹은 수도권에서 자랐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물리적 공간이 부모세대보다 훨씬 적습니다. 분위기도 아주 다르지요.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골목 문화가 있었습니다. 아파트들이 들어서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주택가가 더 많았고 학교가 끝나면 동네 놀이터에 모여 친구들과 해 질 녘까지 놀던 추억이 있습니다. 2015년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인기가 높았던 것도 골목 문화의 추억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 중 선우 동생 진주가 1980년 초반생으로 그려졌습니다. 진주도 지금쯤 사춘기를 시작하는 자녀를 키우며 예전에 놀던 골목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예요.
반면 우리 아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조되는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깥 놀이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부모님들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상황은 아이들과 밖에서 같이 놀 친구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OECD 가입국들의 평균 주당 학습시간이 33시간이지만, 한국은 40~60시간입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놀 시간은 줄어듭니다. 하교 후에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입니다. 가구당 자녀 수가 줄어든 것도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지요.
1975년 인구 피라미드를 보면 어느 유명 초콜릿 회사를 대표하는 종 모양의 초콜릿 모양입니다. 위의 중간 꼭짓점에서 내려온 곡선이 아래쪽으로 넓어지면서 안정감 있는 달콤한 모양을 만듭니다. 그런데 2008년도는 납작한 다이아몬드 모양입니다. 75년에 유아였던 이들이 20, 30대로 성장하여 피라미드 중간은 인구가 많지만,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하단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놀 친구만 없는 게 아니라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끽끽 대며 웃을 형제자매도, 방학 때면 만나서 놀러 다닐 사촌들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던 부모세대에 비해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요즘, 안타깝게도 비교와 경쟁의식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교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비교는 필요합니다. 적당한 비교는 성장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비교하는 요건들이 중요합니다. 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성장을 확인하는 비교는 해야 합니다. 작년보다 키가 얼마나 컸는지,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는지,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반드시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지양해야 할 것은 나와 남과의 비교입니다. 특히 부모님들이 주의하셔야 합니다. 옆집 아이보다 내 아이 키가 얼마나 큰지, 성적은 얼마나 높은지,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불안이 엄습해옵니다. 불안은 꼭 1+1 상품으로 찾아옵니다. 아내의 불안이 남편에게, 남편의 불안이 아이에게, 마치 순식간에 번지는 불과 같이 집안 전체를 태워버립니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만든 ‘사회 비교’이론에서 말하길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사회 비교 이론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A라는 나라와 B라는 나라 중에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A에서는 7천만 원을, B에서는 7억 원을 연봉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당연히 B겠지요. 그런데 참가자들은 모두 A에서 살겠다고 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다음 조건 때문입니다. A 나라의 평균 연봉은 5천 6백만 원이고, B 나라의 평균 연봉은 14억 원이었습니다. 이 실험 참가자들처럼 사람들은 7억 원이 훨씬 큰 가치이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적게 받는 거라면 반갑지가 않습니다. 실제 가치는 7천만 원이 더 적지만, 주변 사람들보다 높은 연봉인 7천만 원을 선택하고 만족해합니다. 사람들에게 비교로 인한 불안이 적은 수입보다 더 무서운 법입니다.
비교로 인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요즘, SNS를 통한 상향비교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비교는 나보다 높은 사람과 비교하는 상향비교, 비슷한 사람과 비교하는 유사비교, 낮은 사람과 비교하는 하향비교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SNS에 좋은 모습, 자랑하고 싶은 순간들을 공유하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과 상향비교를 하게 됩니다. 상대적 박탈감, 시기심, 질투 같은 감정들을 느끼고 더 나아가 우울감, 불안증, 강박 등의 정신질환도 심해집니다.
경쟁 시대를 살다
물리적 공간이 좁다 보니 옆에 있는 남이 더 잘 보이게 됩니다. SNS와 스마트폰은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줍니다. 비교의 늪에 빠지면 경쟁이라는 수분을 가득 머금은 진흙이 몸을 끌어 내리며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치열한 학업 경쟁은 물론이고 키와 외모, 부모님의 재력과 아파트 평수, 타고 다니는 차와 해외여행 경험 등까지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경쟁요소가 됩니다.
무엇이든 적당하면 괜찮은데, 과하거나 부족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경쟁도 적당히 하면 사람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심이 없으면 배우는 과정을 지속하기가 어렵고 중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경쟁이 과열되면 배우는 과정은 무시하고 이기는 결과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과열된 심한 경쟁으로 배우는 기쁨과 협력하는 즐거움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친구와 동료 개념이 경쟁자의 개념으로 바뀐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성장기에 경쟁을 심하게 하다 보면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에 멍이 듭니다. 피부에 든 멍은 눈에 쉽게 띄어서 조심만 하면 점점 옅어집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멍은 스트레스를 계속 받을수록 점점 더 짙어집니다. 장기간 노출된 경쟁은 원래 마음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색하고 착색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비교와 경쟁을 스스로 부추기고 악순환의 쳇바퀴를 돌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게 아프고 힘든 것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요. 이것이 비교와 경쟁이 가져온 스트레스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본래 스트레스는 물리학에서 어떤 물질에 가해지는 힘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스트레스는 정신적으로 가해지는 힘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힘의 크기보다는 노출된 시간이 스트레스 지수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드는 것과 10권을 드는 것을 비교하면 당연히 10권을 드는 것이 힘듭니다. 그렇다면 책 10권을 1분 드는 것과 한 권을 10시간 들고 있는 것은 어떨까요? 후자가 훨씬 힘들 겁니다. 스트레스는 받았을 때 적절하게 해소해주어야 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특히 우리 아이들은 해소하지 못한 스트레스에 장기적으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정신 질병이 증가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입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때 스트레스 인지율이 잠시 감소하다가 2021년에 전년 대비 12.8%나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정신질환과 행동 장애가 지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단순 육아법의 창시자 킴 존 페인은 그의 저서[맘이 편해졌습니다]에서 청소년기를 ‘마음의 고열’이 나는 시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마음에 열이 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는 직격탄이 됩니다. 열감기로 아파하는 중에 아주 무거운 물건과도 같은 스트레스를 들고 있는 것은 더 힘드니까요.
그런데 아이도 부모도 시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비교와 경쟁의 강을 떠다니기만 합니다. 어서 강에서 뭍으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다들 강에 들어가 있으니 뭍으로 나가는 방법도, 나가는 길도, 심지어 뭍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합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집중하고 깊이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강에서 헤엄을 더 빨리 잘 치기 위해 수영을 연습하고, 배 같은 동력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해 스펙쌓기라고 하지요. 그래서 참 바쁩니다. 자녀도 바쁘고 부모는 더 바쁩니다. 대화할 시간은 고사하고 휴식할 시간,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여유시간이 없습니다. 모두 지쳐서 번아웃 증상과 무기력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왜 이렇게 힘든지 실상을 보면 좋겠습니다. 강에서 나오십시오. 처음에는 젖은 옷도 불편하고 장기간 물속에 있어 몸도 무겁게 느껴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될 것입니다. 자녀에게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멍을 상처로 물려주지 않고, 부모와 자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세대가 함께 살다
전보다 풍족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부모세대보다 많은 것을 누리는 요즘 아이들은 힘들어합니다. 뭐가 힘드냐고 ‘라떼’와 비교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 같이 없고 힘들던 때에 공동체 의식으로 서로에게 위안받으며 살았던 부모들과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다 함께 누리게 된 풍요를 공유할 누군가가 없어 외로워합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SNS에 친구는 가득하나 마음을 터놓을 진짜 친구는 별로 없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치명적인 상황입니다. 전 세계가 펜데믹으로 온라인 수업을 들은 지난 3년 동안 아이들은 더 외로워졌습니다. 코로나 블루와 함께 사회 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외로움과 함께 요즘 아이들이 힘든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예전보다 너무 많이 주어진 선택의 자유입니다. 선택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언뜻 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메뉴가 50개 정도 되는 식당에 가보신 적 있나요? 선택사항이 너무 많으면 결정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이와 같습니다. 자유롭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들이 아이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아이들에게 선택 자체가 스트레스가 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선택들이 많아져 불안이 가중됩니다. 선택한 후에도 다른 것을 선택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끊임없이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후회하고 감정을 추스르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선택한 일을 집중하여 처리할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적어집니다.
결국,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아이는 실패감을 경험하고 다음번에 선택하는 것을 더 힘들어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경계를 설정해서 선택사항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자율성이 걱정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설정해준 경계 안에서 선택의 자유를 주시면 선택사항이 많았을 때보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AI 출현으로 현존하는 직업이 미래에 상당수 사라질 전망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직업을 가지고 일할 때는 그 현상이 더 두드러지겠지요. 대한민국에서 사는 이상, 아니 지구에서 사는 이상 시대와 동떨어져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며 살 필요도 없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사람이 고유하게 할 수 있는 직업들만 남을 것입니다.
아이 자신만의 변하지 않을 가치를 세우고 삶을 만족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려면 부모님들이 먼저 삶의 중요한 가치를 세워야 합니다. 부모님의 청소년기에 삶의 가치를 세웠으면 좋았지만, 만약 그때를 놓쳤다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하면 됩니다. 눈과 귀를 가린 불안이라는 나무를 베어 버리는 것이 가치를 바로 세우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아이들이 보고 배운 대로 스스로 개척하며 잘 클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배운 방식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쉽게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새로운 시대를 배워가는 자세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를 함께 배우면 좋겠습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견디고 버티는 태도, 손해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는 태도, 성공이나 성취가 조금 늦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태도, 나 자신을 믿고 편안하게 사는 태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태도들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비교와 경쟁을 적절하게 이용하십시오. 시대의 이점을 이용하고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