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주나 궁합을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릴 때면 나는 샤머니즘의 힘을 빌리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끔 의지하고 애정하던 샤머니즘으로부터 멀어진 계기는 다음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2011년, 지금의 남편과 갓 연애를 시작하고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그때. 각자의 단점마저도 사랑스러웠던 우린 ‘하늘이 맺어준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갈대처럼 흔들리던 20대의 나는 남자친구와의 궁합을 알아보기 위해 홀로 사주 카페를 찾았다. 아마 그때의 나는 내 확신을 확신하기 위해 이 사람과 내가 천생연분임을 제3의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남자친구는 1983년 돼지띠, 나는 1989년 뱀띠.
사주를 봐주시던 분은 남자친구와 나의 간단한 신상명세를 듣고는 짧게 연애만 하라고 단언했다. 띠 궁합으로 볼 때 우리는 ‘상극 중 상극’이라며. 원하던 답을 듣지 못한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안을 감도는 씁쓸함을 삼키곤, “궁합은 그냥 재미로 보는 거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사주 카페에 발길을 뚝 끊었다. “흥, 어디 한번 두고 보라지.” 그렇게 나는 우리가 상극이라는 운명에 맞섰다. 그러나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완전 정반대로 갈리는 취향 차이를 확인할 때마다 “우와! 역시 상극인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곤 하였다.
돼지띠와 뱀띠인 우리가 얼마나 다르냐면, 공통점이라고는 술을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이라는 것뿐. 가장 흔한 음식 취향부터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다르다. 데이트 중 “오늘 뭐 먹을래?” 하며 두 가지 메뉴를 제시하면 항상 서로 다른 메뉴를 골랐고,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도 동시에 같은 메뉴를 고른 적이 손에 꼽는다. 돼지는 하루에 5~6시간만 자도 쌩쌩하지만 뱀은 9시간은 자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래서 돼지와 뱀은 서로 다른 수면 습관에 대해 굉장히 신기해했다. 돼지는 뱀에게 게으르다며 야유했고, 뱀은 돼지에게 그렇게 살면 수명 줄어든다며 야단쳤다. 뱀은 충동 구매를 즐기는 한편, 돼지는 물건을 고를 때 온갖 리뷰를 다 찾아보며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다가 결국 사지 못한다. 돼지가 외출 10분 전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여유를 즐기는 동안, 뱀은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부랴부랴 준비가 끝난다. 뱀은 추위를 많이 타지만 돼지는 더위를 많이 타서 같은 온도를 가진 공간 아래 우린 옷차림이 다르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연애 기간 중 우린 딱 한 번 3일 동안 헤어진 적이 있다. 그때는 7년 차 중고연인이었던 데다가 장거리 연애로 두 달에 한 번 밖에 못 봤던 상황이라 자연히 서로에게 소원해진 때였다.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 별것 아닌 것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지금이 권태기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시기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던 그 시기에 우리는 견원지간(犬猿之間)보다 못한 사돈지간(蛇豚之間)이었다. 그렇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우리가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자며 이별 비슷하게 한 것이 고작 3일이었다. 아무리 상극이라 해도 그동안 쌓인 정과 인연을 끊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린 서로를 놓지 못해 3일 만에 극적 화해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그곳에서 우린 서로에게 쌓였던 오해를 풀고 묵혔던 감정을 녹였다. 그리고 한시도 떨어져 있지 말자며 결혼을 약속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뱀은 제주도 여행이 화해 후 새 출발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지만, 돼지는 또 싸우면 이 여행은 이별 여행이 될 거로 생각했단다. 돼지의 말을 듣고 뱀은 같은 일을 두고도 또 이렇게 반대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차!’ 하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우리는 용케도 빅데이터의 과학이라고 일컫는 사주 궁합을 외면한 채, 2019년 무사히 결혼에 골인했다. 10년의 연애와 5년의 결혼 생활에서 우리가 딱 한 번을 제외하고 큰 다툼 없이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는 방법은 ‘빠른 인정과 합의’였다. 서로 다른 메뉴를 고르면 점심엔 뱀이 고른 메뉴, 저녁엔 돼지가 고른 메뉴를 먹는다. 수면은 고유의 영역이므로 서로 터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생필품은 뱀이 아무 생각 없이 사고 사치품은 돼지가 리뷰를 찾아가며 고민한다. 외출 준비를 할 때는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뱀은 빨리 준비하려고 부산스럽고 돼지는 잔소리하지 않으려 숨을 참는다. 또 다른 방법은 서로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 개발(?)이었다. 뱀과 돼지 사이에는 진짜로 견, 홍삼이라는 반려견이 우리 사이를 중재하며 살고 있는데, 돼지와 개가 산책하러 나갈 때 뱀은 돼지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거야?” 그러면 돼지는 뱀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되묻는다. “뭐 사다 줘?” 그러면 뱀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저 돼지가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하며. 반대로 돼지가 뱀에게 “그것 좀 갖다 줘.”라고 말하면 뱀은 돼지에게 필요한 ‘그것’을 가져다준다. 무심결에 ‘그것’을 받아 든 돼지는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어떻게 알았지?”하고.
한 번은 뱀이 돼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돼지는 왜 나랑 결혼할 결심을 했어?” 돼지는 고민하는 기색 없어 예전에 있었던 일을 꺼냈다. 돼지와 뱀이 같이 산책하며 있었던 일이다. 돼지가 산책 도중 갑자기 방귀를 부웅~하고 좀 길게 뀌었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꽤 컸다. 민망해진 돼지는 한껏 부끄러워하며 뱀을 쳐다보았고, 뱀을 그 소리를 듣고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씩 웃더니 돼지의 손을 잡고 “로켓 발사!”하면 달리기 시작했다. 돼지는 그때 생각했다고 했다. 이 웃기는 뱀과 평생을 함께해야겠다고. 돼지의 말을 들은 뱀은 깔깔 웃으며 답했다. “나도 돼지 방귀 소리가 귀여워서 결혼했어. 방귀 소리가 귀여우면 말 다 한 거 아니야?” 그 말을 마치며 모든 게 다르지만,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둘 다 방귀라는 게 어이가 없어 우리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우리를 아는 지인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너무 달라서 결혼 생활이 불편하지 않냐고. 물론! 사사건건 아주 불편하다고 답한다. 너무 달라서 좋은 점은 없냐는 질문을 받으면, 뱀은 빨래보다 설거지가 덜 귀찮고, 돼지는 설거지보다 빨래가 덜 귀찮다는 뻔한 답을 내놓을 만큼 달라서 좋은 점을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만 다를 뿐이지 인생이란 전체적인 큰 틀로 볼 때 우린 원하는 것이 같다. 서로의 행복과 건강. 그래서 뱀과 돼지는 상극인 사돈지간이지만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와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갖고 하루하루를 재밌게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린 이렇게 서로 다른 무늬를 지닌 퍼즐 조각이지만 이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맞추다 보면 어느새 행복이란 멋진 그림이 완성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