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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Jul 12. 2023

나는 아버지가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담배를 끊었다. 4년 전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날은 아버지가 일을 그만둔, 아니 끝 낸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15살 되던 해에 남해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피죽도 먹기 힘든 시절, 그곳에 가면 배는 곪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부산에 정착했다. 그때로부터 63년이란 세월 동안 갖은 일을 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결국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일을 끝냈다. 아버지의 마지막 일은 자갈치시장에서 용달을 하는 것이었다. 배차하는 용달회사에서는 아버지가 일하러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 일찍 나가서 사무실이랑 주변 청소를 한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도 먹고살기 힘들다며 눈치를 준다고 했다. 그래서 커피도 사주고, 밥도 사준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재산 한 푼 물려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 나이 들어 부담 주는 게 싫어서,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을 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일을 끝낸 그날, 나는 23년간 피운 담배를 끊었다.




일을 그만둔 아버지는 병원을 찾았다. 오래전부터 허리가 펴지지 않아 수술을 해야 했는데, 일하느라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병원을 찾은 거다.

“어르신, 연골이 다 닳아서 수술을 할 수가 없어요. 힘드셔도 약 드시면서 이대로 사셔야 해요”

그날 아버지는 심한 절망감에 빠졌다고, 어머니가 이야기해 줬다. 아픈 허리는 갈수록 아버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운동도 좀 하고, 어디 좀 다니라고 해도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니 온 만신이 귀찮은 거다.




작년 여름휴가 때 부산에 내려갔다. 추석에 못 갈 것 같아 미리 다녀오자고 한 것인데, 옆에 앉은 아내 얼굴이 뭔가 못마땅해 보인다. 하기야 여름휴가에 시댁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부산에 도착하니 더욱 작아진 아버지가 반겨준다.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애련하다. 다음날, 오래간만에 게으른 잠을 자고,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약을 찾는다. 그런데 몇 분째 약봉지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좀 되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영상통화 할 때마다 손주들한테 몇 학년인지 물었던 것이 생각난다. 가슴이 미어졌다.




올라오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가까이 살면서 신경 안 쓰고 뭐 하냐며 성질을 냈다. 나 대신 잘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냥 화가 났다. 미안했다. 치매안심센터에 전화를 해서 검사예약을 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뇌미인이라는 치매예방학습지를 구매해 부산으로 배송요청을 했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가서 관련 책들을 찾아 마구마구 읽었다. 그중 내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책이 있었다.

나는 당신이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란색 표지에 노부부 삽화가 그려져 있는 책을 보는 순간 또다시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 이제라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평생 강인하게 살아온 아버지를 믿자’ 혼잣말을 되뇌었다. 




검사날짜에 맞춰 혼자서 부산을 다시 찾았다. 바쁜데 또 왜 왔냐며 야단이시다. 기름값도 비싼데 그 돈으로 애들 맛있는 거 사주지 왜 왔냐며 어머니가 옆에서 거든다. 다음날 오전 예약시간에 맞춰 치매안심센터에 갔다.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검사는 보호자 없이 아버지 혼자 진행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검사결과가 나왔다. ‘경도인지장애’ 판정이 나왔다. 학력이나 연령대에 비해 중증은 아니라는 결과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수 십 번 되뇌었다.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구석구석 뒤졌다. 작은방에 처박혀 있던 스피닝자전거를 거실로 옮겨왔다. 장롱 위에 있는 먼지 쌓인 요가매트를 깨끗이 닦아서 바닥에 깔았다. 아버지 핸드폰에 자전거 타는 시간, 스트레칭하는 시간, 뇌미인하는 시간, 신문 보는 시간 등 시간대 별로 알람을 맞췄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하는 방법과 하루 일과를 설명하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버지가 평생 고생시킨 엄마, 더 이상 고생 안 시키고, 아들, 딸, 며느리 고생 안 시킬 라면 힘들어도 하루도 안 빠지고 꼭 해야 됩니더, 알겠지예?”

말없이 고개만 끄덕 그린다. 그 모습이 더 애처로워 보여 가슴이 먹먹하다. 예전부터 해 드리고 싶었는데 못 해 드린 게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허리가 안 좋으신 것에서 비롯된 것 같아 안마기를 꼭 놓아드리고 싶었다. 홈체험 서비스를 신청해서 일주일간 사용했는데, 허리가 조금 펴지는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다소 고가 제품이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안 해 드리면 나중에 후회될 것 같았다. 누나에게 부탁을 해서 일부를 부담하게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전화를 했다. 술 끊는다는 약속을 하고 허락을 받았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해는 아직 중천 같은데 시계는 4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이 기다리고 있어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 했다.

“아버지, 올라갈께예?”

“으응, 그래 조심해서 올라가”

“………………….”

서로가 아쉬운 눈빛만 교환할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흐리지만 깊어 보이는 아버지 눈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저 믿어 주셨던 것처럼, 저도 아버지 믿어요. 꼭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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