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Min Oct 14. 2023

네가 좋아하는 것

카세트 플레이어

너는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하는 것을 좋아했다.

매체에서 주의 깊게 다뤄진 물건이라면

꼭 같은 것으로 구입하려고 광적인 집착을 보였고

그게 안 된다면 비슷한 물건을 골라 최대한 따라하려고 노력하며 이것이 더 소중하다고 믿어왔다.


요즘 네가 빠져 있는 물건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테이프이다.

또 어떤 드라마에서 이 오래된, 시대를 지나간 물건을 사용한 건지

너는 여러 곳의 물건을 비교해 가며 신중하게 고른 하나를 구입했고

택배가 서둘러 오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마침내 플레이어가 도착하고 너는 사 둔 테이프를 바로 플레이어에 넣었다.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듣는 네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기대하던 플레이어가 며칠 안 가 고장 났을 때 너는 좌절을 넘어 극도의 우울 증상을 보였다.

몇 번 듣지도 않은 멀쩡한 새 물건이 자신 때문에 망가졌다며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너의 어머니가 네가 산 물건보다 더 비싼 플레이어를 구입해 주셨다.

너도 너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디자인을 포기한 어떤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너의 어머니가 사 주신 플레이어는 하루만에 전의 물건처럼 똑같이 고장이 났다.

너는 이제 체념한 상태였다.

디자인을 포기했던 네가 구입한 플레이어가 되려 잘 작동하자 너는 그제서야 그것을 끔찍히도 아끼기 시작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 플레이어가 동행했다.

너는 플레이어보다 두 배는 비싼 테이프를 사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정작 네가 그 테이프들을 완곡하는 일은 없었다.

너는 잘 때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어에 꽂힌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약을 먹고 잠에 들었으므로

길게 들어봤자 세 개의 트랙이 전부였다.

출근을 할 때도 너는 아끼는 플레이어를 자랑스레 내 놓고 음악을 들었지만 바로 잠에 들었다.

퇴근을 할 때도 귀에 꽂았지만 너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네가 책을 읽을 때면 너의 귀는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닫히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싫어하던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