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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pr 26. 2023

발소리는 왼쪽, 대사는 가운데에, 왜일까?

이런저런 소리 이야기

화려한 화면과 이를 따라 화려하게 움직이는 소리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이펙트들 사이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소리가 하나 있으니,

바로 '대사'다.


분명 왼쪽에 서있는 사람의 목소리인데, 왜 가운데에 들어있는 걸까?

패닝 실수를 한 걸까?

그런데 패닝은 뭐지?


지금부터 같이 알아보자.




먼저, 대사가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대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사는 '말'이다. 정확히는 모든 말.

여기에는 대화, 혼잣말, 심지어 속마음이 소리로 나오는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대사의 중요성은 영화, 드라마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짐작할 수 있을 거다.

말 한마디 없는 영상에서는 스토리, 배우의 감정, 상황을 이해하는 게 어렵고, 비교적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무성영화처럼 인물의 말소리가 들어있지 않거나 소리자체가 없는 영상도 존재한다.
이런 영상에도 나름의 다른 매력이 있겠지만, 현재 거의 대부분의 영화/드라마는 대사/목소리에 의존한다.




발소리의 움직임을 상상해 보자.

자, 여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하는 남자가 보인다.


남자의 위치에 상관없이 가운데에만 있는 목소리.

이때, 발소리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이 화면 속 발소리처럼 소리를 가운데가 아닌 그보다 왼쪽, 혹은 오른쪽에 두는 게 바로 '패닝'이다.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에 'Left Right Test'라고 검색해 나오는 영상을 스테레오 스피커/헤드폰/이어폰으로 들어보자.
소리가 왼쪽에서 나왔다 오른쪽에서 나왔다 하는 걸 들을 수 있을 거다.


컴퓨터나 휴대폰의 설정으로 인해 소리가 모노(1 채널의 소리)이거나, 소리를 내는 스피커/이어폰이 하나뿐이라면 당연히 확인이 불가능하니 소리 출력이 스테레오로 나오는지 테스트 전에 확인해 보자.




방금 남자가 걸어가는 장면에서 발소리는 움직이고, 대사는 그대로였는데 의도한 걸까?


이를 제작 과정에서 나온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남자가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발소리는 오른쪽, 문 여는 소리는 가운데에 들어있다면 이 명백한 믹싱 실수다.

이런 실수를 'Audio Panning Error/오디오 패닝 에러'라고도 한다.


하지만 많은 드라마/영화를 쭉 보다 보면 알 수 있듯이, 말하는 사람이 '가운데에 서있을 때, 왼쪽으로 걸어갈 때, 멀리 있을 때, 심지어 화면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목소리는 보통 일정하게 들린다.

여기에는 목소리의 크기, 톤도 관련이 있지만, 무엇보다 항상 가운데에 있는 대사의 위치가 주된 원인인듯하다.


왜 영화/드라마 후반 오디오 믹싱 작업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처음에 설명했다.

바로 '대사의 중요성'.


어떤 대사, 목소리가 아무 의미 없을 때도 있지만 많은 상황에서 스토리의 진행, 인물의 감정 표현, 분위기 조성 등의 역할을 하므로 대사가 영상에 끼치는 영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생각해 보자, 이렇게 중요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왼쪽에 있다, 오른쪽으로 갔다, 정면에서 갑자기 좌우로 움직이며 사방으로 날아다닌다면 얼마나 정신사나울까?


소리가 움직일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다.

영상에서  '움직임'은 이미 다른 소리(이펙트)들로 표현되었는데, 굳이 더 넣을 필요가 있을까?


집중의 대상을 '대사' 자체에 두도록 유도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큰 극장에서는 이런 움직임(패닝)이 어떻게 느껴질까?

친구와 영화관을 왔다고 생각해 보자.


운 좋게 영화관 가운데에 있는 자리 두 개를 예약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슬프게도 둘의 자리가 떨어져 한 명은 중심에서 오른쪽, 다른 한 명은 왼쪽에 앉게 되었다.


좌측에 앉은 나는 왼쪽스피커, 우측에 앉은 친구는 오른쪽스피커에 가까운 이 상황.
화면 오른쪽에 서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오른쪽으로 패닝 되어있다면 어떻게 들릴까?


좌측, 우측에 앉은 두 사람의 시선은 모두 화면 중앙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대사의 주인인 남자의 모습은 둘 모두에게 오른쪽에 위치해 보이는데, 영상 속 목소리는 보이는 화면과 관계없이 들리게 된다.


우측에 앉은 친구가 듣기에 오른쪽으로 패닝 된 남자의 목소리는 다른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대사들보다 크게 들린다. 양쪽에 골고루 퍼져있던 소리가 한쪽으로 몰렸고 오른쪽 스피커에 가깝게 앉았기 때문인데, 이는 영상 시청에 대한 집중을 방해한다.


반대의 이유로 좌측에 앉은 나는 목소리가 작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몸/머리가 화면 중앙, 즉 좌측에 앉은 나의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오른쪽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오른쪽' 보다 '중앙'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처럼 규모가 큰 영화관 같은 곳에서 패닝으로 인한 혼란이 더 커질 수 있고, 이는 오디오 엔지니어로서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무대의 주인공은 보통 가운데에 있다.

아이돌이나 밴드를 봐도 리더가 중심에 서있는 게 보통이고, 이는 음악 속 리드보컬, 솔로 악기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인 대사를 좌우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주인공을 중심에서 주목받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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