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또 다른 가족
너에게는 작고 소중한,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가 있다.
스물 한 살의 너는 그때까지도 방문을 닫고 살았다.
너는 우리와의 만남을 거절했고 모든 대화 채널을 닫고 살았다.
그런 네가 며칠 만에 입을 열어 꺼낸 말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였다.
당연히 반대했다.
나는 강아지를 무서워한다. 그리고 네가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너의 상태는 너 한 사람을 책임지기에도 버거웠다.
또 다시 이 문제로 너와 우리 사이에는 냉전이 생겼고, 다시 집은 겨울이 되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결국 너의 아버지는 너에게 지고 말았다.
이제 갓 백일을 지난 작은 강아지. 그러나 전성기인 2개월인 주변 친구들에게 밀려 구석에서 지내던 작은 녀석
너는 지금도 내게 얘기한다. 그 작은 아기가 내 품에 안기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셋에서 넷으로 바뀌었다.
너의 아버지는 강아지에게 순하고 건강하게 크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날부터 닫혀 있기만 했던 너의 방문이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려 있다.
너는 우리와는 대화를 안 해도 강아지를 붙잡고 얘기를 했다.
혹시라도 강아지가 들어오고 싶은데 못 들어올까 봐 너는 방문을 살짝 열어 둔 채 지내거나 아예 열고 지낸다.
우리 가족의 대화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너는 가족 사진을 갖고 싶어 했다.
어쩌다 찍으러 가게 된 가족 사진에서 너는 강아지와 꼭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강아지 덕분에 웃으면서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셀렉할 때도 강아지가 잘 나온 사진 위주로 고르게 됐고,
그 사진은 거실의 복도 끝 존재감을 드러내며 걸려 있다.
지금도 너는 퇴근하자마자 강아지에게 가장 먼저 달려간다.
밖을 나가기 싫어했던 너는 강아지 산책이라면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별이 지금도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