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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Jul 27. 2023

00년생 아이돌보다 구오빠가 더 매력적이었던 어느 날

아이돌 :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하는 촬영 대본을 써야 할 때는 그 사람의 생일부터 데뷔일자, 가족 관계, 취미, 좋아하는 음식, 요즘 관심사, 사건 사고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등 기본 정보들을 1차적으로 정리해 둔다. 그리고 나면 출연자가 출연했던 타 프로그램들을 모니터링하는데, 그 수가 많으면 더 이상의 에피소드가 있을까 싶어 걱정이고, 방송을 자주 하지 않는 게스트라면 이런 이야기도 물어봐도 될까? 어디까지 공개가 가능할까? 싶어 생각이 많아진다.


한 달 사이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 친구들과 내가 10대 때 데뷔했던, 당시는 아이돌이었지만 현재는 노래를 베이스로 하는 다른 분야에서 탑이 되어버린 구.아이돌과 각각 촬영을 하게 되었다.


전자였던 친구들은 00년생 위주로 꾸려진 팀이라 일단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들 나이와 상관없이, 멤버수가 꽤나 많은 팀이었기 때문에 애 먹었다. 그리고 요즘 10-20대들이 좋아하는 음악, 취향 등 아이돌 판의 현 사정들을 업데이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촬영 당일 날씨는 생각보다 더 쨍쨍했고, 전력을 끌어다 쓰는 덕에 에어컨은 시원치 않았고, 덕분에 방전까지 되는 난리가 펼쳐졌지만, 지난 프로그램 덕분에 멘탈이 아주 단단해졌던 터라 '어떻게든 해결 방안은 있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대하려 애썼다. 촬영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고,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라고 해도 연습생 기간은 결코 무시 못할 시간이고, 그들 역시 방송 프로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촬영이었다.




한편, 나의 10대 일부를 차지했었던 구.아이돌의 대본도 만만치 않게 오랜 시간을 들여 써 내려갔다. 물론 추억팔이를 하느라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건 모두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이었다. 어찌나 똑똑한지 나는 검색 한번 했을 뿐인데, 클릭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영상을 어찌나 많이 추천해 주는지. 과거 출연했던 예능과 음악 프로들을 누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덕분에 내 플레이리스트는 학창 시절로 돌아갔고, 유튜브는 그의 영상으로 점령당했다. 이러다 재입덕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귀여워..."

"?"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브런치에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현.아이돌 친구들보다 구.아이돌 '오빠' 촬영이 더 설레이고 즐거웠다. 더불어 마흔이 되어가는 그에게 '귀엽다'는 말을 숨 쉬듯 내뱉었다. 세월의 거친 풍파 속에서 그 누구보다 프로 방송인이 된 그는 막힘 없이 촬영을 주도해 갔고 (물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 가며) 그의 추억 이야기를 듣다 보니 촬영 시간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직무유기를 하고 있던 나는 잠깐이었지만 10대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30대인 현실로 돌아오니 너무나 허무해져 있었다. 이래서 다들 공과 사를 구분하며 사는 건가.

 



'덕후는 계를 못 탄다'


하지만 나는 찐으로 좋아했던 연예인을 마주친 적이 1도 없다. 찐의 기준은 모든 앨범을 사모았고, 코 묻은 돈으로 티켓을 구해 공연을 가고, TV나 라디오 등 출연하는 방송을 빠지지 않고 보는 것 등이 포함되는데,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연예인들과 함께 한 적이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작가로 일하다 우연히 마주치면 '프로페셔널'하게 이런 얘길 해야지,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고백'해야지 하는 시뮬레이션을 꽤나 많이 했었는데, 하늘은 단 한 번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 때문에 방송을 시작한 게 8할인데, 함께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이런 경우의 수까지 생각했다면 일에 뛰어들지 않았겠지만.  


'입덕', '덕질', '빠순이'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바로 눈앞에 있는 상대도 아닐뿐더러, 모니터 넘어 있는 누군가에게 빠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단순히 일차원적으로 이성적인 감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 마음에는 상대가 행복하길 바라고, 건강하길 바라고, 모든 게 잘 되길 바라는 어쩌면 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것인데, 나는 이런 감정을 20대 초반에 졸업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동경하는 친구들이 존재하는데, 내게는 없는 '순수한' 감정을 느끼는 그들이 부러울 때가 종종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방송일 하면서 덕질을 안 하게 된 듯싶기도 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팬이었던 지울 수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내가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연예인과 일을 하게 되면 분명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얘기하겠지.


"진짜 팬이에요. 제가 언제부터 좋아했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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