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학 개론(1)

이 퇴적층 말이야. 이거 꼭 우리 같다.

by 이현


“야, 이우엽 진짜 귀엽지 않냐? 약간 그거 같아. 엄청 큰데 귀여운 개.”


“귀여운 개 같은 게 아니고 그냥 개야 개.”


지원은 우엽이 귀엽다는 봄이의 말에 절대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지원은 단호하고도 냉소적인 의견을 담아 대꾸하며, 우엽이 앉아있는 곳을 슬쩍 돌아보았다. 곧 퇴적학 수업이 시작될 강의실 안. 흰 커튼이 살랑이는 창가 자리에 앉은 우엽은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미간을 찌푸리며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창가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저 새끼가….’

지원은 속으로 우엽을 향해 온갖 욕을 퍼부으며 인상을 쓰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그 둘을 빤히 지켜보던 봄이가 지원에게 속사포로 질문을 던져댔다.

“아니, 한지원! 너는 저렇게 귀여운 이우엽이 도대체 왜 싫어?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며? 그러면 서로에 대해 잘 알 거 아니야? 그럼 사귀고도 남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원은 봄이의 질문이 성가시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대답했다.

“하… 나랑 이우엽은 친구가 아냐. 쟤랑 나는 이란성쌍둥이? 뭐 그런 거야. 어렸을 때부터 쉬지 않고 붙어 다녔어. 남녀 친구끼리는 사귈 수 있어도 가족끼리는 그러면 안 돼, 봄아.”

둘 사이가 여전히 의문이라는 봄이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뒤로하고 지원은 <퇴적학 개론>이라 쓰인 전공책을 폈다. 눈은 책을 향했지만, 지원은 봄이의 말이 자꾸 신경 쓰여 도무지 글자에 집중할 수 없었다. 봄이가 쏘아 올린 질문들로 인해 우엽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지원이었다.

우엽의 엄마와 지원의 엄마는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잘 맞았던 엄마들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서로 육아 품앗이를 하며 관계를 이어갔다. 그 덕분에 우엽과 지원은 마치 쌍둥이처럼 꼭 붙어 같은 유치원, 초중고등학교까지 함께 졸업했다. 지원은 대학에 가면 우엽과 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원이 지질학과에 지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우엽은 난데없이 자기도 시조새 화석을 연구할 거라며 같은 과에 원서를 넣었다. 지원은 우엽과 대학까지 같이 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한편으론 낯선 환경에 우엽과 함께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려버린 우엽의 싸가지 없는 태도에 지원은 화가 치밀었다. 저런 식으로 행동할 거면서 대학까지 쫓아와 사람 속을 뒤집는 우엽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봄이가 언급한 ‘너희 둘은 서로에 대해 잘 알겠다’라는 말이 지원과 우엽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소 지루했던 수업이 끝나고 조교인 유미가 공지사항이 있다며 교탁 앞에 섰다.


“다음 주에 퇴적학 실습 조 짤 거야. 2인이 한 조로 야외조사하고 실험 보고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해. 파트너는 제비 뽑기로 하자. 다들 수고했고 다음 주에 보자.”


유미가 말을 마치자, 강의실은 곧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누구와 파트너를 하고 싶은지, 누구와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지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듯했다. 우엽에 대한 분노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지원은 우엽만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사실 우엽은 퇴적학 수업 전 자신을 돌아보던 지원의 시선이 괜히 부끄러웠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지만 이내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아… 한지원이랑 눈인사라도 할 걸 그랬나?’ 우엽은 자신을 책망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우엽은 마음과 달리 지원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예전 기억을 곱씹었다.

우엽은 처음부터 지원이 좋았다. 지원만이 가진 초여름의 싱그러운 느낌이 학창 시절 내내 우엽의 마음을 간질였다. 그러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던 우엽은 툭하면 지원을 곧 잘 울렸고, 사춘기가 되어서야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차렸다. 우엽은 사실 지원의 관심을 받고 싶었고 그 마음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해 온 것을…. 갑자기 시조새 화석이 좋아졌다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대학까지 지원을 쫓아온 우엽이었지만, 지원과 꼬일 대로 꼬여 가는 오해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일주일 후, 유미가 공지한 퇴적학 실습 파트너를 정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엽의 차례가 되었다. 유미가 우엽의 이름을 부르자 강의실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우엽을 쳐다보았다. 우엽은 쑥스러운 듯 특유의 가느다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제비 뽑기 통을 들고 있는 유미를 향해 강의실 앞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우엽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자꾸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속으로 자기 손에게 ‘지원이만 뽑아 준다면 널 평생 고생시키지 않을게’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제비 뽑기 통 속에 손을 넣었다.


‘이걸 뽑을까? 저걸 뽑을까?’ 우엽은 짧은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이 고민했다. 통 속 제비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우엽은 이내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지는 제비 하나를 뽑아 들었다. 제비가 유미의 손으로 넘어갔다. 우엽은 왜인지 자신의 운명까지 유미에게 맡긴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유독 자신의 제비를 펼치는 유미의 손이 느리게 느껴져 답답함이 몰려왔다. 인내심이 바닥날 때쯤 유미가 씩 웃더니 우엽을 향해 제비를 흔들며 말했다.


“한. 지. 원.”


앗싸! 우엽은 자신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며 환호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기쁨을 감추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원이 앉아있는 곳을 슬쩍 보았다. 떨떠름한 지원의 표정에 우엽은 아직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에야말로 지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우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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