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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Jul 06. 2023

나의 멘탈을 흔들리게 하는 의외의 변수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입니다

1. 2023년.

그날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좋아하는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다. 평소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잠이 든 시간이 새벽 1시가 되기 전이었다는 것. 눈을 뜨자마자 나갈 준비를 하느라 핸드폰을 뒤적거릴 시간이 없었던 것. 두 가지뿐이었다. 2주 전에 잡아두었던 가족 여행을 가는 날이었기에 출발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빤-히보던 엄마는 'oo이 기사 봤어?'라며 내게는 익숙하지만 엄마에게는 낯설었을 그 이름을 꺼내었다.


"엄마가 그 친구를 어떻게 알아? 그룹 이름은 알아?"


엄마가 그 친구를 안다는 것이 신기했기에 신상에 관련된 퀴즈를 던졌고,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모든 걸 꿰뚫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에게 임팩트 남길 일이나 스캔들이 없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궁금증만 더 해질 뿐이었다.


"찾아봐봐"

"왜?"


내가 기사를 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엄마는 결국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모든 걸 멈추고 사실 확인을 했고, 그 일이 현실임을 알았을 때 또 한 번 인생의 덧없음을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을 하던 섭외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던 그 친구를 영원히 만날 수 없겠구나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 나 자신이 역겨워졌다. 그리고 곧 가족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또한 어이없어졌다. 

  


2.  2017년.

하루는 회식 때문에 홍대에 위치한 한 훠궈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고 있는 프로그램 덕분에 경제, 정치, 연애 등등 뉴스 속보 알림을 켜놓고 살았고 대한민국 사건 사고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할 수 있었다. 훠궈를 찍어먹을 소스를 만들어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모 연예인의 사망 뉴스가 속보로 떴다. [속보] 기사를 보면, 내용은 비어있을 뿐 헤드라인만 적혀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나와 같이 알람을 받았던 동료들은 '오보'-'가짜뉴스'일 것이라 하였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인생 처음 맛보는 훠궈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유서가, 가족들의 반응이, 사망의 원인 추측하는 기사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지자 식당 안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방송하던 게 있었나? 제작진들 어떻게 하냐"

"남은 가족들은? 멤버들은 어찌 살아?"

"잘 나가던 연예인이잖아.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의 첫 솔로 앨범이 나왔을 때, 싸인 CD를 받았던 적이 있던 나는(사람들은 이것을 남이라고 부르겠지만)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반응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고, 집에 돌아와 꽤나 맛있게 먹었던 훠궈를 전부 게워냈다.




3.

10대 시절 나의 눈에는 방송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꽤나 멋져 보였다. TV에 얼굴을 내놓는(?) 연예인의 끼는 타고난 게 없으니 꿈도 안 꾸었고, 대신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 돼 보자 했던 것이 내가 작가라는 꿈을 키우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내가 선망했던 연예인들의 비치는 모습이 전부라 믿었던 그때, 그것들이 단지 '이미지'라는 것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만들어진 '컨셉'이라는 걸 알았다면 나는 이 세계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회사에서의 자아와, 집에서의 자아, 친구들 사이에서의 모습들이 다 다른데. 하물며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더 많은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이 사람이랑 방송하면 어떨까?'를 상상하는 내가 어이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라는데, 지금 내가 써 내려간 글이 연예인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과거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특히 스스로 내려놓는 그 결정에 대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접적인 단어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또래였던 사람들의 죽음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멍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어쩌면 나도 그들과 같은 병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상상은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최측근이었다면?"까지 이어지는데 결론은 멘털 관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뭐가 그리 아팠을까. 나에게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이 감정이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짓눌렀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부 두고 떠나야 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픈 마음을 치료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추모해야 할지 아직 나는 제대로 된 방법을 알지 못한다.


*오래전에 써두었던 글을 이제야 올려본다. 날씨가 너무 덥다. 글쓰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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