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펜과 노트가 함께하던 네 모습
너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는 필사였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꼭 메모를 해 두었다.
마음에 박히는 페이지가 있으면 통째로 필사를 해서 너에겐 여러 장르가 섞인 너만의 필사 노트가 있었다.
고등학생인 너는 공부가 하기 싫었다.
대놓고 책을 읽자니 선생님들의 눈치가 보였다.
그 즈음 너의 우울증은 점점 두각을 드러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너는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방에 있는 일이 잦아졌고 심장에 박히는 가사들이 생기게 되었다.
공부를 하려고 펴 둔 연습장에 너는 자주 듣던 그 가사들을 끄적이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쉼표 하나까지 외워버린 그 노래들의 가사를 끄적이고 있었다.
고등학생 2학년인 너는 숙제였던 청소년 혼불문학사에 자처해서 단편 소설을 제출한다.
평소 가사를 필사하며 쌓아 놨던 너의 글 솜씨는 장려상을 수상하며 입상을 하게 된다.
입상을 하게 된 그 날은 너의 생일이었다.
그 날을 시작으로 너는 18살 때 교내에 있던 글 쓰기 대회에서 모두 입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네가 작가의 길을 꿈꾸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너는 입상을 하면서 상금을 타 오게 되었고 네게 상금보다 더 한 선물은 이름이 적힌 상장이었다.
필사를 하는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당장 필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는 핸드폰을 꺼내 책 한 페이지를 찍어 놨다.
나는 지금도 네 옆에 필사 노트가 없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도 너는 카페에서 글 쓰는 것이 로망이었다며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네 모습을 참 많이 사랑했다.
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팬시샵을 가게 되었고 그 많은 노트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구경하는
네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